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 잉그리드 버그만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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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371] 잉그리드 버그만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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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인에게 줄 장미를 손질하다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einer Maria Rilke: 1875 -1926)는 앓고 있던 백혈병으로 인해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에서, 찔린 장미 가시를 통해 혈관 속으로 들어온 세균이 급속히 온 몸으로 번져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고통스런 삶을 살던 시인의 죽음에 비극적 낭만성을 더해주는 장미 가시에 얽힌 일화이다. 아름다운 여인은 가시를 품고 있다는 말이 있듯이 다른 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품격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장미에도 역시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허접한 아무 남자나 감히 근접하는 것을 막기 위한 아름다운 여인의 도도함처럼, 장미 역시 잡다한 해충들이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와 꽃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 가시를 갖고 있다. 또한 초식 동물들이 쉽사리 먹어 치울 수 없게 날카로운 가시를 친위대로 무장시켜 놓았다.

  장미는 고대부터 사람들을 매혹시켜왔다. 오늘날 재배되는 장미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 야생성을 제거한 변종들이 대부분이다. 장미는 수 많은 품종과 형태와 색깔만큼이나 이름들도 다양하다. 얼음을 종이장처럼 썰어 꽃잎으로 꽂아 넣은 듯한 빙산(Iceberg) 장미와 하얀 낭만(White Romance)장미에서부터, 빙하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슬픔을 퍼올려 첼로의 현 위에서 노래하다 하얀 죽음으로 세상을 떠난 첼리스트 자끄리느 드 프레(Jacqueline du Pre)의 이름을 붙인 장미도 있다. 옅은 노란색을 수줍게 띠고 있는 평화(Peace)장미도 있고 원 색에 가까운 진 노란색을 띤 차이나타운(Chinatown)장미도 있다. 흰색과 분홍색이 경쾌하게 어울려 비교적 작은 꽃들로 군집을 이루고 있는 비틀즈(Beatles)장미와 약간의 보라빛이 도는 우울한 파란 빛의 파란달(Blue Moon)장미도 눈에 띤다.

  스웨덴 출신의 헐리웃 스타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의 이름을 딴 장미는 핏빛처럼 붉은 색을 띤다. 옛날 페르시아 이야기에 의하면 흰 장미의 아름다움에 반한 나이팅게일 새가 날개를 펴 장미를 품 안에 껴안으려다가 가시에 찔려 피를 흘렸다. 그 피가 흰 장미를 붉게 물들여 붉은 장미가 되었다고 한다. 온 몸을 불사르며 핏빛으로 타오르는 듯한 붉은 장미가 잔 다르크 역의 잉그리드 버그만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

  When Ernest Hemingway told Ingrid Bergman she would have to cut off her hair for the role of Maria in 'For Whom the Bell Tolls', she shot back, "To get that part, I'd cut my head off!"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의 마리아 역을 맡기 위해서는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야만 한다고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말 했을 때, 그녀는 "그 역을 맡기 위해서는 머리라도 자르겠어요!"라고 되받아 말했다.) 결국 그녀는 영화 'For Whom the Bell Tolls'에서 당대의 수퍼스타 게리 쿠퍼(Gary Cooper)의 상대역 마리아의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헤밍웨이와 다른 사람의 애초의 기대보다도 훨씬 더 짧은 머리카락으로. 차마 그 당시 여배우에게 대 놓고 주문하기 힘들었지만 그녀의 정말로 짧았던 고수머리는 마리아 역에 꼭 맞는 머리카락의 길이였다고 한다.

  배우로서 만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에 있어서도 잉그리드 버그만은 붉은 장미처럼 열정적이었다. 이미 1942년 작품 카사블랑카(Casablanca)의 성공에 이어 1944년 가스등(Gaslight)으로 아카데미 주연 여우상을 수상해 헐리웃 수퍼 스타 반열에 올랐던 그녀였지만 1946년 이탈리아 감독 롯셀리니의 '무방비 도시', '전화의 저쪽'이라는 영화에 감동을 받아 모든 것을 버리고 롯셀리니에게로 달려갔다. 1949년 그녀는 세상 사람들의 온갖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편 린드스트롬에게 이혼을 제기했다. 그 후 롯셀리니 감독과 만든 영화의 실패와 연이은 경제적 파탄으로 불타던 정열도 식어 그와 헤어지며 헐리웃으로 돌아왔지만 세상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러나 진정한 별(star:항성)은 자기 자 신의 내적인 힘만으로 스스로 온몸을 살라 우주에 빛을 내뿜듯, 그녀는 1956년 작품 '추상'으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두 번째로 차지하고 1975년에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에서 잠깐 나오는 역할을 맡아 완벽하게 연기 하면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수상했다.

  오늘날에도 가장 아름다운 장미에까지 이름으로 붙여져 기억 될 만큼 그녀의 아름다움과 인기는 대단했었다. When she appeared on the screen without make up, cosmetic sales declined.(그녀가 화장을 하지 않고 영화에 나왔을 때 화장품 수요가 급감했다.) When she played a nun, convent enrollments increased. (그녀가 수녀 역을 맡았을 때, 수녀원 등록자 수가 증가했다.) Industrialist Howard Hughes once bought every available airplane seat from New York to Los Angeles so as to be sure she would accept a ride in his private plane.(억만장자 사업가 하워드 휴즈는 그녀를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에 태우는 것을 확실히 해 두기 위해서 그 시간대의 뉴욕에서 LA로 가는 비행기 좌석을 모두 사들였다.) A fan walked a sheep all the way from Sweden to Rome as a gift for her. (한 팬은 그녀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 스웨덴에서 로마까지 양 한 마리를 걸어서 끌고 갔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잉그리드 버그만 장미 위에 부서져 내리는 뉴질랜드의 여름 햇살이 한국의 대선과, 기름으로 인한 바다 오염과, 교민 사회의 어려운 상황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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