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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내와 함께 흰 구름도 눈 부신 오후, 봄 향기 가득한 동네길을 걷고 있었다. 쇼핑몰과 상점이 있는 마을 중심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짓궂은 한줄기 소나기를 만나 비를 피할 겸 옆의 한 Opportunity Shop(줄임말로 OPP Shop 이라 부르는 이 곳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상점으로 기증받은 중고물건을 싸게 판매하여 그 얻은 수입을 구제 사업 등에 사용한다)엘 들렀다. 이런 저런 물건들이 나름대로의 사연을 품은 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책꽂이 앞에서 눈길을 끄는 자그마한 책을 꺼내 들었다. ‘Golden Treasury of Songs & Lyrics’ 라는 영어 시집(詩集)을 몇장 넘기며 선을 봤다. 이내 작은 금덩이 한 개($1)와 맞바꿔 들고 그 사이 비도 멎어 나머지 산책을 끝냈다.
평소 즐겨 오던 영시(英詩)에 더하여 이 보고(寶庫)에서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주는 영시(英詩)를 눈 가는 대로 몇 수(首) 산책해본다. 시는 그 나라의 원어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시를 다른 나라 말로 옮겨 그 시인의 느낌을 그대로 전하기란 여간 어려운 모험이 아닌가 한다. 나의 이런 모험은 ‘무지의 용기’에서 나온 것이어서 적절한 시어(詩語)의 선택과 운율(韻律)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데에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다만, 시를 즐기는 소비자(?)로서 시인의 마음을 찾아 공감하여 즐기려는 노력은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어려운 시론 (詩論)은 전문가의 몫으로 하고,
• 그 여인 인적 없는 곳에서 살았네
(She Dwelt Among the untrodden Ways)
그 여인 발길 닿지 않는 곳에서 살았네.
마음 샘물 가의 그 여인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고
사랑 품은 이 몇 없네
이끼 낀 바위 옆에 피어난 오랑캐꽃 같아라
사람 눈에 띌락 말락
별처럼 아름다워라
마치 저 하늘에 빛나는 외딴 별 같이
그 여인 이렇게 아는 이 없이 살다가
이제 그 여인 이 세상에 없고
무덤에 있지만, 아~~~
내 마음에는 살아있는 그 여인,
- W. Wordsworth(잉글랜드 시인 1770-1850)
영국(The United Kingdom)의 일부분인 England라는 지역은 아름다운 자연에 역사와 인간이 함께 엉켜 무르익은 토속적 멋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다. 북서부 England에는 호수지대가 있고 그 한 마을에 이 Wordsworth시인이 살던 집인 ‘Dove Cottage’가 있다. 그 곳에서 본 집의 낮은 천정과 벽난로 그리고 뻐꾸기 시계 등은 그의 소박하면서도 운치있는 생활을 가늠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마을의 들꽃과 돌 하나 모두가 그에게는 시의 텃밭이며 여기서 구슬 같은 사랑의 시와 영혼을 흔드는 시를 거두었다. 그는 ‘시는 인간 본성을 지켜주는 반석’ 이라고 정의했다.
• 죤 앤더슨
(John Anderson)
죤 앤더슨, 자네 내 친구, 죤
우리 동산에 함께 오르며
그리고 활기찬 나날을, 죤
우리 서로 맘껏 즐겼었지
이제~ 우리 늙어 자칫 넘어지기 쉬우니
서로 손 꼬-옥 잡고 가세나
그리고 저 산자락 밑에서 함께 잠드세
죤 앤더슨, 자네 내 친구여
- R. Burns(스코틀랜드 시인 1759-1796)
영국의 일부분인 Scotland는 그 고산벽해(高山碧海)의 풍경과 그 곳의 인심이 잘 어울리는 곳으로 많은 시를 빚어 낸 곳이다. 시 속에 들어 있는 그 곳의 토속방언은 더 없는 서정(抒情)적 매력을 깊이 느끼게 한다. NZ 지명에도 가끔 눈에 띄는데 Sunnybrae의 brae는 언덕진 곳을 Sunnynook의 nook는 외진 구석을 그리고 Torbay의 tor는 험한 바위언덕을 뜻한다. 아마도 스코틀랜드 선조들이 이름을 지은 것 아닌가 하며 그 이름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 이니스프리 섬으로…
(The Lake Isle of Innisfree)
일어나 지금 가리 이니스프리 섬으로
작은 오두막집 지으리 진흙과 나뭇가지로
콩 아홉 이랑에 심고 꿀벌 위해 벌통 놓고
작은 숲 속 빈터에 벌 소리 벗 삼아 홀로 살리.
- W.B.Yates(아일랜드 시인 1865-1939)
Ireland 사람들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등 우리 한국인과 비슷한 기질을 갖고 있다. 위의 시는 도시인들의 ‘탈출본능’을 잘 드러낸 시로서 시끌한 한국을 떠난 우리 NZ교민들의 이상을 보여주는 듯 하다. 집 한 구석에 텃밭 일구고 새와 벌 소리 들으며 하느님의 뜻을 살피며 형편에 맞게 넉넉한 마음을 누리며 사는 모습을 그린 것 같다.
우리는 학교에서 10년여를 영어와 힘든 씨름을 하느라 진땀을 뺏지만 약간 키를 옆으로 틀어 딱딱한 문법을 벗어나 ‘아름다운 영시의 물길’로 들어가 보면 소박함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주는 시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또 품위 있게 영어를 익히는 한 방법일 수도 있다. 주옥 같은 시들이 넘치지만 지면관계상 위 몇 편 밖에 나눌 수 없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시인과 제목의 원명을 남겼으니 원어로 읽어 보시어 시인의 시심에 잠겨 보시길.
■ 유 승재 (한민족 한글학교 BOT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