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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2

0 개 2,341 권태욱

이 재판과 사건의 주인공은 법원에 의해서 Q 씨로 이름 붙여졌다. 본인의 신상 보호를 위해서 재판 판결문에 당사자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는 경우는 흔하다. 가정법원 재판에 그런 경우가 많은데, 이 판결은 가정법원 사건은 아니지만 당사자의 어린 자녀가 관련되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Q 씨인가? A 부터 P까지 모두 소진해버려서 이제 Q차례가 된 것인가? 그런데 중국 출신인 당사자에게 Q라는 익명을 부여한 것은 재미있다. 중국 근대 혁명의 지도자로 추앙받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인 노신(중국식 발음 ‘루쒼’)의 대표작이 아큐정전(阿Q正傳)이 아니던가? 


이 재판의 Q씨는 여성이다. 


중국 출신으로 뉴질랜드 영주권을 갖고 있는 남편과 결혼해서 배우자 비자로 영주권을 받았다. 남편과 결혼하고 영주권을 받은 뒤에 뉴질랜드에 살면서 자녀를 한 명 출산했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아이는 뉴질랜드 시민권자다. 


남편은 학생 때 뉴질랜드로 유학왔다. 얼마 후에 유학 온 아들(Q씨의 남편)을 따라서 엄마가 뉴질랜드에 왔다. Q씨 남편의 엄마는 뉴질랜드 시민권자와 파트너가 되어서 파트너 영주권을 취득했다. 유학생 비자로 있던 남편은 엄마가 영주권을 취득할 때 함께 영주권을 취득했다. 


그렇게 영주권을 취득하고 뉴질랜드에 살고 있던 Q씨의 남편은 중국에 휴가 여행을 갔다가 Q씨를 만났고, 남편을 따라 뉴질랜드로 온 Q씨는 영주권자의 파트너로 영주권을 취득했다. 그리고 위에 쓴 대로 아이를 하나 낳아서 뉴질랜드 시민권자의 엄마가 되었다. 아들이 시민권자라고 해도 엄마가 자동적으로 시민권자가 되지 않는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는 Q씨의 영주권 신청 서류를 뉴질랜드 이민성에서 들여다 봤다. 그리고 Q씨의 영주권 신청서에 허위 사실이 기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Q씨의 영주권을 취소하고, 추방명령을 내렸다.   Q씨는 Immigration and Protection Tribunal에  추방명령 철회 청구를 했다. 취소 청구 이유는 인도적인 이유 Humanitarian Ground. 


인도적인 이유의 근거가 되는 사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남편과 부인이 모두 추방되면 아직 어린 뉴질랜드 시민권자인 자녀가 중국에 가서 함께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의료와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인이 영주권 신청을 할 때 허위사실을 기록하는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영주권 신청 서류를 작성한 것은 남편이었고, 영어를 모르는 부인은 남편이 거기에 뭐라고 썼는지 몰랐다는 것이었다. 


두번 째 사유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 Tribunal은 사실로 인정을 했다. 즉, 부인은 자기의 영주권 신청서류에 허위 사실이 기록되는것을 몰랐다는 주장을 Tribunal이 사실로 받아들였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Q씨가 신청한 추방명령 취소 청구에 대해서 Tribunal은 신청인 Q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민성은 이 판결에 불복해서 고등법원에 항소했지만, 고등법원도 Q씨의 추방명령을 취소시킨 Tribunal의 판정을 확인해줬다. 


Tribunal과 고등법원의 판결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면 길고 복잡한 법률설명이 되어서 독자들이 읽기를 중단할 우려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다만, ‘신청서에 허위 사실을 기재했다는 것을 당사자가 몰랐다는 사실’ 그것 자체 만으로는 영주권 취소와 추방명령 처분을 취소시킬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법률해석에 대해서는 Tribunal이나 고등법원이 모두 동일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확인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 오해하시는 분이 절대로 없으시기 바란다. 영주권 신청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고, 그 사람이 신청서에 뭐라고 썼는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신청인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Q씨의 경우는 아이가 뉴질랜드 시민권자고, 자기 잘못이 아닌 이유로 뉴질랜드를 떠나 의료와 교육혜택을 받지 못하는 중국에 가서 살아야 한다면 매우 불공정하고 가혹한 결과가 된다는 사실이 주로 작용했다. 거기에 Q씨 본인이 신청서에 허위 사실 기재한 당사자가 아니고,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 추가로 고려해야 할 사항에 해당되는것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Tribunal과 고등법원은 모두 ‘그렇다’고 판단하고, Q씨의 추방명령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 판결에 대해서 뉴질랜드 이민성은 항소법원(Court of Appeal)에 상고를 했다. 이 상고를 할 당시에 Q씨는 아이를 데리고 남편이 있는 중국에 가고 없었다. 당사자가 이미 출국을 했는데, 출국명령 취소 처분 판결에 대해서 항소를 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재판에는 돈이 들어간다.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기 때문에. 


법원의 공간과 재판부의 시간은 국가 예산으로 구입하는 것이다. 이민성 직원의 시간, 이민성에서 선임한 변호사, 그리고 법원의 공간과 재판에 참여한 판사의 급료 등 모든 것이 뉴질랜드 국민이 낸 세금으로 사는 것이다. 이민성에서 이민성을 위해서 변론을 제기할 변호사를 선임한 것은 물론이고, 이미 중국에 가고 없는 Q씨의 입장에서 변론을 제기할 변호사까지 선임되었다. 이 변호사의 역할은 반대 변론을 제기해서 법원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영미법의 재판은 세상 일에는 거의 언제나 상반되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진행한다. 이렇게 법원에 의해서 선임된 변호사도 물론 변호사비를 받는다. 정부 예산으로 지불된다. 



이렇게 양측의 변호사까지 동원되는 고비용 작업을 해 가면서 까지 이민성이 고등법원의 판결을 항소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첫째는 판례를 확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등법원의 판결이 있으면, 그에 대체할 판결이 동급 또는 상급 법원에서 나올 때까지 이민성은 그 판결대로 행정을 집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판결 내용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면 최종 법원까지 판결을 받아 볼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Q씨의 문제가 있다. 지금은 중국에 가있지만, 고등법원의 판결로 Q씨의 영주권은 살아났다. 그러면 Q씨는 나중에 다시 뉴질랜드로 와서 살 수 있다. 그것은 애초에 Q씨의 영주권을 취소한 이민성의 의도와 배치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도 이민성은 상고를 제기할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서로 상반되는 입장의 변론을 들은 항소법원의 재판부는 Tribunal과 고등법원의 판결이 법률적으로 오류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Q씨가 신청서에 허위사실을 기재한 당사자가 아니고, 그런 일을 몰랐다고 하는 사실은 인도적인 이유로 추방 명령을 취소하는 데 참작해야 할 예외적인 사유가 되지 못하고, 다만 그 추방명령이  매우 불공정하고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부를 결정할 때 참조할 수 있는 사유가 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 항소 법원의 법률 해석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이게 무슨 소린가?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그 말이 그 말 같은 데, 그 말이 그 말이 아니라는 것이 항소법원의 결정이고, ‘그 말과 다른 그 말’에 따라 Q씨 사건을 Tribunal이 다시 재판하도록 명령했다. 


이 판결의 공식적인 교훈은 이것이다. 영주권 또는 다른 비자 신청 서류를 작성할 때 허위사실을 기록하는 것을 본인이 몰랐다고 하는 것이 추방명령을 취소할 인도적인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인이 그 사실을 모른 것이 (다른 사실들과 더불어) 참작되는 부분이 있기는 한데, 그것이 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 얼마나 미칠 수 있는지는 아주 미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그런 효과를 기대하시지 않는 것이 좋다. 혹시 본인이 이미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분이라면 전문 변호사와 상의를 하고 대처하셔야 한다. (송구스럽게도 설명이 복잡하고 애매하다. 그래서 변호사들이 법률 칼럼을 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이 판결문이 주는 다른 교훈이 있다. 그것은 이 글의 처음부분에 썼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것이다. 만약 Q씨가 고등법원 판결을 받고 난 뒤 중국으로 가지 않고, 이 상고심까지 직접 자기 돈으로 변호사를 선임해서 대처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것이다. 


이 항소법원의 판결로 인해서 어쩌면 Q씨는 영주권이 취소될 수도 있다. Tribunal의 판결이 틀렸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적용한 법률해석이 잘못되었다고 했으니, 그 사건을 다시 심리하는 Tribunal에서는 처음 판결을 뒤집고 추방명령 취소 청구를 기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상고법원은 이 사건을 반드시 처음 심리했던 Tribunal로 돌려보내서 재심하도록 요구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법에 의하면 상급법원은 법률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판정한 Tribunal의 판결을 원심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고, 판결을 직접 바꿀 수도 있고, 새로운 법률 해석을 적용해도 하급법원의 판결 결과가 같다고 판정하고, 하급 볍원의 판결을 확정할 수도 있다. 


이 사건의 항소법원의 판결문을 읽어보면 중간쯤에, ‘항소법원이 새로 해석한 법률을 적용했다고 하더라도 Tribunal의 판결 결과는 동일할 수 있었겠다’고 이민성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인정했다고 기록한 부분이 있다.  


Q씨 입장에서 변론한 변호사가 아니라, 그 반대편인 이민성의 변호사가 그렇게 인정한 것이다. Tribunal에서 심리한 사실 부분에 대해서는 항소법원의 재판부가 모두 알고 있다. 동일한 사실에 대해서 적용한 법률에 대한 해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항소법원의 판결인데, 그렇게 새로 해석한 법률을 적용하더라도 그 결과는 동일할 수 있다고 반대편 변호사가 인정을 했다면, 어떻게 판결하는 것이 당사자들과 국가의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이겠는가? 항소법원에서 그냥 그렇게 판결하면 되지 않겠는가? 적용하는 법률의 해석은 다르지만, 이민성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인정한 대로, 새로운 해석을 적용하더라도 결과는 같으니까 Q씨의 추방명령을 취소한 원심을 확정한다고 판결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항소법원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고 Tribunal에 돌려보냈다. 그 조치에는 그 판결을 번복하라는 압력이 실려있다고 보는 것은 과도한 상상일까?


‘만약 Q씨가 중국에 가지 않고 뉴질랜드에 머물고 있었다면 항소법원의 판결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당사자가 이미 중국에 가버렸고, 중국에 가서 살도록 하는 것이 지나친 불공정과 가혹한 조치가 될 것이라고 했던 아이도 이미 중국에 가서 살고 있다면, 그 아이가 그런 처분을 받도록 하는 것이 ‘인도적인 근거에서 고려해야 할 예외적 상황’에 해당된다고 판정한 Tribunal의 판단 근거가 사라져 버린 것이 된다. 


한편으로 Q씨가 아이와 함께 계속 뉴질랜드에 머물고 있었다면 Tribunal은 그 조치가 아이에게 미칠 과도한 불공정성과 가혹성에 대한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가 이미 중국에 가버렸으니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사건과 판결을 소개하면서 그 첫머리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말로 시작한 이유가 여기있다.    


※ 이 칼럼의 내용은 일반적인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법률적인 자문으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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