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패한 NZ의 여전사들

서현 0 4,429 2017.09.1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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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승한 블랙펀스

 지난 8월 26일, 뉴질랜드 여자럭비 국가대표인‘블랙펀스(Black Ferns)’가‘여자럭비 월드컵(Women’s Rugby World Cup, WRWC)’에서 잉글랜드를 꺾고 다시 한번 세계 정상에 올랐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써 블랙펀스는 지금까지 열린 8차례 월드컵에서 모두 5번이나 우승하는 금자탑을 쌓았는데, 이는 세계 최강인 남자대표팀 ‘올블랙스(All Blacks)’도 아직 이루지 못한 경탄할 만한 업적이다. 더욱이 블랙펀스는 남자팀에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정상에 섰다는 점에서 럭비팬들은 물론 국민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는데, 이번 우승을 포함해 지금까지 블랙펀스가 이뤄낸 업적과 도전의 역사를 지면으로 소개한다. 

 

<여자럭비 월드컵과 블랙펀스의 탄생> 

여자럭비 월드컵은 지난 1991년 웨일스에서‘국제럭비연맹(International Rugby Board, IRB)’의 후원 아래 12개 나라가 참가해 처음 시작됐는데, 남자럭비 월드컵은 이보다 4년 전인 1987년에 뉴질랜드/호주 공동 개최로 처음 치러졌으며 당시 올블랙스가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여자럭비 월드컵이 열리기 한 해 전인 1990년 8월에는 당시 뉴질랜드 주최로 미국과 네덜란드, 러시아 등이 참가해 ‘월드 여자럭비 페스티벌(World Rugby Festival for Women)’이 벌어졌다. 

 

당시 처음으로 블랙펀스라는 명칭을 달고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네덜란드와 벌인 첫 번째 국제시합에서 블랙펀스는 56-0이라는 큰 점수 차이로 승리했으며 결국 결승전에서 미국을 물리치고 우승했는데, 이후 블랙펀스는 뉴질랜드 여자 럭비 대표를 뜻하는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이듬해인 1991년에는 드디어 제1회 여자럭비 월드컵이 개최됐는데, 미국이 잉글랜드를 19-6으로 물리치고 대회 첫 우승의 영광을 안았던 당시 대회에서 뉴질랜드는 프랑스와 함께 공동 3위에 머물렀다. 이후 여자럭비 월드컵은 금년 아일랜드 대회까지 모두 8차례 열렸으며 뉴질랜드는 이 중에서 1994년의 2회 스코틀랜드 대회만 빼고 7차례 출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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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의 준결승전 모습

  

<4연속 우승 포함, 5번이나 정상에 선 블랙펀스> 

특히 블랙펀스는 1998년 제 3회 네덜란드 대회에서 미국을 44-12로 꺾고 대망을 우승컵을 안은 이후 연이어 스페인(2002)과 캐나다(2006), 잉글랜드(2010) 대회에서 3차례 결승전에서 모두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4회 연속으로 타이틀을 따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구기 종목 세계 스포츠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대기록인데, 그러나 블랙펀스는 직전 대회인 2014년 프랑스 대회에서는 B조 첫 상대였던 카자흐스탄을 79-5로 대파했지만 이어 열린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14-17로 패하면서 5연속 우승을 향한 발걸음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을 34-3으로 대파했지만 2승 1패를 거둔 블랙펀스는 A조 2위였던 캐나다에 포인트에서 1점 밀리면서 준결승전 진출에 실패하고 결국 5~8위 결정전에서 웨일스와 미국을 물리치고 5위에 오른 바 있다. 지금까지 8차례의 여자럭비 월드컵에서 뉴질랜드를 제외하고 우승컵을 안아본 국가는, 1회 대회를 석권한 미국과 함께 2회와 2014년 7회 대회 등 2차례 정상에 섰던 잉글랜드 등 3개국 뿐이다. 

 

특히 럭비 모국이라고 자부하는 잉글랜드는 그동안 준우승만 5차례였는데 이번 대회를 포함해 그동안 4차례나 우승의 길목에서 블랙펀스에 발목을 잡히는 수난을 당했다. 

 

참고로 1987년 시작돼 2015년까지 모두 8번 개최된 남자럭비 월드컵에서는 1987년과 2011년, 그리고 2015년 등 3차례 우승한 올블랙스가 최다 우승팀인 가운데 호주가 2회(1991, 1999년),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시 2회(1995, 2007년) 우승했으며, 잉글랜드가 2003년에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올블랙스를 꺾고 한 차례 우승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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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랜드와의 결승전 모습 

 

<화끈하게 시작된 블랙펀스의 정상 재도전>

이번 아일랜드 대회는 지난 대회에서 4강에도 못들었던 블랙펀스로서는 재기전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곳까지 가는 과정 자체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1995년부터 여자럭비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왔던 ‘뉴질랜드 럭비연맹(NZRU)’이 돌연 2010년 1월에 지원 예산을 축소한다고 발표해 여자선수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으며 결과적으로 이는 2014년 대회의 부진한 성적으로 이어졌다. 

 

이후 절치부심한 여자선수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똘똘 뭉쳐 대회를 준비했는데, 그러나 지난 6월 뉴질랜드에서 열렸던 캐나다와 호주를 포함한 4개국 대항전에서 블랙펀스가 잉글랜드에 29-21로 패하면서 전망이 다소 어두워진 바 있다.  

 

이번 대회는 8월 9일(현지시간)부터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Dublin)과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나뉘어 개최됐으며 각 대륙의 국가를 대표하는 12개 나라가 참여했다. 대양주에서 호주, 뉴질랜드가 참가했고 유럽에서는 전 대회 우승국 잉글랜드와 주최국인 아일랜드, 그리고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웨일스가 나왔으며 북미 대표로는 캐나다와 미국이, 그리고 일본과 홍콩 등 2개국은 아시아 대표로 각각 나섰다. 

 

3개조로 나뉜 본선 1라운드에서 A조의 블랙펀스는 8월 9일 웨일스와 벌어진 첫 번째 경기를 44-12로 승리한 뒤 이어진 홍콩과의 경기에서는 뚜렷한 실력 차이를 보여주면서 무려 121-0이라는 이번 대회 최대 점수 차이로 물리쳤다. 블랙펀스는 이후 8월 17일 속개된 경기에서 캐나다마저 48-5로 물리치고 3전 전승으로 A조 1위에 올라 일찌감치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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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전 하카를 펼치는 블랙펀스  

 

<부진했던 호주와 먼 갈길 확인한 아시아 대표> 

B조에서는 잉글랜드가 미국과 스페인, 이탈리아를 제압하고 역시 3전 전승 조 수위로 준결승전에 진출했고 2승 1패를 기록해 3개조 2위 중 성적이 가장 좋았던 미국도 준결승전에 진출해 뉴질랜드와 맞붙게 됐다. 

 

또한 C조에서는 프랑스가 주최국이었던 아일랜드와 호주, 일본을 각각 물리치고 역시 3전 전승으로 준결승전에 진출해 잉글랜드와 맞붙었다. 한편 호주는 첫 경기에서 아일랜드에 17-19로 패한 뒤 프랑스에게 48-0으로 완봉패를 당했으며 이후 일본에게만 29-15로 이겨 1승 2패 성적으로 C조 4개국 중 3위에 머물렀다.

 

상위 팀들과 수준 차이를 보이면서 3전 전패로 조 4위로 처졌던 일본은 홍콩과의 11, 12위 순위 결정전을 통해 44-5로 승리하기는 했지만 아시아는 남자럭비뿐만 아니라 여자럭비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준결승에서 트라이 7개 기록한 블랙펀스>

8월 22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킹스팬(Kingspan) 구장에서 열린 준결승전 경기에서 미국과 맞붙은 블랙펀스는 전반전 일찍부터 트라이 2개와 컨버전, 페널티를 성공시켜 15-7 로 앞서면서 경기를 주도했다. 

 

이후 후반전에서만 5개의 트라이를 추가 성공시킨 뉴질랜드는 후반전에 트라이 1개 만회에 그친 미국을 45-12라는 큰 점수 차이로 물리치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당일 같은 경기장에서 이어 벌어진 잉글랜드와 프랑스 준결승전에서는 각각 2개씩의 트라이와 컨버전, 페널티를 성공시킨 잉글랜드가 페널티 한 개에 그친 프랑스를 20-3으로 크게 물리쳤다. 결국 프랑스는 결승전 앞서 열린 3,4위전을 통해 미국에 31-23으로 승리하면서 전 대회와 같은 3위로 대회를 마쳤는데, 지금까지 프랑스는 월드컵 결승전에는 한 번도 못 오르고 3위만 6차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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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점과 역전 거듭됐던 숨막혔던 결승전> 

8월 26일(토) 열린 대망의 결승전은 동점과 역전이 거듭된 명승부였는데, 블랙펀스는 경기 시작 9분만에 먼저 셀리카 위니아타(Selica Winiata) 선수가 트라이를 성공시키면서 5-0 으로 앞서 나갔다. 그러나 25분과 32분에 연속으로 톰슨(LB Thompson) 선수에게 잇달아 트라이를 내주고 컨버전과 페널티를 허용한 끝 에 전반전을 10-17로 오히려 역전당한 채 끝냈다. 

 

후반전 들어 뉴질랜드는 45분에 토카 나투아(Toka Natua) 선수의 트라이로 17-17로 동점을 이뤘지만 곧바로 6분 뒤 다시 페널티를 내줘 잉글랜드가 다시 17-20으로 앞서기 시작했다. 블랙펀스는 54분에 스미스(C. Smith) 선수가 트라이에 성공하고 켄드라 칵세지(Kendra Cocksedge) 선수가 컨버전 점수를 추가해 24-20으로 재역전시키는 데 성공했는데, 그러나 단 1분만에 톰슨에게 다시 트라이를 내주면서 24-25로 또 한 차례 경기가 역전됐다. 

 

숨막히는 접전 속에 블랙펀스는 재역전 3분 만에 나투아 선수가 트라이를 성공시켰고 컨버전 점수로 연결돼 31-25 로 다시 점수 차를 벌려가기 시작했으며 이후 63분과 70분에 칵세지 선수와 위니아타 선수가 잇달아 트라이에 성공해 41-25로 크게 앞섰다. 

 

총력전을 펼친 잉글랜드는 종료 3분 전 노엘 스미스(NoelSmith) 선수가 트라이를 성공시키고 컨버전까지 얻어내 차이를 41-32까지 좁히기는 했지만 경기를 뒤집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으며 결국 결승전은 뉴질랜드의 우승으로 결정됐다. 이날 경기는 한 번 동점을 비롯해 모두 3차례 이어지는 역전이 펼쳐지는 등 후반전 중반을 넘어서기까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가 연출됐다. 

 

<세계 정상 유지하려면 꾸준한 지원 이어져야> 

비록 우승하긴 했지만 블랙펀스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은데, 그것은 선수들이 운동과 생활을 병행하는 아마추어들인 데다가 주전선수들의 나이도 많아진 반면 앞으로도 지원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주장이자 오클랜드 현직 경찰관이기도 한 피아오 파마우실리(Fiao’o Fa’amausili)선수가 지난 2002년부터 대표로 선발돼 37세가 된 현재까지 15년간을 활약하고 있다는 상황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여자럭비 결승전 경기가 펼쳐졌던 날 더니든에서도 올블랙스와 호주 왈라비(Wallabies)간 경기가 열렸는데, 당시 패색이 짙던 올블랙스가 극적으로 승리하자 언론들은 여자럭비보다 더 많은 지면을 올블랙스에게 할애한 바 있다. 

 

며칠 뒤 오클랜드로 개선했던 한 선수는 이 같은 상황을 꼬집으면서, 여자럭비가 앞으로도 세계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럭비연맹과 팬들만 아니라 기업과 국민들로부터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전직 블랙펀스 선수는 언제까지 선수들의 순수한 열정에만 기댈 수는 없다면서, 차기 월드컵 대회를 유치하는 등 현실적인 지원과 대책만이 세계 정상을 유지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불굴의 정신력을 보여준 여자선수들의 투지에 박수와 함께 우승에 축하를 전하면서, 모쪼록 이번 우승을 계기로 블랙펀스의 신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많은 지원과 투자 역시 뒤따르기를 기원한다.

 

남섬지국장 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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