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사랑을 주고받는 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가족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나는 이런 사실을 가슴으로 깊이 느끼면서 깊은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합니다.
처음 뉴질랜드에 와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었습니다. 우주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우주 사진 속의 광경이 밤하늘에 그대로 전시가 되었으며, 여기저기에서 떨어지는 별똥별들의 향연과 더불어 남십자성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전에 시력검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40년 가까이 콘택트렌즈를 끼고 살고 있는데, 렌즈를 바꿔야할 시기가 되어 시력측정을 한 것입니다. 크라이스트쳐치 지진 때문에 거처를 파미로 옮긴 한국인 검안사께 시력측정을 받았는데, 객지생활 15년 동안의 체증이 확 내려간 것처럼 가슴이 시원했습니다.
렌즈를 잘 때도 끼고 자는 버릇이 있어 산소 공급 부족으로 안구의 실핏줄에 주름이 생겼는데, 그 주름이 시한폭탄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증상 없이 멀쩡하다가 갑자기 실명을 하게 되는 경우의 한 예라고 합니다. 그런데다 가족력인 녹내장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같아서 정밀검사를 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콘택트렌즈를 오래 끼다 보니, 안경을 쓰면 어지러워서 생활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렌즈를 끼지 못하는 생활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는데, 렌즈를 빼고 치료를 받아야하는 상황이 되니 암담하더군요. 하지만 평생 함부로 부려먹기만 했었던 눈을 위해 한동안 렌즈를 빼고 있기로 했습니다.
지금 렌즈를 벗고 컴퓨터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흐릿하게 겹쳐 보여 불편하긴 해도 할 만하군요. 글을 쓰는 작업에 눈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손가락으로 움직이는 작업이라서 가능한 것 같습니다. 영자 키보드로 한글을 치고 있는데, 처음 한글자리를 익힐 때보다 좀 더 빠르게 적응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여 손에 익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편리하고 고마운 일이더군요.
요리도 편하게 잘하고 있고, 계단도 잘 오르내리고, 햇볕 아래 앉아서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평소 생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기억력이 시원찮아서 물건들을 늘 제자리에 놓아두는 습관이 있는데 그 습관 덕도 충분히 보고 있습니다.
섬세한 센스를 필요로 하는 일을 하지 못하여 답답하긴 하지만, 평생을 혹사시켰었던 눈에 대한 미안함과 그 와중에도 이렇게 잘 버텨주었던 눈에 대한 고마움에 이만한 불편이야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오히려 그동안 못 느꼈었던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가슴 가득 느끼게 되어 감사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아르바이트부터 하던 일 모두 다 접어 두고 오직 눈에만 신경을 쓰고 있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지내야 하지만, 몇 달 전부터 복용하고 있는 약들이 더 필요하여 GP를 만나야 했습니다. 현재 집에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바람에 버스를 타고 가야해서 오후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둘째가 나를 데리고 병원에 함께 갔습니다.
쾌활한 GP의 약 처방전을 받고 둘째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가는 카페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둘째는 나를 남겨 둔 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만 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 종점이었기 때문에 나 혼자서도 충분히 탈 수 있을 거 같아서 아이를 안심시키고 헤어졌습니다.
버스를 타야할 시간이 되어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가족들이 우르르 내게로 몰려오는 것입니다. 첫째와 셋째 그리고 남편까지 내가 걱정이 되어 각자 짬을 내어 나에게로 찾아 온 것이었지요. 남편의 에스코트로 집까지 편안하게 잘 돌아왔는데, 가족들의 나에 대한 사랑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밝은 대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별들이 캄캄한 밤이 되면 빛을 발하듯 사랑 또한 시련 속에서 제 빛을 보여준다는 걸 가슴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남십자성처럼 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서로의 지킴이가 되어주는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마름모꼴인 네 개의 남십자성. 대각선이 십자가로 보이는 남십자성.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남십자성. 우리에게 남십자성 같은 가족이 있어 인생길이 아무리 험해도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