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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코너(Blind Corner)

0 개 2,696 코리아포스트
우리는 아름다운 이 세상에 소풍을 나온 것일까? 일찍이 천상병 시인은 그의 시 '귀천(歸天)'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하늘로)가서,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노라, 읊조렸다.. 그 시행의 끝에는 말 줄임표가 툭툭 찍혀 있다. 가난과 고통, 격동의 모진 세월 속에서 겪은 모든 것들을 차마 필설로 표현 할 수 없어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다니, 이승의 삶은 얼마나 쓸모 있는 것인지. 우리는 소풍 나와서 김밥도 먹고 계란도 까먹고 사이다도 들이키고 보물찾기도 하면서 좋은 날들을 보내기도 했다, 어쩌다가.

원래는 오뉴월 애호박처럼 여린 사람이었지만 세파를 헤치느라 강퍅해진 우리네 시선으로 보면 인생은 험준한 산길이고 가시밭길이며 늪이다. 시인의 달관은, 그래서 우리가 감히 넘보아지지 않는 것이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일이 어디 전문 산악인만이 해내는 일인가. 살아가는 일은 눈보라가 휘몰아 치는 설산(雪山)의 자일에 매달려 구조를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고 동상에 걸린 손발을 잘라내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날은 베이스 캠프가 폭풍우에 날아가지 않도록 텐트 폴더를 부여잡고 온 밤을 새우면서, 텐트와 함께 날아갈 것인지 버틸 것인지, 눈을 부릅뜨고 삶과 죽음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날들도 있다. 수 차례의 시도 끝에 정상을 정복했지만, 하산 길에 크레바스에 빠져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거나, 눈빛에 눈이 멀어 자일에 매달린 채 죽어가기도 하는 것, 그렇게 허망한 것이 인생이다.

산행은 인생과 꼭 닮아 있어서 나는 자주 산을 떠올린다. 운무(雲霧)가 내리 깔린 산의 신령스런 정기를 경외한다. 산등성이, 골짜기, 봉우리로 구비구비 이어지는 산들의 긴 맥은 징글징글한 인생살이 같아서 부여 안고 싶다. 어느 날은 인생의 정수가 응집된 시어(詩語)같은 산 사람들의 말을 음미하면서 그 치열함과 스릴과 고뇌와 허망함에 온 몸을 내던져 보기도 한다.

자일에 몸을 의지한 채 손톱 만큼이라도 튀어나온 돌 부리가 있는지 더듬더듬 찾아 헤매다가 안되어서 암벽의 틈 사이에 손이나 발을 넣어 산을 오르는 재밍(jamming). 살아가면서 이런 궁여지책의 순간과 자주 맞닥뜨린다.

"하산하면 이 에델바이스를 주면서 그녀에게 프로포즈 할 거--"

지척에서 대화를 나누던 동료가 마술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과 빙하로 덮여 위장된 천길 계곡 크레바스(crevasse)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인생에는 크레바스 식의 트릭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자일로 서로의 몸을 묶어 공동 운명체가 되어 함께 등반하는 기술은 안자일렌(anseilen)이다. 이때 누가 하나 바보처럼 굴면 다 죽는다. 크레바스의 이편과 건너편에 자일을 연결해서 크레바스를 건너는 것은 티롤리언 브리지(tyrolean bridge)다. 아! 생각만해도 아찔하고 어느 일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어쩜 한결같이, 깨어 있지 않으면 조난 당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와 암시가 숨어 있는 말들이라서 나는 진저리쳤다.. '소풍'처럼 한숨 돌리게 해 줄 말을 찾던 나는 왠 걸, '블라인드 코너(blind corner)'라는 말 앞에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블라인드 코너'는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삶의 촌각(寸刻), 삶의 오리무중(五里霧中)이 완벽하게 집약된 말이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도 힘든 인생인데 눈을 감고 살아야 한다니 ---.

자일에 의지해 암벽에 매달려 있는 사람의 시야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오로지 바위만을 대면한 채 암벽의 모퉁이를 돌기 위해 발을 옆으로 내딛는 순간, 상상해보라. 숨이 훅, 멈춰지지 않는가. 그 모퉁이를 돌아가면 무엇이 있나, 무슨 광경이 나타날까? 모퉁이를 돌아가면 낭떠러지가 나올까, 킹콩 같은 설인(雪人)이 큰 입을 벌리고 포효하고 있을까, 낙석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지나 않을까, 믿고 내딛은 발 아래 바위가 모래처럼 부스러진다면? 가시 나무가 눈을 푹 찔러 댈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모퉁이를 돌면--- 다음 모퉁이는 꼭꼭 숨어 있고, 그 모퉁이를 돌면 어떤 음모가 숨어 있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나날들을 하루하루 살 수 밖에 없는 인생들---. 우리가 정치에 의지하며 살고 있는 이유는 태생적으로 암흑일 수 밖에 없는 삶에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선각자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는지. 그렇다면 좋은 정치란 무엇인지 답이 나왔다.

뉴질랜드의 정치는 큰 희망과 비전을 주진 않지만, 크게 절망할 일도 없는 그저 그런 상황이다. 대한민국은? 하루하루를 블라인드 코너를 향해 발을 내딛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처음엔 믿기지 않다가 뒤늦게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관심을 좀 갖고, 그리고 나는 수 차례 눈물을 흘렸다. 운구 행렬이 국민들에게 둘러싸여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 내 목에서 꺽꺽 통곡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나는 오래도록 나의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새앙쥐도 먹을 것이 없어 울고 간다는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셀 수 없는 크레바스를 건넜다. 안자일렌을 하다가 배신을 당하기도 했고, 티롤리언 브리지로 남과 북을 연결하기도 했다. 휘어지기 보다는 부러지기를 자처했던 그는 바보처럼 크레바스가 있는 곳임을 알면서도 그 위를 걷기도 했다. 약지 못한 남자는 고단하고 긴 산행을 끝내고 손녀딸과 '소풍' 다니는 일을 즐겼는데, 불어 닥친 블리자드(blizzard)로 그 소풍길을 짧게 끝내야만 했다. 사람들은 그와 함께 했던 산행과 소풍길이 행복했었노라고 이제야 깨닫는 듯 싶다. 그도 하늘나라에서 '참으로 아름다웠던 소풍길' 이었다고 말하길, 선각자였던 그에게 바보들이 감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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