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다단계 월드벤쳐스 ‘허와 실’

해외여행 다니면서 돈도 번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신종 다단계 월드벤쳐스가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호화로운 해외여행을 싸게 보내주며, 돈도 벌게 해줄 수 있다”고 하니 안 넘어갈 사람이 어디 있을까. 불법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신종 다단계 업체 월드벤쳐스의 실체를 공개한다.

“누군가를 통해 이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다면 그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분은 당신과 파트너가 돼서 평생 전세계를 여행 다니며 연금이 될 수 있는 수익도 올릴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회사는 월드벤쳐스입니다.”

월드벤쳐스는 최초로 여행 상품을 다단계에 접목한 미국 회사다. 2005년에 발족해 지금까지 24개국 12만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현재 미국 본사를 제외하고 싱가폴과 홍콩 등에만 사무실이 있다. 대부분 국가에서 온라인을 통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2013년부터 월드벤쳐스는 홍콩을 거점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입소문을 타 한국의 월드벤쳐스 회원은 수천명으로 불어났다.

입소문 타고 인기
전형적 피라미드

회원은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순수하게 여행만 목적으로 가입하는 골드회원과 회원 유치도 할 수 있는 사업자인 플래티넘 회원이다. 일반회원은 회원권20만원과 월회비 5만원, 사업자회원은 회원권 30만원과 월회비 6만원을 내고 가입한다.

월드벤쳐스를 권유하는 사업자는 “대부분 가입자는 골드회원보다 플래티넘회원이 많다”며 “플래티넘회원이 여행 혜택도 더 많을 뿐만 아니라 회원만 가입시키면 돈도 벌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싸게 여행도 갈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솔깃하다.

이런 탓에 포털 사이트서 월드벤쳐스를 검색하면 웹페이지부터 블로그까지 회원을 모집하는 글이 빽빽하다. 일부 웹페이지는 월드벤쳐스의 공식 한국 사이트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월드벤쳐스는 저렴한 여행 상품을 이용해 불법 다단계 사업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업자 회원은 허위 사실을 알리며 신규회원을 유혹하거나 안심시키고 있다.

월드벤쳐스 사업자 회원의 수익 구조는 가입 후 회원 4명을 모으면 월회비가 면제되며, 이후 가입자를 모으면 인세티브가 붙는 구조다. 이들은 보상플랜을 소개하며 10명 유치했을 때 100만원, 30명 유치했을 때 25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또 끌어모은 회원수만큼 직급을 정해 수당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서울시청 박흥석 민생경제과 주무관은 “월드벤쳐스는 지자체에 등록되지 않은 업체다”며 “아무리 상품이 좋더라도 등록하지 않고 영업하는 다단계 업체는 ‘유사수신행위’로 처벌 대상이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서 월드벤쳐스를 종용하며 회원을 모으는 사업자는 적발 시 5년 이하 징역 혹은 5000만원 이하의 벌금해 처해질 수 있다고 박 주무관은 덧붙였다.

2005년 최초로 여행 상품 다단계에 접목
미국 시초…24개 국가 12만명 회원 가입

월드벤쳐스는 시·도 지사에 허가만 받으면 영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애초에 한국에서 허가가 나지 않고 있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한국에서 다단계 영업을 하기 위해서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설립 자본금이 5억 이상 ▲시·도 지사에 등록 후 사업을 개시 ▲공제조합 가입을 하여 의무적으로 소비자피해보상 보험 계약 채결 돼야 한다. 이중 월드벤쳐스가 충족하고 있는 조건은 하나도 없다.

월드벤쳐스가 한국에 정식적으로 진출한 게 아니므로 지사나 한국 법인이 설립되지 않았다. 자본금 5억이 없는 건 당연하다. 설립한 회사가 없으니 시·도 지사와 공제조합에 등록·가입도 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월드벤쳐스 구조상 현행법을 결코 충족시킬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한국서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먼저 현행법상 가입비 명목으로 1만원 이상을 요구하거나 판매원으로 가입하는 조건으로 5만원이상의 제품을 구입하게할 경우 불법 다단계 판매 유형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월드벤쳐스의 경우 가입비만 최소 20만원이다.

또 판매원에게 지급되는 후원수당의 총액은 매출액의 35%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 반면 월드벤쳐스는 매출액의 65%를 회원들에게 후원수당으로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월드벤쳐스의 회사 정책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한국서 정상적인 영업활동은 불가능하다. 과연 월드벤쳐스가 한국 진출을 위해서 회사 정책을 바꿀지 의문이다.

하지만 월드벤쳐스 사업자 회원들은 “올해 월드벤쳐스 한국 지사가 들어와 정식 업체로 등록할 것”이라며 여전히 회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주무관은 “불법 다단계들이 하는 전형적인 거짓말 중 하나다”고 지적했다. 월드벤쳐스를 탈퇴한 한 회원은 “그 말은 2013년부터 했다”며 “아직도 가입이 안 된 걸 보면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월17일에 올라온 월드벤쳐스를 홍보하는 글을 보면 ‘지난 2월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통해 정식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한국지사 설립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라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이 말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사무실이 없다”
온라인으로 모집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능은 시장 감시와 준사법기관으로써 사건을 심결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본 기관은 허가 신청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 영업등록 신청은 각 지자체에서 하는 것이다”며 “이 글을 올린 당사자들이 부당한 허위 광고를 한 것 같다”고 밝혔다. 해당 글을 올린 관계자에게 이 글을 쓴 경위에 대해 묻자 “내가 쓴 게 아니다. 누군가 이 글을 써서 가져온 것뿐이다”고 말했다.

월드벤쳐스는 이 사업을 시작하면 “당신이 당장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워질 수 있다”고 선전한다. 사업자 회원들 역시 “열심히 하면 최고 직급인 IMD(International Market Diractor)가 돼 연봉 1억을 받을 수 있다”며 유혹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월드벤쳐스는 다단계 종류 중 하나인 바이너리 마케팅 방식을 차용한다. 바이너리 마케팅은 매월마다 사업자 회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단순히 회원만 모집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사업자 회원을 중심으로 좌우가 뻗어 나온다. 이 좌우에 회원 한 명씩 총 2명을 가입시킨다. 이 가입한 회원도 마찬가지 좌우에 회원을 가입시켜야 한다.

여기서 수당을 을 받기 위해서는 4/4, 40/40, 400/400처럼 좌우 회원수가 똑같아야 한다. 이렇게 회원 숫자를 맞추면 전형적인 피라미드 구조가 탄생한다. 월드벤쳐스의 경우 30/30(명) 회원을 가입시키면 한 달에 50만원의 수당을 받으며, 90/90(명)을 가입시킬 경우 200만원을 받는다.

바이너리의 맹점은 좌우 숫자를 맞추지 못한다면 1000명을 모집해도 수당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좌우를 맞추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모든 개개인은 자신을 기준으로 했을 때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신만의 피라미드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고 싶어 한다. 이처럼 통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회원을 모으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좌우를 맞추는 게 상당히 어렵다. 만일 사업자가 회원들에게 ‘자신의 밑으로만 가입시켜 수당을 받아 나누자’고 한다면 그때부터 완벽한 피라미드로 전락하게 된다.

최고 직급인 IMD는 3개월간 3000명의 회원을 유지하며 6000만원 이상의 매출을 내야 한다. 이 말은 3개월 동안 제시한 목표액을 못 채우면 수당은 지급되지 않는다. 여기서 IMD가 6000만원 이상 매출을 유지해야 한다. 방법은 신규회원의 가입비와 회원들의 여행비로 채워진다.

다단계 수당구조
정식등록도 안돼

이 때문에 월드벤쳐스 사업자 회원들은 말 그대로 영업을 한다. 특히 전업으로 하는 상위 직급들은 수시로 월드벤쳐스의 패키지여행 상품을 홍보하며 회원들이 여행을 가도록 독려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은 매일 같이 세미나를 열어 신규 회원 유치에 혈안이다.


월드벤쳐스의 중간 직급에 있는 한 사업자는 “회원은 수시로 들어오고 나간다. 목표액에 구멍이라도 나면 내 돈을 풀어 지인을 가입시켜 맞춘다”며 “그게 들어와야 내 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월드벤쳐스는 한국보다는 외국 특성에 맞게 설계돼 있다. 이 때문에 홈페이지에서 여행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영어를 할 줄 알아야한다. 가입자 대부분이 중·장년층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월드벤쳐스를 권유하는 이들은 “번역기를 사용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번역기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오역할 수 있으며 꼼꼼히 따져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가입 당시 영문으로 된 약관을 제대로 읽지 못해 낭패를 당하는 사례가 많다. 기자는 “영어를 못하면 어떻게 약관이나 계약서를 확인하느냐”는 질문에 사업자는 “영문 약관은 구글 번역기로 돌리면 된다”고 답했다. 이들의 전문성도 의심돼는 대목이다.

2013년 한국 상륙…회원만 수천명
“관련법 위반” 사실상 영업 불가능

피해자 김모씨는 “사업자는 내가 지급한 월회비로 여행을 무료로 갈 수 있다고 했다”며 “그동안 모은 500포인트로 여행을 가려고 하니깐 ‘200포인트 이상 쓸 수 없다’고 한다”고 성토했다. 이 때문에 김씨는 추가로 항공료와 교통편을 지불했다. 김씨는 “여행 상품의 절반이 비행기 값인데, 이걸 할인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결코 싼 값이 아니다”고 말했다.

심지어 김씨는 월드벤쳐스를 탈퇴하기 위해 신용카드까지 정지했다고 전했다.

또 월드벤쳐스 상품을 통해 여행을 갔을 때 한 가지 허점이 있다. 바로 현지인 가이드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 미국이나 영어권 국가에서 월드벤쳐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 웬만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영어로 사용하는 가이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여행을 갔다가 외국인들 사이에서 낭패를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월드벤쳐스의 상품은 기타 국내 여행사보다 싼 값에 여행을 갈 수 있다. 누구나 호화로운 해외여행을 꿈꾼다는 점에서 월드벤쳐스의 사업 취지는 충분히 사람들을 끌어들일 만하다. 월드벤쳐스를 가입한 회원들의 면면을 보면 교수나 의사 등 소위 고소득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대부분 월드벤쳐스를 ‘여행 동호회’ 정도로 생각하고 가입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 B씨는 “지인이 이게 여행 동호회라고 해서 나도 친구들한테 권유해서 5명 정도 가입시켰다”며 “지난해 친구들과 말레이시아 페낭을 다녀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월드벤쳐스가 무조건 나쁜 다단계만은 아니다.

나중에 어쩔려고…
푹 빠린 사람들

하지만 이런 취지를 무색하게 월드벤쳐스의 현재 모습은 단순히 사업 아이템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미 한국에서는 월드벤쳐스의 여행상품을 설명하기보다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에서 사업자 활동을 벌이고 있는 웹사이트나 블로그를 보더라도 여행을 가는 행위보다 사람을 모으는 행위에 집중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월드벤쳐스는 아직 한국 홈페이지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업자 웹사이트만 27개나 된다. 일부 웹페이지는 월드벤쳐스의 공식 한국 사이트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들은 여행상품을 소개하기 보다는 월드벤쳐스의 보상플랜을 설명하기에 더 급급한 게 현실이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월드벤쳐스 노르웨이 퇴출 왜? 

지난해 2월 노르웨이 정부는 자국에서 불법 영업을 한 월드벤쳐스에 영업 정지를 명령했다. 노르웨이 도박위원회는 9개월의 조사 끝에 월드벤쳐스를 불법피라미드 다단계 회사라는 결론 내렸다. 월드벤쳐스의 수익 시스템이 ‘여행상품’에서 나오지 않고 ‘회원 모집’에서 나온다는 점과 수입 대부분이 모집 회원들이 독식하고 있으므로 ‘불법 피라미드 업체’로 분류해 영업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월드벤쳐스는 즉각 항소했지만, 심의가 열릴지는 미지수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노르웨이에서는 월드벤쳐스 사업 자체를 금지하고 있어 사업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