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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0 개 2,055 박지원
공간을 좋아한다. 나만의 공간을 좋아한다.

아파트로 이사가기 전의 어렸을 적에는, 그리 독립된 생활을 하지는 못했었다. 부모님과 방을 같이 쓰다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방을 같이 쓰는 생활을 마감한 것이 14살 때였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 드디어 내 방이 생겨서 너무도 기뻤지만, 집이 좁은 탓에 부모님의 옷장이 내 방에 있었다. 침대 위에 누워있으면 웃풍 때문에 머리가 바람에 간간히 흔들렸고, 창틀과 문지방이 휘어있어서 창과 문이 잘 닫히지 않았다. 건물을 어떻게 하면 그렇게 지었을까 싶을 정도로 문제가 많은 집이었다.

독립을 원했다. 책상에 앉아있으면 문틈으로 부모님이든 누구든 나를 볼까봐 두려웠고, 창문에 부착되어 있었던 열리지 않는 방충망은 - 창 밖으로 고개를 길게 빼고 몰래 담배를 피웠던 나를 곤란하게 했으며, 고등학교를 그만두어서 백수상태였던 내게 동향의 창문은 가뜩이나 싫어하던 아침을 지독히도 싫어하게 만들었다. 방 벽에 가학적인 낙서를 했다. 그것을 보신 부모님은 낙서 위에 세계지도를 커다랗게 붙이셨다.

지금처럼 인테리어 정보가 가득한 포털사이트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던 무렵이었기에, 나는 티비나 영화 같은 것에서 보았던 것들로 내 방을 꾸몄다. 방에 향과 촛불들을 피우고, 책꽂이를 종이 같은 것으로 가려 벽처럼 만들고, 고양이 인형 같은 것을 구입해 스탠드 위에 걸어두었다. 아침의 끔찍한 햇살과, 습한 웃풍, 문틈 사이의 불안 같은 것들이, 내가 만드는 방 풍경으로써 메워져 있었으면 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정보를 구하기가 쉬웠던 홍대에 일주일에 한 번씩 드나들기 시작한것도 그 때였다.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타면 2시간 넘게 걸렸던 그 곳에서 다양한 작가들과 동경할 만한 그림들과 색깔들을 만나 내 공간을 상상했다. 내 미래 공간의 목표는 차츰차츰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 방향은 아주아주 요란할 것.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 현기증이 날 정도의 악취미스러운 화려한 공간. 다른 방향은 - 매우 간단명료할 것. 방에 들어가면 가구 같은 것은 침대와 책상 단 두 개만 보이게 할 것. 이를테면 극도의 미니멀리즘과 극도의 맥시멀리즘이었다.

스무살 첫 독립 후 나는 내 공간을 찾아 헤맸다. 아파트, 하숙집, 기숙사, 원룸, 옥탑방, 오피스텔, 반지하. 그나마 그 중에서는 오피스텔이 내 취향대로 그럭저럭 꾸며졌었다. 콘크리트 모양이 그대로 드러난 효과를 준 벽과 바닥, 옵션으로 붙어있던 TV는 치워버렸고, 오로지 책상과 기타, 침대만이 내 방에 있었다. 옷장은 베란다에 두었고 방벽에는 우쿨렐레 하나만 걸어두었다. 처음에 방에 놀러왔었던 친구들의 말들은 모두 한 가지 의견으로 통일되었다. 야, 정신병 걸리겠다.

정신병이 걸릴 법한 방을 나와 잠깐 본가에 머물다가 뉴질랜드에 왔다. 주당 120달러짜리 웰링턴시티 근처의 집이었다. 돌이켜보면 굉장한 곳이었다. 내 방만 유독 카펫이 없었고, 덕분에 구멍이 뻥뻥 뚫린 마룻바닥에서는 때때로 조그만 쥐들이 나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도 거기서 살아보겠다고 천장에 야광별을 잔뜩 붙이고, 책상도 만들어보고, 빨랫줄로 방구석과 구석을 이어보고, 2층 침대를 사서는 1층을 비우고 복층의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거의 창고 혹은 car park 수준이었던 그 곳에서는 어떻게 하든지 간에 보증금은 받을 수 있을 것이 명료하다고 판단했었다. 때문에, 내 멋대로 꾸미고 살았다. 그 곳에 살던 시절 잠깐 웰링턴에 놀러오셨던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셨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니..”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할 때 만났던 그 곳의 landlord는 “방을 잘 꾸몄다”며 바로 보증금을 건네주었다.

지금 사는 곳도 꽤 잘 꾸미고 산다. 비록 내 집은 아니지만 언제 어느 때라도 내 방으로 돌아오면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있다. 내 공간에 대한 확신. 예전에는 몰랐지만, 공간은 결국 자신을 보여주는 시각적 향수 같은 것이다. 내 방의 구조는 내 글과 같다. 나의 세계. 생각해보면 나의 음악도, 나의 영화나 글도, 모두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 심플하거나 독특하거나 극단적이거나.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내 세계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지금의 내 공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의 세계를 내 스스로 방관하는 것은 내게 있어서 빛이 모두 없어지는 것과도 같다. 내 세계의 실종. 그 말인즉슨 나를 향해 내가 쏘아 올린 수많은 조명들이 모두 까맣게 종료되고, 내 그림자를 버리고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비록 폐쇄적일지언정 간혹 나를 찾아드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내 공간을 꾸미고 만들며 사랑한다. 이곳과 이것은, 내 극이다.

외롭고, 의존적인 사람들

댓글 0 | 조회 5,776 | 201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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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Ⅰ)

댓글 0 | 조회 3,690 | 201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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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댓글 0 | 조회 2,699 | 2014.03.26
담배를 피운지는 조금 되었다. 미성년자를 벗어나기전부터 피웠으니 꽤 오래된 셈이다. 내가 좋아하게 되면 으레 그렇듯, 조금은 극단적으로 파고들었다. 담배가 신제품… 더보기

작업기 (Ⅰ) 작곡의 시작

댓글 0 | 조회 2,626 | 2014.05.13
음악 그 자체를 동경해왔었다. 이런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저런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냥 소리가 각자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다. 책상 구석의 똑같은 … 더보기

작업기 (Ⅱ) 알 수 없는 인생

댓글 0 | 조회 2,597 | 2014.05.27
내가 곡을 쓰는 방식은 사실 굉장히 간단했다. 가사를 주욱 써 놓고, 기타로 코드를 하나씩 잡다가 맘에 드는 코드 진행 방식을 찾는다. 그리고 흥얼흥얼거리며 가사… 더보기

파랑과 검정

댓글 0 | 조회 2,554 | 201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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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2,460 | 2016.02.25
무뎌진 발 뒤끝의 아릿함. 침대 위에서 내려오던 내 발 뒤꿈치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던 옷가지들도. 방 안 가득 베어있던 담배향들도. 익숙한 손가락의 까칠함에 … 더보기

B 에게

댓글 0 | 조회 2,403 | 2015.11.12
안녕하세요. 동갑이지만, 매우 친한 사이이지만, 이번 편지에서는 말을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편지를 쓸 때의 제 문체 성향 탓이니, 우리 사이가 멀어… 더보기

작업기(Ⅵ)- 발매 그리고 사기

댓글 0 | 조회 2,362 | 2015.05.27
초심을 찾기까지 아무런 곡을 작업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12월, 1월, 2월이 지나갔다. 긴 크리스마스 휴가와 왕가누이 여행, 부모님의 방문 등 그 사이에 … 더보기

화이

댓글 0 | 조회 2,327 | 2014.02.25
영화 <화이>. 다섯 명의 아빠 중 한 명인 석태가 아들 화이에게 말한다.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이 되거라. 괴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믿음은 순수성의 증… 더보기

江(Ⅸ)

댓글 0 | 조회 2,249 | 201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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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댓글 0 | 조회 2,243 | 2015.12.10
사실 욕망이란 잃었을 때, 비로서 서서히 그 욕망의 실체를 드러낸다. 거기까지 썼을 때, 카페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깊게 눌러쓴 검은 캡 모자, 닳아빠진 … 더보기

식물과 생각

댓글 0 | 조회 2,231 | 2016.01.28
8월부터, 웰링턴을 떠나 여기에 온 후 많은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고추, 애호박, 피망, 해바라기, 토마토, 가지.. 주로 먹을 것들인데, 이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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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2,219 | 2015.12.22
약 혹은 총기류를 쓰지 않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살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목을 매는 자살인 교사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투신의 방법. 노인… 더보기

자녀들의 나이 값을 쳐주는 부모

댓글 0 | 조회 2,210 | 2015.01.14
너무 되바라진 아이들을 보면 사실 인상이 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 특히 한국부모이기 때문인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른들이 있는 곳에서나 공공장소에… 더보기

리더의 조건

댓글 0 | 조회 2,205 | 2015.11.26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반장이 되었다. 그 때는 반장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학급회의를 주재하고, 선생님이 없을 때 아이들을 조율하고. … 더보기

금연

댓글 0 | 조회 2,193 | 2014.10.15
큰 원이 있는 방 안에서, 남자는 턱을 괸 채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동색 책상을 앞에 둔 채 검은 의자 위에 앉아 멍하니 촛불 너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 더보기

치과 (Ⅱ)

댓글 0 | 조회 2,185 | 2016.05.11
N의 동동거리던 발이 움직임을 멈춘 것은 의사가 주사바늘을 N의 입 속에서 뺀 이후였다. 기절했나? 나는 고개를 기웃거렸지만, N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각도였… 더보기

어떤증명

댓글 0 | 조회 2,174 | 2012.09.26
어느날 바닷가 주변을 친구와 걷고 있을 때, 지붕이 없는 스포츠카 한 대가 지나갔다.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바닷가 근처인데, 한국과는 달리 아무 것도 없었다… 더보기

자존감 (A면-타인과의 비교 그리고 화)

댓글 0 | 조회 2,168 | 2015.09.24
화가 난다. 그것을 틱낫한은 이렇게 표현했다. 온 몸 가득 독이 퍼진 것이라고. 독이 퍼진 것을 알아달라는 표현이니까, 상대방은 화난 사람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더보기

댓글 0 | 조회 2,145 | 2015.10.15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다. 어처구니없다, 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처구니 없다, 라는 것은 감정의 한 종류니까요. 제가 지금 감정이라는 것을 가질… 더보기

작업기 (Ⅲ) 요괴의 기다림

댓글 0 | 조회 2,122 | 2014.06.25
원래는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만히 무엇인가 보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구름을 입에 문 새들이 태양 근처로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 나뭇잎을 습관적… 더보기

댓글 0 | 조회 2,104 | 2014.04.23
또 비가 온다. 일주일 넘게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비가 오면 떠오르는 시간 몇 가지가 있다. 아주 어렸던 16살에, 나는 독특한 패션으로 거리를 쏘다녔… 더보기

안경

댓글 0 | 조회 2,084 | 2016.02.11
오빠가 사라졌다.안경이 너무 오래도록 보이지 않아 이상한 느낌에 오빠의 방에 가보았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냄새에 비해 꽤 정갈한, 빛이 들지 않는 방이 눈에 들… 더보기

도박

댓글 0 | 조회 2,062 | 2014.08.27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바다이야기”라는 곳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지느러미를 파닥파닥거리며 버튼을 누르고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