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정부가 7개월의 숙고 끝에 지난달 재조정한 ‘키위빌드(KiwiBuild)’ 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10년 동안 10만채의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장밋빛 공약은 결국 백지화됐다.
그 대신에 여러 다른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재 주택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고 일부 대책은 실효성이 떨어져 재조정한
키위빌드 정책이 또 한 번의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0만채 주택 건설 목표는 “실수”
오는 2028년까지 10만채의 주택건설을 목표로 두었던 키위빌드는 2017년 총선에서 대학 무상 교육 실시와 함께 노동당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집권의 발판을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키위빌드 사업에 20억달러를 배정하면서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 노동당 정부는 당초 올 6월까지 1,000채의 주택건설을 목표로 세웠다.
하지만 키위빌드 사업이 진행될수록 저소득층에겐 너무 높은 소득 상한 자격, 주택 규모에 비해 높은 분양가, 건설업계의 인력 부족과 건축비용 상승 등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되면서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이에 정부는 올 초에 1,000채의 올해 주택 건설 목표치를 폐기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자신다 아던(Jacinda Ardern) 총리는 “10년 안에 10만채의 주택 공급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키위빌드를 통한 주택건설은 지난달까지 300채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부진했고 주무 장관이었던 필 트와이포드(Phil Twyford) 주택장관이 지난 6월 경질됐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메간 우즈(Megan Woods) 신임 주택장관은 지난달 4일 있었던 키위빌드 리셋 회견에서 “10만채의 주택건설 목표는 실수였다”며 목표치를 아예 없앴다.
우즈 장관은 그 대신에 가능한 많이, 가능한 빨리 주택을 건설하겠다는 상투적인 말을 남겼다.
그는 “키위빌드 목표치 때문에 정부는 주택수요가 적거나 없는 지역에 주택을 건설해야 했다”며 “팔리지 않은 키위빌드 주택은 시장에 다시 내놓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조정된 키위빌드 정책이 여전히 정부의 주택 목표를 달성하도록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재조정된 키위빌드
이번에 재조정된 키위빌드 정책은 4,000가구의 내집 마련을 돕기 위한 새로운 ‘진보 주택 프로그램’에 4억달러를 재배정했다.
웰컴 홈 론(Welcome Home Loan)을 퍼스트 홈 론(First Home Lone)으로 명칭을 바꾸고 연간 개인소득 8만5,000달러 미만, 또는 가구소득 13만달러 미만인 경우 오클랜드에서 65만달러 미만의 주택을 구입할 때 최소 예치금 비율이 10%에서 5%로 완화됐다.
또 2명 이상이 각자 1만달러의 퍼스트 홈 교부금(First Home Grants)과 키위세이버(KiwiSaver)를 받아 공동으로 첫 집을 구입하는 방법도 허용된다.
스튜디오나 원 베드룸 키위빌드 주택을 구입한 사람은 판매 제한이 기존 3년에서 1년으로 완화된다.
베드룸 4개 이상 키위빌드 주택의 경우 기존에는 모두 가격상한제가 적용됐으나 최대 10%에 한해 가격상한이 적용된다.
이전에 주택을 소유한 적이 있었던 사람이 키위빌드 주택을 구입하고자 할 때 적용됐던 자산 제한이 폐지된다.
이전에는 퍼스트 홈 교부금 가격 상한의 20% 이상 자산을 가진 사람은 키위빌드 주택 구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시행 가능성 높은 ‘렌트 후 구입 제도’
4억달러가 재배정된 ‘진보 주택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렌트 후 구입 제도’와 ‘공동 지분 제도’가 널리 거론되고 있다.
두 제도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하우징 파운데이션 뉴질랜드(Housing Foundation NZ) 등 일부 기관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다.
‘렌트 후 구입 제도’는 정부나 자선 기관 등이 소유한 주택에 세입자가 시세보다 저렴한 렌트비를 내도록 하거나 렌트비 일부를 적립해 예치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한 다음 약정 기간 이후 주택을 구입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녹색당이 특히 지지하는 정책이다.
녹색당 마라마 데이비슨(Marama Davidson) 공동대표는 “내 집 마련의 희망을 포기한 뉴질랜드인들에게 문을 열어 줄 것”이라며 ‘렌트 후 구입 제도’가 자신의 정치 이력 가운데 최고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공동 지분 제도’는 주택의 소유권 일부를 사는 것으로 보통 25-75%의 소유권을 보유하고 나머지 소유권은 공공기관이 소유하여 집을 매각할 때 발생한 양도 차액을 나누어 갖게 된다.
주택문제 근본적인 해결책 제시 미흡
재조정된 키위빌드 정책은 생애 첫 집 마련을 돕는다는 점에서 일부의 환영을 받았다.
뉴질랜드부동산협회(REINZ) 빈디 노웰(Bindi Norwell) 회장은 “‘진보 주택 프로그램’은 많은 생애 첫 집 구매자들에게 장애물이었던 종잣돈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줄 것” 이라고 말했다.
야당인 국민당의 주디스 콜린스(Judith Collins) 주택담당 대변인은 정부가 몇 년 동안 10만채 저렴한 주택 공급이라고 장밋빛 약속을 해놓고 이제 와서 발을 빼어 국민을 기만했다고 비난했다.
콜린스 대변인은 “목표치를 없앴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라며 “내집 마련을 꿈꾸는 많은 뉴질랜드인들은 재조정된 키위빌드 정책에 실망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새로운 주택장관으로부터 나온 것은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말뿐 주택 공급을 진척시키려는 새로운 방안이 없다”며 “키위빌드가 되어야지 키위호프(KiwiHope)가 되어선 안 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첫 집 구매자의 최소 예치금 비율이 5%로 낮아졌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홈스(Homes) 부동산 웹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오클랜드 주택 판매 가운데 이 조건에 맞은 65만달러 미만의 비율은 25%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분석회사 인포메트릭스(Informetrics)의 가레스 키어난(Gareth Kiernan)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6월 기준 1년간 웰컴 홈 론을 이용해 주택을 구입한 사람은 1,300명 정도에 불과한 사실을 감안하면 새로운 키위빌드 정책이 제시한 최소 예치금 5%의 퍼스트 홈 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첫 집 구매자 수는 제한적일 것” 이라고 전망했다.
시중은행들은 통상 예치금 비율이 5%로 낮은 고객에게 특별금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금리상 혜택을 받지 못한다.
키어난 이코노미스트는 또 “재조정된 키위빌드 정책은 정부가 여전히 키위빌드가 왜 크게 잘못됐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며 “주택 구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택지 공급과 인프라 개선이 우선돼야 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재조정된 키위빌드 정책이 주택공급 부족, 높은 건축자재 비용, 건설인력 부족, 비싼 땅값 등 현재 뉴질랜드 주택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