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박종배
정석현
정동희
한일수
정윤성
크리스티나 리
Shean Shim
송영림
김준
엔젤라 김
오클랜드 문학회
박현득
박명윤
김영안
Mina Yang
써니 림
여디디야
강명화
새움터
수선재
휴람
봉원곤
마리리
김임수
이윤수
조성현
박기태
유영준
성태용
김철환
피터 황
Jane Jo
신지수
오즈커리어
Jessica Phuang
김수동
박승욱경관
최성길
동진
이동온
김지향
이현숙
한 얼
빡 늘
CruisePro

욕망

박지원 0 1,246 2015.12.10 13:50
사실 욕망이란 잃었을 때, 비로서 서서히 그 욕망의 실체를 드러낸다.

거기까지 썼을 때, 카페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깊게 눌러쓴 검은 캡 모자, 닳아빠진 갈색가죽점퍼를 입고 다 헤진 청바지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검은 구두를 신은 사내는, 누가 보아도 거지였다. 당연한 소리지만 거지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욕망을 잃은 인간, 혹은 욕망이 넘쳐나는 인간. 

때마침 욕망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기에 나는 그 거지를 예의 관찰했다. 다듬지 않은 무성한 잡초같은 수염이 얼굴에 푸석하니 붙어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어쩌면 나보다 어릴 것도 같은 인상이었다. 거지는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담배를 구걸했다. 모두들 담배는 없는 듯 손사래를 치거나 아예 무시를 했고, 담배 한 개피 가격은 훌쩍 뛰어넘을 커피를 홀짝거리며 담소했다. 이야기를 나누고픈 욕망, 커피를 마시고 싶은 욕망. 그리고 담배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테이블마다 충돌하고 있었다.

깊게 눌러쓴 모자 탓에 더욱 그늘져보이고 무엇인가 바싹, 건조해보이는 이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사람이 욕망을 잃는 순간은 결국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순간일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아스라한 연기를 폐부에 깊숙이 찌른 채, 욕망의 실체를 한 줌 가슴에 넣고 욕망을 잠시동안 잃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사람이 어느 날 운 좋게도 길에 떨어진 담배 한 보루를 발견한다면? 그는 자신의 욕망을 잃은 채 한 보루 만큼의 시간을 욕망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사람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시대에 널찍하니 게시된 패러다임은 결국 “돈”이라는 한 단어로 귀결되어진다. 돈이 아무리 많은 사람도 어찌되었든 돈줄을 꼭 쥔 채 놓으려 하지 않고, 그러기에 돈이 많은 사람으로 불릴 수 있다. 기부를 아무리 자주하는 사람일지라도 돈줄을 쥐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결국 그 돈은 타인으로부터 나온다. 돌고 도는 욕망인 것이다. 돌고 도는 욕망에 의해 좌표가 설정되고, 그 산술적 명제에 따라 주저앉거나 이동하는 사람들. 그 돈으로는 담배를 살 수도 있고, 멋진 휴양지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멍 때리는 시간조차 초조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 단일방향의 지시등을 따라 거리는 늘 러시아워다. 가고 싶지 않은 데도 등 떠밀려 가야하는 것. 그리고 잃기가 거의 “불가피하기에” 실체를 드러내기 어려운 것. 많은 이들이 혼란해하고 혹은 멀찌감치 선 채 초점없이 주시하고 있는 것.
 
거지가 뚜렷한 초점의 욕망을 흔들거리며 내게 왔다. 카페의 햇살이 순간 거지의 숙여진 얼굴에 비춰들었다. 거지는 약간의 신음소리와 함께 고개를 들어 카페 유리 너머의 태양을 바라보았다. 정오를 약간 넘긴 시각의 햇볕이었다. 거지의 눈은 예상 외로 조금 맑은 듯 보였다. 햇살을 가리키고 있던 눈의 초점이 조금씩 거리로 향했다. 거리를 걷는 일상의 사람들과 자동차들. 파란 하늘 아래 펄럭거리는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를 광고하는 푸르고 빨간 깃발. 건너편 2층의 조그만 플랫의 발코니에서 술을 마시는 젊은이들. 도심의 공기. 사탕. 모자. 껌. 발자국 소리. 소유.. 같은 것들이 거지의 푸른 눈에 비쳐지고 있었다. 마치 글자처럼. 불규칙한 집합적 배치처럼. 

거지의 푸른 눈은 순간 욕망을 잠깐 잊은 것처럼 보였고,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유하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욕망, 소유하고 있는 것을 지키려는 욕망들이 넘실거리는 거리. 그리고 내 옆에는 육체 외에 그 무엇도 소유하지 못한 듯 보이는 이가 욕망에 이끌려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계속 가만히 내 옆에 서 있었다. 

마침내 자신의 할 일이 생각난 듯 내게 말을 걸었다. You got a cigarettes? Can I get one? Please? 나는 늘 그렇듯 대답했다. Sorry. 거지는 계속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다가 내게 그럼 펜과 종이를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펜과 종이를 빌려주었고, 그는 햇살로 인해 그림자가 조금 길어진 펜으로 종이 위에 커다랗게 썼다. “Help” 그림자에서 글자가 나오는 듯한 느낌의 비스듬한 각도에서 나는 그의 적혀진 욕망을 한자한자 읽을 수 있었다. 그는 고맙다고 말한 뒤 자신의 욕망이 적힌 단어를 들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 작은 장난감 총 같은 욕망을 거리에 초라하게 발포하는 것. 실체를 드러내지 못한 욕망을 손에 쥔 채 그는 거리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앉을 것이다. 그의 욕망은 대부분 무시될 것이다. 혹은 그가 직접 쓰레기통을 뒤져 자신처럼 버려진 반쪽 짜리 욕망에 불을 피워 물겠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욕망을 욕망하는 사람들을 한껏 비웃으며- 이 자식들아, 너희들도 나처럼 반쪽 짜리 욕망에 의지하고 있을 뿐이잖아, 중얼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

 플러스 광고

(주)뉴질랜드 에이투지
뉴질랜드 법인 현지 여행사 / 남,북섬 전문 여행사 - 패키지여행, 자유여행, 해외여행 / 진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회사!! T. 09 309 3030 T. 09 309 3030

벙어리 장갑

댓글 0 | 조회 782 | 2016.05.26
너는 장갑이 싫다고 했다. 장갑이 왜 싫으냐, 물었더니 장갑은 다섯손가락 모두를 만들어야 해서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장갑이 싫은 것이 아니라 장갑을 만들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고… 더보기

치과 (Ⅱ)

댓글 0 | 조회 1,108 | 2016.05.11
N의 동동거리던 발이 움직임을 멈춘 것은 의사가 주사바늘을 N의 입 속에서 뺀 이후였다. 기절했나? 나는 고개를 기웃거렸지만, N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각도였다. 의사는 나갔고… 더보기

치과 (Ⅰ)

댓글 0 | 조회 2,506 | 2016.04.29
N과 함께 밥을 먹는데, N이 요즘 따라 자꾸 볼살을 씹는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양치를 하러 갔었던 N이 달려와 플래시를 켠 핸드폰을 건냈다. 사랑니가 났다고 했다… 더보기

파랑과 검정

댓글 0 | 조회 1,621 | 2016.03.24
인식이 색깔을 바꾼다.아주 어렸을 때, 내게는 스물네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던 크레파스가 있었다. 그 중 몇 개의 색깔을 닳도록 사용하고는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파란색이었다. 내 … 더보기

댓글 0 | 조회 1,341 | 2016.02.25
무뎌진 발 뒤끝의 아릿함. 침대 위에서 내려오던 내 발 뒤꿈치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던 옷가지들도. 방 안 가득 베어있던 담배향들도. 익숙한 손가락의 까칠함에 화들짝 고개를 내저… 더보기

안경

댓글 0 | 조회 1,085 | 2016.02.11
오빠가 사라졌다.안경이 너무 오래도록 보이지 않아 이상한 느낌에 오빠의 방에 가보았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냄새에 비해 꽤 정갈한, 빛이 들지 않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오빠의 방… 더보기

식물과 생각

댓글 0 | 조회 1,295 | 2016.01.28
8월부터, 웰링턴을 떠나 여기에 온 후 많은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고추, 애호박, 피망, 해바라기, 토마토, 가지.. 주로 먹을 것들인데, 이는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보고자 하는 … 더보기

거미집(Ⅱ)

댓글 0 | 조회 899 | 2016.01.13
<<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누렇게 뜬 천장 구석에, 거미줄이 하나 쳐져 있었다. 거미줄 위에 다리가 긴 거미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저 거미는 왜 저기 있… 더보기

거미집(Ⅰ)

댓글 0 | 조회 1,165 | 2015.12.22
약 혹은 총기류를 쓰지 않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살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목을 매는 자살인 교사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투신의 방법. 노인은 그 두 가지 중… 더보기

현재 욕망

댓글 0 | 조회 1,247 | 2015.12.10
사실 욕망이란 잃었을 때, 비로서 서서히 그 욕망의 실체를 드러낸다. 거기까지 썼을 때, 카페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깊게 눌러쓴 검은 캡 모자, 닳아빠진 갈색가죽점퍼를 입고… 더보기

리더의 조건

댓글 0 | 조회 1,115 | 2015.11.26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반장이 되었다. 그 때는 반장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학급회의를 주재하고, 선생님이 없을 때 아이들을 조율하고. 그래서 기어코 선거… 더보기

B 에게

댓글 0 | 조회 1,108 | 2015.11.12
안녕하세요. 동갑이지만, 매우 친한 사이이지만, 이번 편지에서는 말을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편지를 쓸 때의 제 문체 성향 탓이니, 우리 사이가 멀어졌다거나, 그렇게는… 더보기

댓글 0 | 조회 1,069 | 2015.10.29
일어났다. 나는 푸른 약과 붉은 약을 한 알 씩 따뜻한 물과 함께 삼켜냈다. 오전 2시. 춤을 추고 싶어서, 클럽에 가기로 했다. 대충 옷을 걸치고 나와보니 이미 클럽 앞은 손목 … 더보기

댓글 0 | 조회 1,103 | 2015.10.15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다. 어처구니없다, 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처구니 없다, 라는 것은 감정의 한 종류니까요. 제가 지금 감정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는 상태일까… 더보기

자존감 (A면-타인과의 비교 그리고 화)

댓글 0 | 조회 1,172 | 2015.09.24
화가 난다. 그것을 틱낫한은 이렇게 표현했다. 온 몸 가득 독이 퍼진 것이라고. 독이 퍼진 것을 알아달라는 표현이니까, 상대방은 화난 사람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고. 나는 그것이 … 더보기

남겨진 것들

댓글 0 | 조회 979 | 2015.09.09
이사 뉴질랜드에 와서 네번째 이사를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예 웰링턴이 아닌 다른 먼 지역으로 가는 일이었고, 생각보다 재미있고 힘에 부친 일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렌트라는 것… 더보기

江(Ⅸ)

댓글 0 | 조회 1,133 | 2015.08.13
물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잠이 든 다음 날 아침. 쓰레기통이 된 두 개의 배럴. 배럴 사이로 흐르는 습기와 강의 물냄새. 아침 산바람에 뒤척거리는 노란 텐트. N이 이를 닦자며 … 더보기

江(Ⅷ)

댓글 0 | 조회 933 | 2015.07.29
일어났다. 4일 째. 아침. 강 위에서의 마지막 숙박지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중류에서 하류로 접어들고 있었다. 배를 타고 오는 동안, 강의 흐름은 조금씩 조금씩 느려졌고, 선… 더보기

江(Ⅶ)

댓글 0 | 조회 984 | 2015.07.15
짐을 모두 싣고 난 후 우리는 무릎까지 차오르는 강변의 물에 바지를 적셔가며 배에 올랐다. 강 위에서의 3일차. 하루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우리는 배가 있는데 왜 … 더보기

江(Ⅵ)

댓글 0 | 조회 967 | 2015.06.24
오후 네 시. 눈을 떴다. 천둥이 치고 있었고, 하늘은 말라있었다. 정말 바짝 마른 파란 하늘 위에 구름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건조하게 붙어있었다. 오래된 페인트가 갈라지듯, 쿵… 더보기

江(Ⅴ)

댓글 0 | 조회 1,037 | 2015.06.09
다음 날 아침. 아직도 마르지 않은 축축한 항해용(?) 옷을 입고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평상 위에 올려놓았던 종이컵의 밥이 사라졌다. 은박지가 제멋대로 뜯어져 있었고, 누군가 핥… 더보기

작업기(Ⅵ)- 발매 그리고 사기

댓글 0 | 조회 1,110 | 2015.05.27
초심을 찾기까지 아무런 곡을 작업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12월, 1월, 2월이 지나갔다. 긴 크리스마스 휴가와 왕가누이 여행, 부모님의 방문 등 그 사이에 많고 작은 일들이 … 더보기

신해철

댓글 0 | 조회 1,104 | 2015.05.13
오랜만에 글을 쓴다. 뭔가 오랜만이라는 느낌이다. 시리즈 아닌 시리즈물을 쓰다보니 어렵다. 분량조절에 실패한 탓에 자꾸 사골처럼 우려먹는 기분이다. 사골은 그래도 오래 우린 맛이라… 더보기

작업기(Ⅴ)-패

댓글 0 | 조회 971 | 2015.04.30
우선 너무 기쁜 나머지 바로 답 메일을 보냈다. 보낸 답장은 내가 찍었던 단편영화가 첨부된 채였다. 그 의도는 “나는 이러이러하게 쓸모가 있으니 투자 대비 괜찮을 겁니다”의 의미였… 더보기

江(Ⅳ)

댓글 0 | 조회 1,082 | 2015.04.15
그렇게 세 번째 뒤집혔던 배를 타고 강의 상류에서 하류로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뒤집어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찰나에 첫 캠프사이트 Ohinepane가 있다는 초록색 팻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