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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Ⅴ)

박지원 0 1,086 2015.06.09 17:17
다음 날 아침. 아직도 마르지 않은 축축한 항해용(?) 옷을 입고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평상 위에 올려놓았던 종이컵의 밥이 사라졌다. 은박지가 제멋대로 뜯어져 있었고, 누군가 핥아먹기라도 한 듯 밥만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조금씩 깨달아갔다. 어제 들렸던 소리는 포썸들의 숨소리였다는 것을. 여기는 야생이었다. 더 이상 웰링턴 고층 빌딩의 안락한 방이 아니었던 것이다.

첫째 날 배가 세 번 뒤집어졌었기에 우리는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그렇지만 웃으려고 애를 쓰며 텐트를 주섬주섬 정리하고(원터치텐트의 위력은 대단했다. 단 2분 만에 우리의 집이 사라졌다) 미역국을 끓여먹고 배에 올랐다. 끼익, 강물과 배의 긴장감 있는 마찰음이 내 머릿속에서 기괴한 소리로 변환되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아침 속에서, 아름답고 웅장한 병풍 같은 암벽들이 강의 기다란 몸을 감싸고 있었다. 태양은 조용히 강물 위에 그 빛을 흘리고 있었고, 구름 같은 배들은 하늘을 떠다니듯 수면 위에 비쳐졌다. N과 나는 배에 오르는 방법도 잘 몰라서, 주변 사람들이 배를 타는 것을 잘 관찰한 후 배에 올랐다. 다시금 구명조끼의 플라스틱 버클을 단단히 채웠다.

노란색 Explorer 31호를 타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초반부터 물거품이 강의 뱃살을 거칠게 가르고 있었다. 무서웠다. 옷도 아직 덜 말랐다. 선장님, 명령을! 나는 뱃머리에 앉은 N에게 지시하달을 요구했다. 왼쪽! 오른쪽! 오른쪽! 왼쪽! 노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강의 흐름 위를 두드려댔다. 그리고 우리는 물살을 “탔다.” 분명 주변 사람들에게는 어색해보였겠지만, 우리로선 기념비적인 첫 번째 위기 극복이었다. 노란 배의 표면은 비늘이라도 된 듯 강의 거친 호흡을 머금고 반짝거렸고, 뱃머리는 돌고래의 머리처럼 강의 하얀 물살을 얇게 저며냈다. 둥실둥실. 놀이기구를 탄 듯 규칙적인 5도 화음으로 배 위 우리 몸들은 위 아래로 움직였다. 우어어어어. 처음 낚시를 했을 때의 첫 손맛처럼, 항해(?)의 맛에 우리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급기야는 물살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정말 가이드조차 없는, 위험을 머금은 거대한 물 위에서 우리는 자연의 위협을 당당히 즐기는 해적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빠른 유속을 지난 후에 찾아오는 안도감과 긴장이 풀려버릴 때의 해방감을 물기 어린 자연이 조용히 감싸주었다. 각종 새들이 봄의 꽃처럼 날개를 들어 기지개를 펴고, 절벽 위에서 유성처럼 낙하하는, 무명의 폭포들이 강에게 말 거는 소리. 지구인인 것이 송구스러울 정도의 수많은 지구들이 눈 안에 들어왔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노를 놓고 그 정경을 바라보았다. 많은 사연들을 생각했고, 앞으로의 사연들을 생각했다. 강의 한자는 절묘하다. 물 수와 소리 음이라니. 수많은 소리들이 강의 정적과 함께 노 위에 맺혔다. 얼마나 많은 소리들이 이 강 위를 지나갔을까.

4 시간 후 마침내, 두 번째 목적지 Whakahoro 표지판이 보였다. 가끔 표지판이 나뭇잎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는 세 번의 침몰로 지도도 분실했기에 주변을 상당히 잘 살펴야했다) 표지판을 따라 다른 지류의 골짜기로 배를 이동했다. 약간 좁은 골짜기로 들어가니 주위가 조금 어두워졌고, 조그만 새들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물의 흐름이 갑자기 굉장히 느려지고 있었다. 마치 고여있는 물 위를 걷듯이 힘겹게 노를 저어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말로만 들었던 upstream이 나왔다.

upstream이라 하는 것은 강의 흐름이 반대로 흐르는 것을 말한다. 그 흐름을 따라 배가 갑자기 뒤로 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노를 유속보다 빠르게 젓든지 강이 거꾸로 흐를지라도 흐름을 정말 막말로 오지게 잘 타든지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난생처음 그런 강 위에서 그런 배를 탔으므로, 유속보다 노를 빠르게 젓는 것을 택했다. 무식해서 용감한 건지 용감해서 무식한 건지의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하나둘 하나둘! 더 빨리! 더 빨리! 우리는 그 짧은 시간동안 <거꾸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강산에가 왜 그렇게 열창을 해가며 불렀는지 깨달았고,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자연산 연어들(드물지만 강에서 잡는다는 것을 기준으로)이 얼마나 한 많은 물고기들인지 깨달았고, 자연산 연어알을 먹는다는 것이 정말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자연이 만든 섭리와 본능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하나둘하나둘!더빨리더빨리!간다간다간다앞으로조금씩가는거같아! 그리고 종국엔, 왜 연어들이 그리도 힘차게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 힘차게 알을 낳는 것인지는 깨달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배에서 내려 배에 묶인 밧줄을 잡고 강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금 얕은 곳으로 들어가 배를 끌고 선착장으로 가기 시작했다. 선착장이 제발 가깝기를 하는 마음으로, 이 옷이 제발 오늘 내로 마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배의 밧줄을 잡고 노보다 위대한 인간의 다리로 강을 거슬러 오르니 다행히 선착장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N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배를 나무에 묶었다. 배럴을 꺼내들고 축축한 바지와 함께 캠핑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Whakahoro. 마오리 어고,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욕 같은 이름의 캠핑장은 등산을 해야 있는 곳이었다. 무거운 배럴들과 더불어 약간의 짜증이 몰려오는 순간, 우리는 정말 드넓은 캠핑장을 볼 수 있었다. 언덕 정상의 구릉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추측되는데, 거대한 평지에 텐트 두어 개가 규칙없이 뱉어진 침처럼 초록색 잔디 위에 뿌려져있었다. 심지어 그 위에는, 제법 예쁘장한 카페도 있었다. 핸드폰도 그 어떤 도시적 도구가 없는 상황에서, 카페라니. 이토록 도시적일 수가. 어떻게 이런 곳에 카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반가울 따름이었고, 어찌되었든 인간이 연어가 되기란 피곤했을 뿐이었다. 둘째 날 오후 한 시. 우리는 재빨리 텐트를 치고 젖은 옷을 말려두고 두어 시간의 달콤한 낮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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