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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한국에서 사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난 뭐라고 답할까? 사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무수히도 많이 쏟아 낼 수 있다. 입 안에서 맴도는 답만 해도 벌써 수백 가지에 이른다. 먼저, 뉴질랜드에서 살았을 때보다 저축이 힘들다. 회사에 다니다 보면, 지난주에는 동료가 결혼했고, 이번 주에는 상사 아들의 돌찬치가 있으며, 다음 주에는 아마도 부하직원의 먼 친척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회사 밖 친구들의 경조사 역시 잦다. 경조사에 초대를 받으면 부조, 축의금, 용돈, 위로금 등의 다양한 명목하에 매번 10~2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나간다. 많게는 한달에 서너 번의 경조사가 있다. 밥값보다 비싼 커피값 역시 저조한 저축의 주범이다.
출퇴근길 만원 지하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고욕이다.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을 해 본 사람은 왜 한국에서 지하철이 “지옥철” 이라고 불리는지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또한 급한 성격의 한국인답게 길 위의 자동차 경적 소리는 어찌나 끊임없이 울리는지 매번 놀란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들은 나뿐 아니라 한국에서만 살아온 이들 역시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이들이 한국을 ‘헬조선(지옥을 뜻하는 ‘hell’과 ‘조선’의 합성어로 대한민국이 살기 힘들고 희망이 없음을 풍자하는 말)’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살이에서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한국식 화법(話法)이다. 한국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돌려서 말하는 경향이 있어 그들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기엔 너무 어렵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우회적으로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거다.
최근 겪은 몇 가지를 정리해 보면 이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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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네가 신고 있는 양말 이쁘네~
나: 아, 고마워.
다른 친구들: 너 줄까? 이거 00에서 샀는데, 나 집에 또 있어.
정답: 여분이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며 여분이 있으면 자신에게 하나 주고, 여분이 없다면 어디에서 구매했는지 정보를 달라는 뜻이다.
나는 단순히 그냥 이쁘다는 칭찬인줄 알았으므로 틀린 답을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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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동료: 지금 퇴근해? 오늘 일찍 가네?
나: 응, 오늘 일이 빨리 끝났어. 내일 봐.
다른 동료들: 업무 아직 남았어? 내가 좀 도와줄 테니 파일 나한테 넘겨.
정답: 일이 너무 많으니 도와달라는 뜻이다.
이번에도 난 틀렸다. 나는 퇴근하려는 내게 건네는 단순한 인사인줄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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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어머니: 선생님, 수업 끝나셨어요? 콩국수를 만들었는데 좀 드시고 가세요. 부담스러우시면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세요.
나: 아, 죄송해요. 저 콩국수 못 먹어요. 다음 주에 봬요.
정답: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이 어머니는 내게 학생에 관해 상담을 요청했던 것이었다.
그냥 양말이 탐이 났다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거고, 일이 많으면 대놓고 도와달라고 할 수 있는 거며, 상담을 요청하고 싶으면 그냥 상담하고 싶다고 말하면 얼마나 이해하기 쉽고 좋을까. 왜 굳이 칭찬, 인사, 혹은 음식 제공을 빙자해 우회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한국인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어느 날은 서점을 찾아 한국인의 한국식 화법에 대한 책을 찾아봤으나 그런 책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듯했다.
이제는 나도 제법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고, 한국어 어휘에도 능하다고 자부하지만, 여전히 한국어의 의도 파악은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오늘도 난 동료의 “나중에 차나 한 잔 하자”라는 말 한마디에 이 말이 그저 빈말의 인사인 것인지, 아니면 내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인지를 내내 고민하며 퇴근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