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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의 거센 바람 속에서도 텍스트의 가치를 믿으며 책을 통해 깊게 소통하는 한인 모임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인문학 도서를 함께 읽고 열띤 토론을 펼쳐나가는 독서 공동체 ‘책과인’이다. 고전 소설부터 사회, 과학,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두루 다뤄온 ‘책과인’이 이번 달에는 2026 Ring & Read “결혼 북토크”라는 특별한 주제로 모임을 마련했다. 홀로 삶을 꾸려가는 이부터 사랑을 시작한 연인, 그리고 이미 가정을 이룬 부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매개로 ‘결혼이라는 배를 어떻게 지어갈 것인가’에 대해 따뜻한 담론을 나누고자 한다. 깊이 있는 대화와 진솔한 공감이 오가는 저녁 시간을 선물하고 있는 ‘책과인’의 탁재우 책방지기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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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나를 찾고 사람을 만나는 길
나에게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얻는 행위를 넘어 ‘사람을 만나는 일’에 가깝다. 책을 통해 저자를 만나고, 함께 읽는 이들을 만나며, 마침내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독서모임이란 정답을 제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자신과 세상을 더욱 깊이 바라보도록 돕는 장이어야 한다. 현재 뉴질랜드에서 Book Therapy Facilitator로서 TBC를 이끌고 ‘책과인(Book and People)’을 운영하는 동시에, 안디옥세운교회 협동목사로 목회 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겉보기엔 ‘목회자’와 ‘독서 활동가’라는 두 역할이 달라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결국 하나의 동일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바로 타인의 진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가 자신의 삶을 한층 더 깊고 따뜻하게 이해하도록 곁에서 돕는 일이다. 거창한 목표를 이루기보다 뉴질랜드 이 땅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좋은 책을 만나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로 오래 남아 함께 걸어가고 싶다.
이번달 북토크 주제 “결혼” 4권의 책
단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결혼’이라는 관계를 입체적이고 다각적으로 이해해보고 싶었다. 먼저 팀 켈러의 《결혼을 말하다》와 《왜 결혼하는가》는 낭만적 환상을 넘어 ‘왜 결혼하며, 어떠한 기준과 세계관으로 일상의 현실을 함께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적 질문을 던지게 돕는다. 레비나스 철학에 기반한 《곤란한 결혼》은 타자(他者)와의 만남이라는 철학적 관점을 제공한다. 상대를 소유하거나 나와 같게 만들려 하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우리’라는 공동체를 세워가는 깊은 통찰을 준다. 반면 《요즘 부부를 위한 신디의 관계 수업》은 심리학을 바탕으로 실제 부부생활에서 마주하는 감정 표현, 욕구 소통, 갈등 관리 등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 준다. 신앙, 철학, 심리학이라는 각기 다른 창을 통해 결혼을 바라볼 때, 결국 결혼 준비란 단순히 ‘좋은 배우자를 찾는 일’을 넘어 ‘나 자신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TBC BOOK CLUB TRUST’ 설립
“코리아포스트 독자분들과 ‘책과인’, 그리고 TBC 멤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함께 책을 읽고 진솔한 삶을 나누어 준 식구들이 없었다면 외로운 독서가로 남았을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모임인 ‘책과인’은 사람과 사람이 책으로 만나 고독에서 연결로, 고립에서 연대로 나아가는 독서 공동체다. 현재 Te Manawa 도서관과 협력하여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열고 있으며, 연령 제한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한 달간 읽은 책 중 소개하고 싶은 한 권을 가져와 질문을 나누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진행된다. 책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삶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이 큰 매력이며, 간헐적 참여자를 포함해 약 12명의 멤버 중 매회 4~6명이 모여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이러한 성원에 힘입어 2025년에는 뉴질랜드 정식 비영리단체인 ‘TBC BOOK CLUB TRUST’를 설립했다. TBC 산하에는 연령과 관심 분야에 따른 다양한 모임이 존재한다. Theta Book Club은 20~40대 청년들이 고전, 인문, 사회, 과학,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함께 선정하고 읽으며 토론하는 모임이다. Youth Theta Book Club은 청소년들이 긴 글을 읽고 생각하는 문해력과 표현력을 키우도록 돕는 청소년 맞춤형 모임이다. 그리고Theme Book Club은 특정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모임이다. 한 주제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4권의 책을 선정해 진행하며, 그동안 AI, 건축, 결혼 등을 다루어 왔다. 이번 하반기에도 작년에 이어 ‘결혼’을 주제로 북토크를 준비 중이다. 책은 혼자 읽지만 독서가 혼자만의 일일 필요는 없다. 거창한 독서 운동보다는 누군가 편안하게 찾아와 한 권의 책과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는 따뜻한 공간으로 오클랜드 한인 사회에 남아있길 희망한다.
한인 사회의 따뜻함을 위한 ‘책방지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책과인’과 ‘TBC’를 꾸준히 찾아주시는 멤버들 덕분에 모임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깊은 감사를 전한다. TBC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독서의 장을 마련하고 경청을 실천하는 또 다른 ‘책방지기’들을 세우는 일이었다. 감사하게도 올해 첫 책방지기가 세워져 상반기에 ‘건축’ 주제 북토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앞으로도 문학, 과학, 철학, 교육 등 각자의 관심사를 지닌 열 명 이상의 책방지기들이 배출되어, 특정한 한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 건강한 독서 생태계이자 플랫폼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향후 정기적인 독서모임과 북콘서트, 작가와의 만남 등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독립된 북카페나 후원 공간이 마련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거창한 변화보다는 좋은 책을 건네고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갈 책방지기들을 꾸준히 세우며, 오클랜드 한인 동포들이 책을 통해 삶을 깊이 있게 바라보도록 돕는 소박한 자리를 지켜나가겠다. 이름이나 성과를 드러내기보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누군가를 세우고 격려하는 따뜻한 통로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라는 유일한 지향점이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동포 여러분의 삶 가운데 늘 평안과 희망이 가득하시기를 소망한다.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