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2011년에 딱 한 번의 단행본을 출판 했다. 블로그를 통해 인연을 엮어서 함께 이런저런 재미있는 작업을 몇 년간 함께 해왔던 대학 교수이자 ‘새바 크로스오버앙상블’ 밴드의 음악 감독을 하시는 분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 노력이라고는 그동안 모아 둔 내 수필들과 뉴질랜드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내주는 것뿐이었다. 350쪽의 단행본이었지만, 내가 생각했었던 것보다 책은 훨씬 더 예뻤고, 평론도 과분할 정도로 좋았다.
책 제목은 ‘뉴질랜드에서 온 행복편지’이며, 대형서점들과 인터넷 서점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으로 전율이 일었었다.
책 출판이 되자마자 잡지사인 ‘좋은생각’의 기자로부터 원고청탁의 전화가 왔다. 딱 한 페이지의 글이었지만, 원고료와 함께 캘린더, 타월, 수첩, 동전지갑, 잡지사 사장이 출간한 책까지 두둑한 소포가 태평양을 건너 우리 집까지 도착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문학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으며 수필가로 등단까지 시켜 주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도깨비장난 같은 일이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매일 산책을 하면서 세상과 나 자신을 바라보며 행복해 한 일밖에 없는데, 그에 대한 선물은 너무나도 크고도 경이로웠다.
하지만 내 첫 단행본은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았다. 내 필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교내 예술대회에서 내 그림이 대상을 받았을 때처럼 실력보다는 신선한 느낌에 준 상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글을 쓰는 게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며, 하루라도 뭔가 쓰지 않으면 허전할 지경에 이르렀다.
내 글의 주제는 항상 나와 내 주위를 바라보는 일이다. 그 안에서 작은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 행복해 하는 것이다. 인생길이 어찌 순탄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그 누구라도 마냥 순탄한 길만을 걷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큰 어려움 끝에는 평안이 기다리고 있고, 그 평안 또한 영원하기는 힘이 든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된다면 심적인 고통은 줄일 수가 있다. 내가 살면서 터득하게 된 것이 이것이며 이 생각 그대로 살아가고 있으니 고통도 행복이란 걸 알게 되었고, 그 생각에 하늘이 보답을 해주는 듯 하루하루가 평안하기만 하다.
록다운 기간 동안 대상포진을 앓느라, 외출은커녕 남편이 옮을까봐 격리된 상태로 방안에만 있었고, 록다운이 끝나고 레벨 2가 된 직후부터는 B&B 손님들을 맞이하니, 세상의 흐름이 내 흐름이고 내 흐름이 세상의 흐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이 내 거울이란 말이 이런 의미에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 한 가지만 봐도 세상이 내 거울인 것은 확실하다.
어른이 읽는 동화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몇 년 전에 한 적이 있다. 1년 전에 언니의 매력적인 도깨비 그림들을 본 순간 그 꿈이 이뤄질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도깨비 이야기를 쓸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렇게 준비를 하는 동안에 심장 쇼크로 병원에 입원하여 페이스메이커를 달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자잘한 병마로 이제껏 비실거리면서 지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행복했다.
도깨비 이야기에 대한 열정과 한 달에 두 번 쓰는 칼럼이 있기에 더 행복했다. 어느새 나는 글쟁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대상포진 초기 증상으로 머리를 들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도 칼럼을 적고 있었으니, 아무도 못 말린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 거 같다.
도깨비 이야기가 1년 만에 ‘환상 도깨비’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뛰어난 재능을 겸비한 열 놈의 도깨비들. 자신의 탁월한 재능으로 인간들과 교류하면서 나름 즐겁게 지내던 도깨비들이 모두 함께 모이게 되었을 때, 그때 일어난 사건을 보여주는 글이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 시장은 전 세계를 막론하고 아주 크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 시장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다고 다 어른이 아니다. 어른의 내면에는 미처 성숙하지 못한 아이가 앉아 있다. 그들의 내면은 어린 아이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 안에 숨어 있는 아이를 매일 쓰다듬고 다독이면서 살고 있다.
어른도 아이인데, 어른도 읽을 수 있는 동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트리나 폴러스가 ‘꽃들에게 희망을’을 썼을 땐, 허상을 쫓느라 지쳐있는 어른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전해 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환상 도깨비’는 언니의 특별한 도깨비 그림들에 매료가 되어서 쓴 글이지만, 어른인 내가 다른 어른들과 함께 내 안에 들어 있는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이 도깨비 이야기가 완성은 되었으나 갈 길이 멀다. 산통 없이 애가 태어날 수 없듯이, 책이 출판이 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번에 내 책 출판을 도와주셨던 교수님께 몇 년 만에 연락을 드렸다. ‘환상 도깨비’ 원고를 보더니 어른이 읽는 그림 동화라 신선했다고, 자신은 재미있게 잘 읽었다고 했다. 그분이 거래하고 있는 출판사 두 군데에 보여 주었으나, 새로운 시도와 투자는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내 나름대로 알아 봤는데, 어린이 동화로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예전에 우리 딸들의 자연학교 선생님이시던 분과 연결이 되었다. 미남이었던 청년이 어느덧 은발의 중후한 멋을 풍기는 중년이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어른을 위한 동화 시장을 이제 막 만드는 과정이라고 하면서 어른을 위한 동화에 관심을 가지는 출판사가 몇 군데 있다고 했다. 그 출판사 사장들에게 보여줄 것이지만 큰 기대는 갖지 말라고 했다. 더불어 자신의 직업이 원고 보는 일이니 꼼꼼히 읽어 보고 소견도 말해주겠다고 했다.
출간이 워낙 변수가 많아서 이러다가 갑자기 말도 안 될 정도로 쉽게 출간이 되기도 한다고 하면서 희망적인 말도 아끼지 않았다. 얼마나 감사한가!
성경 구절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했다. ‘환상 도깨비’가 출판이 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바늘구멍처럼 작은 희망이 있으니, 그 좁은 틈새를 빠져나갈 수 있는 날을 기리며 마음을 비우려 한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