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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생각

박지원 0 1,344 2016.01.28 17:03

8월부터, 웰링턴을 떠나 여기에 온 후 많은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고추, 애호박, 피망, 해바라기, 토마토, 가지.. 주로 먹을 것들인데, 이는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이 조금은 있었다.

 

왠만한 것들은 모종을 사지 않고 씨앗부터 심었다. 씨앗들은 자신의 복부를 스스로 가르고 푸른 잎사귀가 되어 지면을 뚫고 태양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에 나는 밖으로 나와 그들을 향해 물을 주었고, 반짝반짝 빛나는 초록색 잎사귀가 바람결에 노래하듯 가늘게 몸을 떨었다.

 

처음에는 토마토와 상추로만 시작했던 일들이, 조금씩 땅을 일구고 자갈을 걸러내고 비료를 주었더니 어느덧 마당의 테두리를 감싸안을 정도의 큰 텃밭이 되었다. 집은 렌트여서, 그 이상의 잔디를 훼손할 수 없었기에 잔디가 없는 부분으로만 심었던 것이었는데, 보기가 썩 나쁘지는 않았다. 한 구석에만 있었던 푸른 잎사귀들이 화분까지 더해져 마치 집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여져갔다. 

 

이따금씩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여자친구이자 동거인인 N과 나는 빗물이 들어찬 삼색 슬리퍼를 신고 나와 대나무 지줏대를 세워주었다. 가게에서 파는 플라스틱 고정틀이 너무 약해서, 비닐을 찢어 지줏대와 함께 식물들을 묶어주었다. 어느덧 지줏대에 묶을 정도의 크기가 된 것과, 바람에 기울어질 정도의 크기가 된 것에 감격하면서. 

 

11월이 되고, 하나둘 꽃이 피기 시작했다. 나는 그 전까지는 식물에 대해 전혀 무지했었는데, 꽃이 피고 그 꽃이 있던 자리에 열매가 맺어진다고 N이 말했다. 나는 정말 꽃 따로 열매 따로 피는 건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더니, N이 비웃었다. 그리고 꽃잎들이 하나둘 지며 정말 비웃듯이 열매가 열리기 시작했다. 12월이 되고, 토마토를 비롯한 열매들이 하나씩 커져갔다. 우리는 그 앞에 캠핑의자를 펴고 앉아 그 열매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생명을 빤히 쳐다보았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아주 오래전 토끼를 기르고 싶어 수족관(!)에서 토끼를 산 적이 있었고, 그 토끼는 3일만에 죽었다. 토끼가 죽을 때, 나는 토끼를 손 위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부르르 떨더니 끽,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를 내며 이내 심장을 멈추었다. 펑펑 울면서 어린 마음에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생명의 죽음? 추락? 혹은 고장? 아니면 조금 더 멀리, 환생?

 

잘 자라지 않을 것 같아 15개의 씨앗을 심었던 해바라기씨가 위풍당당한 15송이의 해바라기로 변한지 한 달. 커다란 노란 잎사귀와 높은 키를 뽐내며 뒷문 바깥을 지키던 그들이, 어느덧 노란 잎사귀를 잃어가고, 푸른 줄기의 생기도 흐려지고 있다. 나는 머리가 빠져가고 피부의 탄력을 잃어가는 늙은 노인을 생각했다.  그리고, 보통 같으면 노환과 죽음- 분명 거기까지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씨앗을 뿌렸던 나의 손을 생각한다. 흙에 손가락을 넣어 옴폭하게 만들어주고, 그 작은 씨앗을 넣어주었던 나의 손. 이제는 넓은 얼굴 위에 그 씨앗을 가득 품은 채 서서히 죽어가는 해바라기를 보며, 새로운, 또다른 삶을 생각한다. 삶의 반댓말은 죽음이 아니라, 결국 삶 건너편에 서 있는 나 자신 아닐까. 자신을 해체하고, 자신을 잉태하고, 자신을 낳고, 자신을 죽인다. 이 길고 넓은 윤회의 굴레를 내적으로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삶 아닐까. 맑은 하늘 아래 반짝일 수 있고, 비오는 날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큰, 땅 속 깊숙한 뿌리로 버텨낼 수 있는 단단하고 유연한 자신이, 어쩌면 삶의 반댓말이 아닐까. 죽음은 추락도 고장도 아닌, 식물의 기나긴 순례길처럼, 길 위에 오른 삶의 조그만 단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있다. 삶에 답은 없다. 이 글도 결국 고민 위에 쏟아진 액체처럼 정보, 혹은 당신의 머릿속에 단정치 못하게 흩뿌려질 것이다. 식물이 땅에 삶을 뿌리듯이. 굴레를 뿌리듯이. 그렇게 우리는, 나는 생각한다.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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