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은 짧고 단정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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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은 짧고 단정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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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학교를 졸업한 교민들은 연령대와 상관 없이 등교 길에 두발 검사 혹은 복장 검사를 받던 기억들 하나 둘씩은 간직하고 계실 것이다.  머리카락은 귀 밑 몇 센티미터, 스커트는 무릎 위 몇 센티미터, 셔츠는 바지 속으로 등의 엄격한 규정을 무기 삼아 한 손에는 자를 들고 정문 앞을 지키던 선도부장 선생님은 어느 학생에게나 무서운 존재였고, 검지 손가락을 유연하게 움직이시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너 일로 와봐’라고 말씀 하시는 날에는 벌을 서거나 매를 맞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 들일 때가 있었다.  적어도 필자의 세대까지는 그랬다.

뉴질랜드 학교에서도 한국처럼 엄격하진 않을지라도 복장 규정, 두발 규정이란 것이 존재한다.  각 학교 마다 Board of Trustee(학교 이사회)가 학교의 운영과 통제를 위해 필요한 규정을 만들 수가 있고, 그 규정에는 복장 규정도 포함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규정에 따라 필자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자동차 창문에 얼음이 서리는 한겨울에도 반바지를 입어야 했고, 남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양말은 내려가지 않게 가터 벨트란 것을 착용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학생이 학교 규정을 그냥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순응하지만, 얼마 전 헤이스팅스의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 다니는 한 학생은 두발 규정에 반발하여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이사회를 고등법원까지 출두시키는 용감한 일을 벌이게 된다.  이 학교의 복장 규정은 두발에 관한 규정 역시 포함하고 있었는데, 이 규정에 따르면 모든 학생은 머리카락이 짧고 단정하여야 하며 자연적인 색깔이어야 하고, 머리카락은 눈을 가리지 말아야 하며 윗옷의 깃, 즉 칼라에 닿지 말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머리를 땋거나 모호크식 스타일로 가운데만 남겨두어도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학생은 태생적으로 머리카락이 곱슬 이어서, 머리카락이 이마를 가리지는 않지만 옆 머리카락이 귀를 덮고, 뒤 머리카락은 윗옷의 칼라에 닿는다고 한다.  2010년부터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여태까지는 특별히 두발 문제로 지적당한 적이 없었다고 하는데, 올해 들어 긴 머리가 지적 받기 시작하면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머리를 자르라는 권고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웬만한 학생이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따를 법도 할만한데, 이 학생은 교장 선생님한테 대놓고 머리를 자르느니 학교를 떠나겠다고 반항한다.  몇 차례의 학부모 면담을 가진 후에도 머리카락을 자르기 거부한 이 학생은 정학 처분을 받게 되고, 이에 불응한 학생과 학부모는 교장 선생님과 이사회의 정학 처벌이 불법이라며 고등법원에 사법 심사(judicial review)를 신청하게 된다.

뉴질랜드 법원은 전통적으로 학교의 처벌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교육 시스템에 있어서 추상적인 정의보다는 실용적 효율을 더 중시 여기는 정책 때문이라 생각되는데, 유엔아동권리협약 (1989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과 뉴질랜드 권리장전 (New Zealand Bill of Rights Act 1990)이 제정된 이후 갈수록 법원이 적극적으로 학교의 처벌 절차에 개입을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 학생이 신청한 사법 심사에서도 고등법원은 학생의 손을 들어 정학처분이 불법이었다는 선언을 하게 되는데, 그 핵심 이유 중 하나로 학교의 두발 규정이 불확실 하다는 점을 들었다.  즉 학교의 두발 규정은 학생의 머리카락이 짧고 단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 학생의 머리카락이 짧은지 짧지 않은지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기에 학교의 두발 규정이 불확실하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 학생이 머리를 묶는다면 윗옷 칼라에 닿지 않고도 머리카락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법원이 이러한 선언을 하는데 영향을 끼친듯하다.

이번 고등법원의 사법심사 결과는 한 학교의 이사회가 규정을 만들고 그 규정을 학생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규정은 명확해야 하고, 그 규정에 따라 처벌을 심사할 때에는 규정 위반의 정도를 참작하여, 정학 같이 심각한 처벌은 최후의 수단으로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 한 것으로 보면 될 듯 하다.  허나, 학교의 교육 방침과 그에 수반된 학생의 처벌 방법에 대한 불만을 사법 소송으로 풀어나가는 학생과 학부모의 행위는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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