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교통 인프라 프로젝트 중 하나인 CRL(City Rail Link, 도심순환선)이 착공 10년 만에 오는 9월 13일 승객 운행을 시작한다.
▲ CRL 개통 전과 개통 후 기차 노선도
개통일은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의 주중을 피해 일요일로 정해졌다. 55억달러의 공사비가 투입된 CRL은 기존에 막혀 있던 철도망을 연결하고 오클랜드 도시 성장에 대응하는 광역 대중교통 체계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앞으로 투자 비용에 걸맞은 이용률과 경제적 효과를 실제로 만들어 내는것에 대한 과제가 남아 있다.
CRL 추진 주요 일지
지난 2013년부터 오클랜드의 인구 증가와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도심 철도 연결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기존 브리토마트(Britomart)역은 종착역 형태로 모든 열차가 이곳에서 멈춰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운행 횟수와 노선 운영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병목 현상을 해소하고 도심을 통과하는 철도 연결망을 구축하는 것이 장기적인 도시 발전 계획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통합 오클랜드 초대 시장이었던 렌 브라운(Len Brown)은 CRL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중앙정부와 사업비를 절반씩 부담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2016년 6월 당시 총리 존 키(John Key)와 브라운 시장 등이 참석해 공사 시작을 알리는 발파 작업을 할 때만 해도 25억달러의 공사비와 2020~21년 개통을 목표로 했다.
2018~2022년 도심 지하 굴착과 터널 건설, 신규 역사 조성이 진행되었다.
특히 도심 한가운데에서 진행되는 공사였기 때문에 많은 도심 상점들의 영업에지장을 초래했다.
터널 공사가 완료된 이후 2023~2025년에는 철도 신호 시스템, 전력 공급, 안전 설비, 역 운영 시스템 등에 대한 시험이 진행되었다.
CRL 운영을 담당할 오클랜드 카운슬 산하 기관인 AT(Auckland Transport, 오클랜드 트랜스포트)는 개통 전 약 1만6,000개 항목의 테스트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개통일은 당초 지난 6일 크리스 비숍(Chris Bishop) 교통 장관과 웨인 브라운(Wayne Brown) 오클랜드 시장이 공식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그에 앞서 오클랜드 도심 곳곳에 설치된 광고판을 통해 먼저 알려졌다.
AT측은 광고판이 공식 발표 이후에 게시될 예정이었지만, 광고 공급업체의 실수로 이른 아침에 잘못 게시됐다고 설명했다.
오클랜드 교통의 전환점
오클랜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자동차 의존도가 높은 도시로 성장해 왔다.
출퇴근 시간마다 모토웨이의 정체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또한 기존 철도망은 도심 중심부인 브리토마트역에서 끝나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CRL은 이 단절을 해소하여 철도를 도시 중심을 관통하는 네트워크로 전환하는 핵심 사업이다.
CRL은 약 3.45km 길이의 쌍굴 터널로 건설됐고 지하 최대 약 42m 깊이에 설치됐다.
현행 브리토마트역과 마운트 이든역을 연결하고, 도심 내부에 카랑가아하프(Karanga-a-Hape)와 테와이호로티우(Te Waihorotiu)라는 두 개의 신규 지하역이 건설됐다.
현행 브리토마트역에서 이름이 변경되는 와이테마타(Waitemata)역은 오클랜드 철도의 중심역으로 CRL 개통 후 종착역이 아니라 양방향 통과역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를 통해 열차 회전 시간이 줄어들고 운행 효율성이 증가한다.
와이테마타역에서 지하터널을 통해 테와이호로티우역, 카랑가아하프역을 지나마웅가화우(Maungawhau)역까지 연결되면서 열차가 도심을 통과하는 순환형 네트워크로 바뀌게 된다.
비유하자면 막다른 골목이었던 철길이 하나의 연결고리로 바뀌는 셈이다.
AT측은 “많은 사람들이 CRL을 단지 도심을 순환하는 고리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며 “모토웨이를 연결하는 워터뷰 터널처럼 CRL은 철도 수송 능력을 거의 4배 올려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마운트 이든역을 개선한 마웅가화우역은 서부 철도망과 CRL을 연결하는 핵심 환승 지점이다.
서부 노선과 동부 노선은 동부-서부 노선으로 합쳐져 스완슨부터 마누카우까지 도심을 거쳐 운행된다.
이에 따라 현행 서부에서 오는 기차가 도심에 가기 위해 뉴마켓역에서 돌아 나오는 불편이 사라진다.
이번 사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새롭게 들어서는 두 개의 지하역이다.
아오테아 광장 부근의 테와이호로티우역은 오클랜드 CBD(중심업무지구)의 심장부에 위치하게 된다.
퀸 스트리트와 상업지역 접근성이 크게 높아지면서 직장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가장 많이 이용되는 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카랑가아하프역은 카랑가하페 로드 일대를 연결한다.
이 지역은 예술과 문화, 음식점, 공연장이 밀집한 지역으로 젊은 층이 많이 찾는 곳이다.
철도 접근성이 향상되면 지역 경제 활성화도 기대된다.
기대 효과
CRL은 높은 비용과 장기간의 공사 과정으로 논란도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오클랜드의 교통 문제 해결과 도시 경쟁력 향상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CRL의 가장 큰 기대 효과는 자동차 중심 도시 교통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CRL은 단순한 철도 노선 하나가 아니라 오클랜드 도시 구조를 바꾸는 기반 시설이다.
오클랜드는 인구 증가 속도가 빠른 반면 도로 확장만으로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CRL은 철도 수송 능력을 확대하여 더 많은 시민이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선택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CRL은 단순히 CBD 내부 이동을 위한 노선이 아니라 기존 철도망과 연결되어 서부, 남부, 동부 지역 주민들이 도심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버스와 페리 등 다른 대중교통과 연계되어 광역 교통망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도심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교통 혼잡이 완화되고 오클랜드 서부와 남부 지역 주민들의 통근 시간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AT측은 헨더슨에서 테와이호로티우역까지 35분이 소요돼 현행보다 24분 단축되면서 CRL 개통으로 통근 시간이 가장 크게 단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출퇴근 시간대에 열차 간격이 늘어나면서 대기 시간도 단축된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도심 구간에서 약 5분 간격으로 열차가 운행되고, 네트워크의 다른 구간에서는 평균 약 10분 간격으로 운행될 예정이다.
비출퇴근 시간대와 주말에는 새 노선이 하루 종일 15분 간격으로 운행돼, 현재의 20분 간격보다 운행 빈도가 높아진다.
CRL 개통으로 마운트 이든, 킹스랜드, 모닝사이드 등 도심 인근 지역은 도달 시간이 단축되고 부동산 가치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민사회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많은 한인들이 노스쇼어나 동부, 서부 지역에서 차량으로 출퇴근하고 있지만 철도와 버스 환승 체계가 개선되면 도심 접근 방식도 다양해질 수 있다.
유학생과 관광객에게도 이동 편의성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CRL 개통으로 철도역 주변 지역의 개발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밀도 주거 개발 증가와 상업시설 활성화, 도심 인구 증가, 보행 중심 도시 환경 확대 등의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테와이호로티우역과 카랑가아하프역은 CBD와 연결성이 강화되면서 새로운 경제 중심지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철도 이용 증가로 승용차 이용이 감소하면 도심 대기질이 개선되면서 환경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향후과제
CRL은 대규모 지하철 사업 특성상 초기 투자 비용이 약 55억달러로 매우 크며, 일부 시민들은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왔다.
CRL은 지난 10년간 도로 폐쇄와 공사로 지역 상권과 주민들에게 커다란 불편을 초래했고 사업비도 당초 계획보다 크게 늘었으며 공사 기간도 여러 차례 연장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중요한 과제는 투자 비용에 걸맞은 이용률과 경제적 효과를 실제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철도 시설은 건설 이후에도 유지관리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터널, 신호 시스템, 역 시설 유지비와 추가 열차 운영 비용은 장기적인 재정 부담 요소가 될 수 있다.
CRL 개통 후 운영 비용은 유지 관리, 이자 비용 등을 포함해 연간 2억2,000만~2억3,500만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CRL 성공의 핵심은 시민들이 실제로 승용차 대신 철도를 이용하는지 여부인데 버스와 철도의 연결이 부족하거나 요금이 부담스러운 이유 등으로 이용률이 예상보다 낮을 가능성이 있다.
역세권 개발이 활성화되면서 임대료 상승과 주거비 증가 같은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도시 발전과 지역 공동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도 중요한 숙제로 남아 있다.
세계 주요 도시를 보면 도시철도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런던의 크로스레일(Crossrail)과 시드니의 메트로(Metro), 파리의 그랜드 파리 익스프레스(Grand Paris Express)처럼 철도는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기반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오클랜드 역시 CRL을 통해 국제도시에 걸맞은 대중교통 체계를 갖추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10년 동안 이어진 공사는 시민들에게 적지 않은 불편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완공 이후 그 불편이 더 나은 도시를 위한 투자였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운영 성과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