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집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낯선 집

0 개 1,526 오클랜드 문학회

시인 배 창환



나 오래전부터 꿈꾸었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집 지나다 무작정 발길 이끌어 들르는 때를,

그때 이 집에는,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 타고 놀던 밝은 햇살과

그늘이 흐릿하게 새겨진 오래된 목조 건물에는 낯선

사람들이 살고, 중년 안주인이 마당과 부엌을 방앗간 참새처럼 들락거리면서

수돗가에 앉아 방금 텃밭에서 뽑아온 배추를 씻고ㆍ파를 다듬고

둥근 기와지붕도 잡풀 성성한 앞마당도 백구도 뒤란의 물길도

이 집 지켜온 감나무 가지도 청설모가 들락거리던 속이 텅텅 빈 호두나무도

우물 메운 자리 뿌리 내린 매실나무도 어린 불두화도

어떤 것은 그대로이고 어떤 것은 몰라보게 자랐고 어떤 것은 사라져버린

생전 처음 보는, 아주 낯선 집처럼 서서 흐려가는 집

나는 모른 체 마당에 들어서서 옛날 영화에 나오는 선비처럼

이리 오너라, 호기로이 큰 소리로 주인을 부르려다 말고

계십니까? 계세요? 안에 아무도 안 계십니까?

소리를 낮추어, 지나가는 사람인데요, 목이 말라서, 입을 열어

물 한 그릇 얻어 천천히 마시면서 눈은 재빨리 마루 안쪽

지붕을 지탱하는 아름들이 적송 대들보와 거기서 발 죽 뻗은 서까래와

언젠가 손질하려다 결국 못하고 만, 회 떨어져 나가 둥글게 팬 자국과

남궁산의 89년 작 ‘봄 처녀’ 판화 걸었던 못 자리와 내 책장 섰던 자리

꽂혔던 잡지와, 흔들릴 때마다 나를 받쳐온 시집들을 떠오려보면서

이윽고 내가 물그릇을 다 비우고 빈 그릇을 돌려주면 주인 아주머닌

참 별 희한한 사람 다 있네, 남의 집 뭐한다고 뚫어보고 난린고, 고개 갸우뚱하몌

미닫이 유리문을 스르르 쾅, 닫아버릴 때 내 가슴도 함께

닫혀버리는 짧은 순간, 아찔해져 비틀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고

발길을 돌려 돌아가는...... 그런 순간을

그러면 나는 안녕,

나의 집이여, 고마운 햇살이여 그늘이여, 바람에 쌓여간 시간이여

안녕, 지난날들에 무수히 고맙다고 아프다고 절하고 돌아서면서

변함없이 돋아난 마당의 잡풀마다 머리 쓰다듬어 주고 변함없이

푸르른 하늘, 동산 상수리나무 머리 위로 내려온 파란 하늘에 손 적시면서

발걸음에 바위 추를 탈고,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으려고 이 악물면서

그래, 인생이란 이런 거야, 그럼, 이런 것이고말고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다짐하며 돌아서는 집

그날을 꿈꾸면서, 그날이 오기를, 그날이 오지 않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오늘도 그리운 그 옛집, 낯선 집에 산다


배 창환 시인

f5367da351ee55c0cd489e044dfb0976_1590554756_0989.jpg

■ 오클랜드문학회
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021 1880 850 aucklandliterary2012@gmail.com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

댓글 0 | 조회 337 | 12시간전
팻 분(Pat Boone)의 감미로운… 더보기

로렐라이의 선율과 제주 4·3

댓글 0 | 조회 141 | 10일전
▲ 영화 ‘비정성시’ 포스터지난해 출… 더보기

공부가 나를 망쳤다

댓글 0 | 조회 297 | 10일전
공부를 하라고 해서 공부만 했는데, … 더보기

그 곳에 있었다 - 부처님도, 우리 마음도

댓글 0 | 조회 110 | 10일전
경주 남산 용장골 ~ 연화대좌 순례용… 더보기

비자 심사 지연엔 다 이유가 있었네

댓글 0 | 조회 1,492 | 2024.04.10
본국 외의 그 어느 국가를 방문하더라… 더보기

이번달 수도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어요!

댓글 0 | 조회 1,060 | 2024.04.10
안녕하세요. 넥서스 플러밍의 김도형이… 더보기

시인

댓글 0 | 조회 149 | 2024.04.10
시인 :파블로 네루다전에 나는 고통스… 더보기

축기의 비결

댓글 0 | 조회 134 | 2024.04.10
* 제가 단전호흡을 할 때, 계속 비… 더보기

마이너스 인생 살아가기

댓글 0 | 조회 873 | 2024.04.09
개념적으로 마이너스 인생이라고 하면 … 더보기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픈 기억에 마주했을 때

댓글 0 | 조회 393 | 2024.04.09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예기치 않… 더보기

현대인의 심리 불안, 대추차가 좋아요

댓글 0 | 조회 187 | 2024.04.09
최근 한방의 질병 예방 및 치료 효과… 더보기

장내 미생물총과 유전

댓글 0 | 조회 156 | 2024.04.09
장내 미생물, 사람의 체내 세포수보다… 더보기

유년의 부활절

댓글 0 | 조회 85 | 2024.04.09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부활절 아침에어… 더보기

잇몸의 날

댓글 0 | 조회 277 | 2024.04.06
‘잇몸병’은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 더보기

독감 및 최근 COVID-19 개량 백신 접종

댓글 0 | 조회 993 | 2024.04.05
4월 1일부터 독감 접종 시작합니다여… 더보기

2024학년도 한국대학 입시 분석 결과 리뷰

댓글 0 | 조회 625 | 2024.03.28
2024학번 수험생들은 2020년부터… 더보기

액티브 인베스터 플러스 비자

댓글 0 | 조회 566 | 2024.03.27
뉴질랜드의 투자 기회를 높이는 액티브… 더보기

매일 아침 10분 모닝 요가

댓글 0 | 조회 332 | 2024.03.27
아침마다 침대에서 나오기 힘드신 분들… 더보기

장 건강의 중요성

댓글 0 | 조회 515 | 2024.03.27
저는 한의사도 아니고 기능의학자도 아… 더보기

가을논에서

댓글 0 | 조회 231 | 2024.03.27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한적한 양구 벼… 더보기

참으로 좋은 삶, 늦복에 있네

댓글 0 | 조회 310 | 2024.03.26
처음 영정사진을 찍었을 때가 육십대 … 더보기

우화루에 꽃비 내리는 날

댓글 0 | 조회 102 | 2024.03.26
완주 화암사와 파주 보광사의 목어“이… 더보기

왕초보를 위한 워크비자 입문서

댓글 0 | 조회 604 | 2024.03.26
뉴질랜드에서 합법적인 노동을 하기 위… 더보기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쓴다

댓글 0 | 조회 176 | 2024.03.26
시인 이 해인먼 하늘노을지는 그 위에… 더보기

호흡이 안 되는 이유

댓글 0 | 조회 385 | 2024.03.26
호흡이 안 되는 것은 대개 불안해서입…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