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TV는 보는 사람이 없으면 자동으로 꺼진다. TV를 보다가 화장실에 잠깐 다녀와도 TV는 이미 꺼져있다. 뉴질랜드 의대를 나온 본은 왕가레이 병원에 근무를 하는데 본의 어머니가 이 곳에 여행 왔을 때 성당에서 아내와 만나 친구가 되었다. 본의 어머니는 세이셸이라는 작은 섬나라의 선생님이다. 본은 세이셸정부로부터 20만 달러를 빌려 오타고 의대에 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온 본이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전화를 받고 와보니 TV가 꺼져있었다. TV를 키고 보다가 또 전화가 와서 받고 와보니 아예 리모컨까지 없어져 버렸다. 리모컨이 없어졌다고 본이 나에게 왔다. 어머니 방에 가보니 어머니가 리모컨을 꼭 쥐고 계셨다. 어머니는 사람이 없는데 TV가 계속 켜져 있어 리모컨을 가져가신 것이다. TV를 켜놔도 전기세 많이 안 나오니까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다.
착하고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본 또한 대책이 없을 때가 많다. 본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세일하는 보트가 있어 보트를 샀다며 같이 낚시를 가자고 하였다.
“너 트레일러 차에 달고 운전 해봤어? 후진할 수 있어?”
본은 트레일러 운전을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한다. 그런데 보트를 사다니... 나는 본에게 충분한 운전 연습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바다로 나가면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왕가레이 병원에서 계약기간이 끝난 본은 타 지역 병원으로 옮기면서 집을 구하지 못해 이삿짐을 우리 집에 맡기고 갔다. 혼자 살면서 온갖 잡동사니가 얼마나 많은지 커다란 차고에 꽉 찼다. 게다가 보트까지 갖다 놓았으니 어머니가 한숨을 쉬면서 말씀하셨다.
“차고에 발 디딜 틈이 없어, 어디 다닐 수가 있어야지... 네 형은 아파트 분양받고 이사하는데 아파트 공사가 안 끝나 이삿짐을 맡겼는데 이백만원이나 줬어,”
우리도 돈 받고 맡아주는 거라고 말씀 드렸더니 어머니의 불평은 잠잠해졌다. 그 후 본은 이삿짐을 가져가면서 고물이 된 보트를 헐값으로 팔았는데 결국 한 번도 바다에 띄워보지도 못하고 수천달러를 날린 셈이었다.
본이 며칠간 홀리데이라고 왕가레이에 왔다. 이번에는 며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 집에 있기가 미안했던지 백패커를 예약했다고 밤에 간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서 그냥 자면 되지 왜 백패커로 간다는 거야?”아내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 집이 바로 백패커인데 왜 다른 백패커로 간다는 거야, 라운지 2층 침대가 모두 비어 있는데...”
아내는 내 말이 만족스러운지 깔깔 웃으면서 본은 우리가족 같으니 왕가레이에 오면 우리 집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올 때마다 남편이 좋아하는 술도 사오는데 그것도 감사하다고 말하여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근데, 쟤 술 한 병 사오면 지가 다 먹고 가, 그러니 네가 먹을 술은 따로 사오라고 해.”
다음날 본은 길거리에서 세일하는 차가 마음에 든다고 덥석 샀는데 차 한 대를 우리 집에 두고 갔다. 어머니는 차는 있는데 사람이 없으니 그게 무척이나 궁금하셨다.
“차는 있는데 사람은 없고... 의사가 간 거야 안 간 거야?”
이번에 우리 집에 온 본은 오클랜드에다 집을 사고 싶은데 집은 작아도 땅이 넓은 집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고물차에 낡은 보트가 즐비한 쓰레기장 같은 집이 연상되었다. 본이 넓은 땅을 갖는다면 필경 뉴질랜드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물상 같은 집으로 변할게 뻔하다. 나는 폭탄주를 만들어 본에게 권하면서 말했다.
“너는 의사야, 의사가 폭탄주는 자주 마셔야 되지만 집에서 잔디 깎고 정원 정리할 여유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땅은 좁아도 집이 넓은 게 좋다. 땅 넓은 우리 집 좀 봐라, 이게 집이냐 고물상이지, 잡초는 계속 자라고 태풍한번 지나가면 나무는 고꾸라지고... 나는 몸이 안 따라줘 일도 못하고 애들은 밖에 나와 보질 않고... 힘들어, 너는 돈을 더 모으면 시내에 근사한 집을 사서 커다란 내 그림을 걸어놓으면 얼마나 멋지겠나, 그렇다고 내가 그림 값을 비싸게 받느냐하면 그것도 아니지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