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영혼에 잔잔한 파도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그 인생은 보람 있는 일을 한 것이리라. 문학과 예술은 인간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가장 원초적인 관계를 맺어 왔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예술 분야 중 음악에 대하여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음악에는 마적(魔的) 요소가 내재되어 있어서 여기서 이성(理性)이나 오성(悟性)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음악에서 솟구치는 영향력은 모든 것을 지배하며 누구라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라고 갈파했다.
음악의 기능은 작곡가나 연주가가 표현하는 마음의 여정을 듣는 사람이 마음에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다. 음악은 바로 우리 삶 속의 감정들을 표현하고, 전달하고, 동감하게 만드는 매개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작곡가가 표현해 내고자 한 감정의 흐름을 연주가가 어떻게 해석해서 전달하느냐, 연주가가 전달하는 감정을 감상자가 어떻게 받아드려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느냐에 따라 음악의 가치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똑 같은 곡을 똑 같은 악기로 연주하더라도 연주자에 따라 표현 내용이 다르고 음악이 흐르는 주변 환경, 감상자의 태도, 심리 상태에 따라 전수하는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류 역사의 흐름과 함께 발전해 온 음악의 분야도 엄청나게 넓으며 엄청난 곡들이 탄생하였으므로 이들을 섭렵하는 일만하더라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일이다. 범위를 좁혀 클래식으로 한정하고 클래식의 수많은 작곡가들 중에서 쇼팽의 음악성을 관찰하되 쇼팽의 작품들 중 야상곡 2번(夜想曲, Nocturne No.2 Op. 9 Eb Major)을 중심으로 감정을 추슬러 보고자 한다.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은 조국 폴란드가 낳은 세계사적인 천재 음악가임에 틀림없다. 폴란드는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 사이에서 주권을 침탈당하기 일 수였다. 쇼팽이 20세 되던 1830년에는 조국에서 혁명전쟁이 일어났으나 실패로 끝나고 쇼팽은 파리로 떠나게 되었고 그 후 조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39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섬세한 감각과 서정을 갖춘 낭만주의자였던 그는 피아노 음악에서 꽃을 피워나갔다.
녹턴 2번은 쇼팽이 20-21세 때인 1830-1831년에 작곡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망명 첫해에 해당된다. 쇼팽이 남긴 21편의 녹턴 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랑을 받고 있는 2번이다. 쇼팽 특유의 센티멘털리즘(Sentimentalism)이 매혹적으로 펼쳐지는 이 곡은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 음악적 감흥이 느껴지는 성격적 소품(Character piece)이라고 할까? 밤이 가진 고요함과 고즈넉함에 시적인 상상력을 극대화한…….
건반을 밀고 당기면서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리듬과 악센트(Accent), 마치 한 편의 영상처럼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슬라브(slav)적 음색, 과감한 조바꿈과 때때로 등장하는 불분명한 조성들을 통해 피아노라는 악기의 새로운 뉘앙스(Nuance)를 만들어낸 쇼팽은 특히 녹턴을 통해서 천재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내밀한 심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쇼팽의 녹턴 2번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이민 초창기였다. 1997년 말 연말연시를 맞아 영국계 키위들과 9박 10일 동안의 워크숍(Workshop) 행사에 동참한 일이 있다. 정월 초하루 이브에는 새벽 2시에 공식 행사가 끝났는데 5시까지 뒤풀이를 즐기는 회원들도 많았다. 그날도 자기들끼리 실컷 웃고 즐기다가 새벽 3시쯤 되어 하나 둘 자리를 뜰 때였다. 악단 멤버로 아코디언을 연주하던 레이디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귀에 익은 멜로디인데 곡의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라고 하기에 그러려니 했다.
초승달은 앙증스럽게 서쪽 하늘에 걸려 있는데 밤의 캠퍼스는 고요 그 자체였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나는 그녀의 아코디언을 들고 배웅했고 아까 연주한 곡명을 물어보았다. 처음 듣는 이름이라 재확인했더니 메모지에「Chopin, Nocturne 2 Eb)」를 남겨주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초승달과 캠퍼스 정경, 새벽 3시, 영혼 속을 파고드는 야상곡이 나를 둘러싸고 공격하면서 취하게 만든 것이다.
65세가 넘어 피아노 연주를 배워보겠다고 레슨을 시작한 지 몇 해가 흘렀고 나는 쇼팽의 녹턴 2번을 선정해 연습을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피아노 솜씨로 쇼팽의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표현해 낸다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도전인지를 새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쇼팽은 21세의 나이에 벌써 세계인의 영혼을 울릴만한 명곡들을 수없이 창조해냈는데 그 곡을 피아노로 재생해내는 일도 못하는 나의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다.
연말이 되어 피아노 학원 원생들의 연습곡 발표회가 예년과 같이 있었다. 녹턴 2번을 달빛 아래에서 남녀가 같이 듣는다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곡이라고 했다. 그날 나의 연주는 실수투성이 이었고 아무도 나의 연주에 깊은 감흥을 받거나 사랑에 빠지는 감상자가 없는 듯 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달 빛 흐르는 밤, 랑기토토(Rangitoto) 앞 바다를 내려다보며 살롱음악 풍의 연주회를 갖고 싶다. 단 한 사람의 영혼에 조그마한 파문이라도 선사하기를 바라면서……. 쇼팽의 후원자인 동시에 연인(戀人)이었던 여류 작가 조르주 상드(George Sand)가 말했다. ‘사랑하라, 인생에서 좋은 것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