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 잘못된 친절

[328] 잘못된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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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사 그랬었구나”밤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옆의 누군가에게 망신이라도 당한 듯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바보 못난이) 어리석었던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다시금 그 분의 얼굴을 떠올렸다. 잔잔한 미소로 Thank you를 입속에서 소곤거리던 분. 쇼핑센터 안에서 시선이 부딛칠 때마다 방긋 웃어 주시던 순진무구해 보이던 할머니.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이제야 정신나게 깨닫는 어리석은 사람이었기에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쇼핑센터 파킹장에 차를 대놓고 긴 길을 따라 입구로 들어가는 도중이었다. 보행이 쉽지 않은 노인 한 분이 트롤리를 앞세우고 지축어리며 진로를 방해했다. 나는 그 옆을 빠른 걸음으로 비켜 가다가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아서 뒤를 돌아보았다.(아니, 몸 건사도 힘드는 분이 거기서부터 그것을 밀고 오다니 이상한 분이시네) 벌에 쏘인 다급한 사람처럼 뒤로 돌아가 도와 드리겠다고 말하면서 빼앗듯이 그것을 내가 밀었다. 손잡이 위에 걸쳐진 스틱을 꺼내 그분 손에 쥐어 드리고 유유히 트롤리를 밀었다. 아주 천천히 그 분의 걸음에 맞추려고 했지만 아기 걸음마같은 걸음걸이로 답답하기만 했다. 나는 돌아다 보고 마냥 상냥한 척 웃음을 흘리며 기다려 주기를 몇 번……, 그러는 동안 걷잡을 수 없는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머지 않은 어느 날 나도 저 분을 닮아 갈텐데 그 날이 언제일까? 오 년, 아니면 십 년, 혹시 더 가까이? 오래 서성거리며 시원찮은 왼쪽다리의 불편함이 지금도 만만치 않으니 낡아 가는 기계가 언제 저 모양될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아 고개를 저으며 힘차게 부정해본다. 아직 쓸만할 때 당당해 보려는 듯 자랑스럽게 버티고 서서 기다려 드리고 또 기다리고…, 그 분이 내 가까이 왔을 때 뭐라고 말하면서 다시 트롤리에 매달렸다. 노인이 고집이 있나 안에 들어가면 줄줄이 있는 것을 망년끼까지 있나 보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루하지만 나란히 같이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부터 내 볼 일은 따로 시작되고 그 분과 헤어졌다.

오늘 작지만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과 그러나 저모양 되기 전에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믹스된 각가지 상념들로 느긋한 주말의 쇼핑자체로 별로 재미가 없었다. 밖에 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구름 한 점없는 바다같은 하늘을 바라보니 한결 마음이 차분해졌다. 저쪽 옆에서 자동차 트렁크에 물건을 옮겨담는 그 할머니를 또다시 보게 되었다. 전족을 한 옛날 중국의 여인처럼 수도 없이 지축어리며 물건을 옮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오직 혼자의 삶.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불황에 허덕이며 몸살을 앓는 요즘 젊은이들. 우리도 그런저런 세월 홍역처럼 치루고 나니 늙은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붙여지고 실날같은 한길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저렇게 불편하게 살다가는 삶인 것을…, 되도록이면 그 쪽을 외면하기로 하고 빨리 기분전환을 해야했다. 서울서 온 친구가 그렇게 좋아하는 물 좋은 옥수수를 한 봇따리 샀으니 얼른 달려가서 전해줘야지. 그리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지자.

작은 일에 행복해질 줄 아는 지혜로움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런데 그 분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왜 이제야 깨닫게 되었을까? 당황하고 실소가 나왔다. 트롤리에 의지해서 힘든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이해 못한 나는 잘못된 친절을 베푼 것이었다. 트롤리를 빼앗기고 스틱을 받아 쥐며 얼마나 노여웠을까. 다행히 내 속뜻을 알아주시고 참는 걸로 잘못된 친절을 받아 주신 것이다. 노인이 고집을 부린다고 함부로 생각했을 때 할머니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알량한 당신 친절보다는 이것이 더 나은 것이니 귀찮게 하지 말고 어서 가시오.”라고 독약처럼 무서운 영어가 또 나를 골탕을 먹였음에 아연했다.

(분명히 무슨 말인가를 하셨었지) 쫓아가서 사과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에 잠이 안 왔다. 시선이 마주쳤을 때 방긋방긋 웃어 준 것은 그래도 이쪽 마음을 아셨다는 증거로 삼고 위로를 받는다. 고맙고 너그러우신 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내 잣대로 생각하는 그런 어리석은 친절을 다시 생각하자. 상대가 원하는 게 뭔지 알며 행하는 친절이 정말로 친절임을 명심해야했다.

따끔한 교훈 하나를 얻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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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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