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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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거미집(Ⅱ)

0 개 1,969 박지원
<<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누렇게 뜬 천장 구석에, 거미줄이 하나 쳐져 있었다. 거미줄 위에 다리가 긴 거미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저 거미는 왜 저기 있나. 겨울이라 가뜩이나 먹을 것도 없을 텐데, 왜 저기 집을 지었나. 이왕 거미로 태어났으니 집은 지어야겠고, 집을 다 지어넣고는 저렇게 멀뚱이 집에 들어가 있는 건가. 노인은 거미와 건배라도 하듯 소주를 들어 구석을 향해 한 번 까딱이고는, 다시 소주를 마셨다. TV에서는 물고기의 생을 온전하게 남기는 어탁에 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노인은 거미를 보며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고물가게를 물려받아 내내 고철들을 공장에 넘겨 돈을 받아왔는데, 거래하던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자신의 인생도 조금씩 닫혀갔다. 그 와중에 자식들은 모두 해외로 떠났고, 여느 아줌마들과 다름없이 살림하고 옆집 아낙들과 수다떨던 부인도 사라졌다. 마치 거미처럼, 집 하나 끌어안고 정부에서 나오는 쥐꼬리만한 연금으로 그는 3년간 라면과 술만 샀다. 라면과 술을 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미줄처럼 이어진 순환선을 타고 도시를 뱅글뱅글 돌았다. 모두들 엄지를 까딱이며 조그만 기기에 집중하고 있는 지하철 안에서, 노인만이 큰 화면 바깥으로 지나가는 도시와 어둠과 빛을 보며 어리둥절하게 앉아있었다. 나쁘지 않은 소외감, 잠오지 않는 외로움. 그런 기분을 내내 느끼다가 연립의 8호로 돌아오는 삶. 연락올 곳도, 연락할 곳도 없는, 저 구석의 거미 같은 삶.
 
그 때, 거미가 갑자기 톡 하고 떨어졌다. 노인은- 거미가 떨어졌네, 멀뚱히 있다가 이내 벌떡 일어나 거미를 찾기 시작했다. 다른 곳으로 가서 집을 짓나 싶어, 허공을 더듬어 혹시 있을지 모를 거미줄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저 허공이었고, 구석은 먼지로 가득했다. 우풍에 가끔씩 흔들리는 거미집만 덩그러니 구석에 놓여있었다. 노인은, 그저 선 채로, 비어버린 거미집만 바라보았다. 노인의 얼굴 가득한 굵고 얇은 주름살이, 흔들리는 거미줄처럼 조금씩 씰룩거렸다. 이따금씩 욕지기처럼 올라오는 삶의 경련처럼. 

 취기가 올라와 벌게진 얼굴을 들고, 노인은 파카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 절취선 ------------------------           
   
 양말을 신은 노인의 발이 의자에서 떨어지듯 내려왔다.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노인의 발이 부르르 떨렸다. 노인의 팔 그림자인가, 방바닥 위 장판의 희미한 어둠이 마구 산란하였다. 이내 노인의 발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땅이 그를 그리워하듯, 그를 당길 듯이, 그의 두 다리는 좌우로 흔들거렸다. 중력은 노인을 감쌌고, 노인은 이제 중력에서 자유로워진 껍질이 되어갔다. 20. 그 후의 시간은 한 장도 남아있지 않은 낱장의 일력엔, 매직으로 흘려쓴 검고 굵은 글씨체로, 忌日(기일)이라 적혀있었다. 비어있는 거미줄. 켜져있는 TV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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