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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전현무가 자신의 말실수를 돌아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말실수 때문에 겪었던 고초가 심했었나 보다. 말재주가 없는 나 자신이 오버랩 되면서 말을 잘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이 갔다.
나는 말 없는 남편과 살면서, 두 사람만 있을 땐 입에 거미줄을 칠 정도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한 번 말문이 터지면 무슨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쉬지 않고 쏟아진다. 그렇다고 재미있게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가만히 내가 하는 말을 내가 들어 보면 반복적인 말들이 많다. 특히 딸들한테 말할 땐 더 심한 거 같다.
할 말 안 할 말 가려가면서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말을 해야 될 때와 안 해야 될 때를 잘 캐치하면서, 적당한 선에서 말을 그칠 줄 알며, 남의 말을 성의껏 잘 들어줘야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있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가끔 둘째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서로 다른 의미의 말을 주고받았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 채곤 한다. 서로 같은 언어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했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한 것이다. 이렇듯 각자 자신의 생각대로 말하다 보니, 나중에 보면 이상한 상황이 벌어질 때도 있다.
말 전하기 놀이를 하다 보면 처음의 말이 엉뚱한 말로 바뀌어 버려 모두들 폭소를 터트리게 되는데, 말이 제대로 전달이 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이러니 말 때문에 시비가 벌어지고 다툼이 일어나는 일이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요즘 들어 될 수 있으면 말을 줄이려 노력하는데, 나이가 들면 양기가 입으로 간다더니, 말 수를 줄이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한테 말을 하다가 갑자기 상대방이 내 말을 듣느라 지겨워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말하는 도중에 상대방이 지겨워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내 말을 내가 듣는 게 지겨워서 그럴 수도 있다.
내 하소연을 하느라, 나와 남의 험담을 하느라, 쓸데없는 수다를 떠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살았던 지난 세월의 내 모습이 요즘 들어 더 크게 느껴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 버린 긴 세월 동안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들을 허공에 얼마나 많이 뿌렸는지 모른다. 그러니 이제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지겹다 못해 그만두고 싶어졌을 때도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입이 제구실을 하도록 변해야하기에 그동안 관성에 젖어서 계속적으로 반복해왔던 말실수를 인정하고 수용하려고 마음이 먼저 지겨운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요즘 온욕 중에 코로 크게 숨을 들이키며 입으로 길게 내뿜는 복식호흡을 하고 있다. 그건 코와 입이 제 구실을 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데, 말을 제대로 잘하고 싶은 마음도 포함이 된다.
말을 제대로 잘하면서 살기만 해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말로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옛 속담이 있는 것처럼, 말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던가? 그동안 말로서 지은 빚 때문에 나의 지나온 삶이 부유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되면 부정적인 말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고,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되면 긍정적인 말이 메아리가 되어 내게로 돌아온다는 것은 지나온 삶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말이 씨가 되어 말대로 되는 것도 체험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사랑이 가득 담긴 말을 자주 해야겠다. 그래야 사랑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 아닌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강력한 것도 없을 것이다.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게 잘 사는 비결이다. 나 자신을 온전하게 사랑하지 못한다면 나 자신에 대한 만족을 할 수 없어서 제대로 말을 잘하기 힘들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말을 잘하면서 잘 살기를 바란다.
감사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