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 하루 600만명이 맥주, 소주 1800만병을 마신다는 한국의 요즘. 삶이 고달퍼 마시고 취해서 잊고 견뎌보자는 자기 위안의 방편으로 술을 마시겠지만 도가 넘쳐 만취까지 가야만 하는 나쁜 습관이 문제다. 만취란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니 그들의 추태와 폭력은 짐작이 된다. 주폭 신고가 년 36만건에 경찰업무 26.6%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그 중 70%가 직업이 없는 노숙자라고 한다. 밤만되면 대학가와 유흥가는 술 취한 사람들의 세상이고 지하철 막차는 ‘취객철’이 되어 종점마다 취객들을 끌어내느라 시비가 붙어 난리판이란다. 약주로 마시면 기분 그만인 술을 망주로 만들어 버리는 그들. 그런 세상이 안타깝다.
적당히 마시면 술처럼 멋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내게 있어 술은 칭찬하고 싶은 좋은 음식으로 아름다운 사랑이고 정서이며, 새로운 힘이고 멋진 추억이기도 하다.
귀가를 알리는 ‘벨’ 소리에 현관문을 여는 순간 확 술냄새를 풍기며 덥석 품안으로 끌어안던 남편. “내 사아랑 다앙신 오늘 너어무 예쁘으다” 입이 간지러워 평소에 못하던 말들을 서슴없이 뱉어내며 수다스러워질 때 민망함보다는 잔잔한 행복감으로 가슴이 떨렸었다. 권태롭던 일상의 짜증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재충전의 기회로 그런 날들이 자주 있기를 은근히 바랬으니 나는 술을 권하는 아내였다.
“ㅇㅇ아 네가 사다준 떡도 잘 먹었으니 이제 포도주 한병만 사다주렴” 세상에 이런 이변이 있을까? 자식들에게 용돈한번 손벌려 본 적 없는 강철같이 꼿꼿하게 지켜오던 자존심은 어디 두었기에 갑자기 어린애가 되셨나? 애들 에미가 아니고 느닷없이 처녀때 이름을 호칭하는 것도 평소와 달랐지만 항상 윗트와 유머로써 잘 웃기시던 분이라 그 때는 그냥 넘어갔다. 어머니가 차려내신 조촐한 술상을 앞에 놓고 나를 술친구로 불러 앉혔다. “한잔 같이 마시자 너도 이제 어른이잖아 적당히 마시면 술이 보약이야” 아버지의 기대치에 못미치게 살고 있는 자신이 늘 죄송한 딸이기에 더 깊은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분. 독감을 심하게 앓고 나셨다는 아버지가 많이 수척해 보였지만 늘상 건강을 자신하는 분이라서 다시 구미를 찾는 중이라고만 생각했다. 부녀는 가볍게 술잔을 부딪치며 마셨다.
“참 맛있구나 . . .”
그 며칠후 날벼락같이 아버지의 쓸쓸한 임종소식을 들어야 했다. 아버지와의 처음 건배가 마지막이 될줄이야. 불효하는 딸자식 포도주 한병으로 효도의 기회를 주고 훌훌히 떠나신 아버지. 그 때 나는 어떤 기원을 마음속으로 외쳤을까? ‘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제가 잘 살아서 꼭 효도할께요’ 그랬을 것이다.
지금도 술자리에 앉으면 아버지 생각에 울컥 설움이 복바칠 때가 있다. 유난히 내게 사랑을 주셨던 아버지. 남편과의 특별했던 좋은 추억도 있었지만 아버지와의 마지막 건배가 더 큰 추억으로 잊혀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술을 마시면 우는 악습도 아마 그 이후에 생긴 버릇인 것 같아 지금은 마시지 않지만 가끔씩은 가볍게 취해 보고도 싶다. 술은 진심을 깊이 추억하고 그리움을 일깨우는 촉매제이기에 먼 곳으로 먼저 떠난 사람들과 소통도 하고 싶고 마음놓고 소리쳐 불러보고도 싶다.
술은 기호식품. 적당히 마시고 기분 좋아질 때까지만으로 문화가 바뀌었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