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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한번 나아봐

안진희 0 1,042 2013.03.13 17:28

TV 프로그램을 보는데 사람 많은 마트에서 한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려서 울고 있는데 극적으로 엄마가 나타나 모자 상봉하는 모습을 보고는 여주인공이 “난 나중에 저러지 않을 거야. 어떻게 애를 잃어버려.”라고 한다.

그래… 너도 한번 나아봐..

나도 안 그럴 줄 알았다. 이미 3년여를 키우면서 놓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 현실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아주 마아니 깨달았지만.. 아직도 더 깨질 현실이 남아있더라.

애가 없을 땐 물론 더했고 아들을 놓고 키우면서도 나중에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면 어떻게 해야지 라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었는지 모른다.

친구들이랑 선생님 보는 눈도 있으니 픽업갈 땐 잘 챙겨 입고 가야지~ 도시락은 완전 일품 명품 수제 도시락으로 사주리라~ 우리 아들 똘똘하니까 유치원 가서도 모범생 우등생 하며 잘 하겠지~ 음핫핫.

그런 행복한 상상들을 했었는데… 겨우 한달 만에 철저하게 이상과 다른 현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밥 먹는데 원래 오래 걸리는 아들 꼬셔가며 밥 먹이고 옷 입히고 씻기고 나면 한 시간이 후딱이다. 뭔 유치원 가는 준비하는데 한 시간이나 걸리냐고.. 덕분에 난 세수도 못하고 픽업에 나서는 날이 많다.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로 이는 닦고 가는걸 위안으로 삼는다.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나가는 것도 뭐 당연해졌다. 그나마 수면 바지 안 입고 가는게 어딘가 싶다.

일주일에 딱 한번 금요일에만 도시락을 싸서 보내면 되는데 그것도 막상 싸보니 참 일이다. 뭐 먹는거 빤하니 먹지도 않는걸 이것저것 양껏 챙겨주기도 뭐하고 딱 먹을 것만 싸니 도시락이 내가 봐도 참 초라하다. 명품 도시락은 개뿔, 지난 주엔 아침부터 고구마 튀김하다 다 태우고 그나마 덜 탄 걸로 도시락 싸서 보냈다.

들어가자마자 한달 뒤에 콘서트 한다고 노래 연습 시켜주라고 선생님이 가사 적은 종이를 나눠줬는데 맨날 시켜야지 시켜야지 하면서 부담만 백배 가지고 있다가 정작 콘서트 일주일 앞두고서야 벼락치기로 조금 연습 흉내라도 내봤다. 아 뭔 노래를 불어로도 하고 마오리어로도 한대…

하나밖에 없는 3대 독자 처음 유치원서 콘서트라는 걸 한다는데 엄마란 사람은 당일 날이 되도록 카메라에 넣을 배터리도 안 사뒀다. 당일 날 아침에서야 생각났지만 뭐 10시부터니까 데려다 놓고 얼렁가서 사오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막상 아들은 뭐가 맘에 안 드는지 떨어질 줄을 모르고 주변을 맴돌며 징징거리다 지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하필 책장 모서리에 눈 두덩이를 찍어버리는 대형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아 놔… 눈 안 다친걸 천만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아 진짜…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비디오 촬영 좀 해볼랬더니 눈은 남산만큼 부어가지고 에혀…

그래도 맨 앞줄 제일 가운데 자리를 꿰차고 앉길래 이야~ 사진에 완전 잘 나오겠네~ 했는데.. 한 곡 두 곡 부르면서 가만히 보니 흠… 맨 앞 줄은 공연에 별 기여도 없는 한 마디로 ‘열’반 애들을 앉혀 놓은 거였다. 율동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우’반 애들은 뒤에 서서 열심히들 하고 있는게 아닌가.

공부가 무슨 상관이야. 건강하고 지만 행복하면 되지. 라고 생각했던게 바로 엊그제까지였는데.. 막상 우리 아들이 ‘열’반에 앉아 있는걸 보니 참.. 왜 엄마들이 자식들 공부 못한다고 속 터진다고 하는지 알겠다. 10년 넘게 강사 생활 하면서 공부 잘하는 애들은 엄마들이 벌써 틀려. 딱 잡고 앉아서 관리를 하니까 다를 수 밖에.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 정작 내 아들은 그 노래 하나 제대로 연습 안 시켜서 보냈으니 누굴 탓하랴.
 
아들! 이제 겨우 사회 생활을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참 힘들다 그지? 시간이 가면서 좀더 좋아지겠지?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꿈꾸던 이상이 현실이 되어 있겠지? 그 날을 위해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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