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공부운’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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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운’이 없을까?

0 개 1,165 김준

2002년 겨울,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 

 

한창 동계올림픽의 열기에 휩싸여 있는 이 도시에서 기적과도 같은 금메달 수상자가 탄생했습니다. 그것도 첨예한 신경전과 예상치못한 부상이 발생하기로 유명한 쇼트트랙 경기에서 말이지요. 자신의 능력보다는 다른 선수들의 불운에 힘입어 금메달을 거머쥔 이 행운의 주인공은 호주의 쇼트트랙 선수인 ‘브래드버리’ 였습니다. 그의 행운이 얼마나 기가막혔는지, 금메달 수상이후 호주에선 기념우표를 발매해 그를 기념했고 무언가를 운좋게 이루어 냈음을 의미하는 ‘Do a Bradbury’라는 문구가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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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는 올림픽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기억되고 기네스북의 ‘가장 Lucky한 운동선수’ 섹션에 길이 남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지난 2007년, 올림픽 금메달 수상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Order of Australia’ 훈장을 수여받았고 더불어 호주 스포츠인을 위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니 남반구, 최소한 호주에서만큼은 이미 세계스포츠 역사의 한 위인으로 추앙받고 있음이 확실한듯 합니다. 

 

그럼 그 해 솔크레이크에선 도대체 어떤일이 있었던것일까요? 그에게 어떤 행운이 (뒤집어 말하자면 다른 선수들에겐 불행이) 찾아왔었길래 스포츠 역사상 가장 기가막힌 행운의 사나이라고 칭하는 것일까요?

 

사실 그는 4번째 올림픽 출전인 솔트레이크 경기를 끝으로 빙상계에서 은퇴할 작정이었습니다. 뛰어났으나 그리 선명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한명의 스케이터로서, 그저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차분히 마감하는 최선의 경기를 꿈꾸었다고나 할까요? 당연히 언감생심 메달은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소망하는 바가 있다면 준결승전에 진출하는 정도였을까요. 그런데 이렇게 담담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한 브래드버리에게 확률적으로 0에 가까운 행운이 찾아오는데요.. 그 시작은 남자 1000m 8강전이었습니다. 

 

헐리우드 액션으로 한국인의 뇌리에 길이 남아있을‘안톤오노’를 비롯해 세계의 내노라하는 선수들이 출전한 8강전.. 그는 미국의 안톤오노와 캐나다의 마크가뇽과 같은 팀에서 경기를 펼치게 되었습니다. 준결승에 진출하려면 8강전에서 최소한 2위를 해야하는데 이 두선수들은 사실상 강력한 우승후보들이었고 브래드버리는 아무래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가 준결승에 진출할 가능성은 전무했다 말할수 있겠습니다. 경기가 끝났을 때 그의 기록은 3위.. 아쉽긴 하지만 이제 숙소에 돌아가 짐을 꾸려야 할 때가 된것이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 입니까? 

 

2등으로 피니쉬라인을 통과했던 마크가뇽 선수가 시합도중 다른선수의 진로를 일부러 막았던 사실이 밝혀지며 실격한 것입니다. 그래서 브래드버리는 얼떨결에 2위로 올라서서 준결승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이미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 셈이니 부담없이 남은 경기에 임하면 되겠군요. 사실 크게 욕심을 부릴수도 없는 것이.. 준결승전에서 최소한 2위를 해야 결승에 진출할수 있는데 그가 속한 조에는 당시 세계 챔피언이었던 김동성 선수를 비롯해 금메달을 노리는 실력자들이 포진해 있었으니 결승진출을 꿈꾸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별 욕심없이 그저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로 경기에 임한 브래드버리에게 행운의 여신은 다시 한번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우선 한국의 김동성선수가 미끄러지며 결승전에서 멀어지더니만 선두다툼을 벌이던 다른 두 선수들 마저 넘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섯명의 출전 선수들 중 세 유망주들이 실격하고나자 준결승전 1,2위는 당연히 뒤쳐저 따라오던 4,5등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브래드버리는 준결승전 2위로 결승에 진출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참으로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수 없습니다. 세상에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고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지.. 세계의 내노라 하는 선수들이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몸을 던져’ 길을 터주며 상대적 약자인 브래드버리에게 결승진출권을 내어주다니요. 

 

그들에겐 당연히 황망한 불행이었겠지만 브래드버리에겐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행운중의 행운이 아닐수 없었을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타인의 불행을 등에 업은 그의 행운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결승전에서도 또 다시 눈을 의심하게 할 만한 장면들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피니쉬 라인을 50m정도 남겨둔 마지막 코너에서 한국의 안현수와 미국의 안톤 오노, 캐나다의 터코트 등을 포함한 네 명의 선수들이 동시에 미끄러져 넘어지며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했고, 선두 그룹을 뒤따르던 브래드버리가 그들을 유유히 지나치면서 가장 먼저 피니쉬 라인을 통과한 선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어차피 실력으론 그들을 상대할 수 없으니 거리를 두고 따라가다가 네명중 두명이 미끄러지기를 기다려 3위를 꿰차기로 했던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었던 것이지요. 조금 문제가 있었다면 목표했던 동메달이 아니라 금메달을 따게되었다는 것이라 할까요. ㅎㅎ  

 

네 명의 최상위권 선수들이 결승선을 눈 앞에 두고 미끄러져 탈락하자 당장에 재경기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심판진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브래드버리의 금메달은 확정되었습니다. 

 

그날 브래드버리가 따낸 금메달은 호주 역사상 최초의 동계 올림픽 금메달이었으며 동시에 남반구 지역에서 획득한 최초이자 유일한 금메달이기도 했습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자신의 노력과 기량보다는 운이 좋아 금메달을 거머쥐게 된 브래드버리에게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음이 당연합니다. 그래서인지 경기 직후 그를 인터뷰하고자 하는 방송사들이 줄을 이었는데요. 그중의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금메달 수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결과에 만족합니다. 저는 쇼트트랙에 출전한 선수들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고참 선수인데요. 그래서 네 번의 레이스를 펼치는 동안 젊은 상대선수들과 경쟁을 펼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큰 사고를 겪은 적도 있었기 때문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지요. 게다가 제가 가장 빠른 스케이터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금메달을 따게 될 것이라는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금메달을 땄습니다. 저는 이 메달이 승리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하게 진행해 온 훈련과 커리어를 위해 전진해 온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인터뷰는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소수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노력의 산물’ 운운하는거야?’ 라며 브래드버리의 뻔뻔함을 질타했고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도대체 그에게 어떤일이 있었길래 이런 기막힌 행운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는 거지?’ 라고 의아해하며 그의 지난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브래드버리가 살아 온 지난 14년간의 선수생활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알려지자 그를 뻔뻔하다며 비난하던 사람들조차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마지막 경기에서 그가 누린 행운보다 그 동안의 불운이 더 컷다며 브래드버리는 금메달을 딸 자격이 있는 선수라는 평가가 돌기도 했습니다. 과연 솔트레이크 이전 그에게는 어떤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브래드버리는 1991년 월드 쇼트트랙 챔피언쉽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세계무대에 데뷔했습니다. 그 금메달은 호주 최초의 동계스포츠 월드클래스 금메달이었으니 이만하면 데뷔치고는 꽤 화려했다 할수 있겠습니다. 당연히 그는 호주의 인기 스포츠선수로 등극했고 조만간 동계 올림픽에서 호주에 금메달을 안겨줄 유망주로써 온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1994년, 노르웨이에서 개최된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브래드버리는 5000m 릴레이팀을 이끌어 동메달을 수상하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하지만 1000미터 개인전에서는 상대선수의 반칙성 플레이에 희생되고 마는데 이 후 반칙을 했던 선수가 실격처리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제받지 못했고 결국 아무런 소득이 없이 귀국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경기 도중 사고를 당하며 심한 출혈이 발생해서 운동선수에겐 최고의 자산인 ‘몸’에 축이 나기도 했습니다. 

 

1998년 브래드버리는 새로운 각오로 일본에서 열린 18회 동계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도 그의 불운은 여전했습니다. 출전 이틀전에 식중독에 걸려 컨디션 난조를 겪은데다가 500m와 1000m 예선전을 거치는 동안 계속 다른 선수들의 태클에 걸려 넘어지며 결국 3위에 머무른 것이지요. 더구나 그는 이 사고를 통해 111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큰 부상을 입었고 결국엔 다치고 초라한 모습으로 귀국하고맙니다. 올림픽팀을 꾸려 출국할 때는 당장이라도 금메달을 목에 걸것만 같았던 그가 매번 어깨가 축 쳐져서 귀국하자 이제 호주의 국민들도 더 이상 브래드버리에게 기대를 걸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세계무대를 주름 잡을것만 같았던 신예 스케이터는 20대 중반을 넘어서며 은퇴를 고려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브래드버리에게 남은 것은 잊혀진 존재가 되는 일 뿐인듯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이은 불운도 그에겐 충분하지 않았었나봅니다. 2000년 9월, 그는 훈련도중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요. 사고도 웬만해야지... 이번엔 목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고속으로 연습주행을 하던 브래드버리 앞으로 다른 선수가 끼여들며 넘어진 것이지요. 순간 그는 넘어진 팀 동료를 뛰어 넘어서 사고를 회피하려 했지만 워낙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다보니 맘처럼 잘 되질 않았나봅니다. 브래드버리는 팬스에 심하게 머리를 부딪쳤고 결국 경추 4, 5번 골절상과 갈비뼈 골절상을 입고 맙니다. 다행히 넘어졌던 팀 동료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하네요. 이번에도 역시.. 브래드버리는 다른 선수의 개입으로 인해 ‘선수생명’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생명’ 까지 위협받는 사고를 당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사고 이후 그는 머리와 가슴, 그리고 허리까지 이어지는 보조대를 부착한 채 치료와 재활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고소식을 접한 모든 호주 국민들은 그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은퇴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당연히 담당의사도 은퇴를 권유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하네요. 은퇴할 생각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찢어지고 부러진 몸을 추스려 재활한 후 다음 올림픽에 출전할 계획을 세웠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 올림픽이 바로 솔트레이크 올림픽이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올림픽경기.. 10여년의 선수생활을 담담하게 마무리할 각오로 무리해서 출전했던 그 올림픽에서 브래드버리는 그동안의 불운과 억울함을 한방에 날려주는 기막힌 기적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외모와 상황과 관계를 통해 한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우린 눈 앞의 누군가가 살아온 지난 삶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지 못했고 멀고 먼 어느곳에서 이루어지는 삶을 관찰할 수 있는 천리안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인이고 우리는 제한적입니다. 

 

누군가의 삶을, 혹은 그 사람 자체를 평가할 때 눈 앞에 방금 드러나는 외모와 상황과 관계에만 근거해서 억측을 한다 하여도, 그것은 우리의 태생적 한계가 야기하는 오해이지 그 누군가를 폄하하려는 악의는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오해는 가끔씩 상대적인 우월감이나 박탈감을 선사하고는 합니다.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브래드버리의 금메달을 바라보며 ‘저 사람은 웬 복이 저리 많아서 힘도 안들이고 금메달을 따는 거지? 난 왜 저런 행운이 따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약간의 질투어린 오해는 우리의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종종 발견되고는 합니다. 

 

V는 중간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언제나 예의가 발라서 한국에서 살아본 기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존칭어를 구사하고는 했습니다. 가끔씩은 어려운 고사성어를 자연스레 섞어 써가며 대화를 해서 저를 놀라게 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V는 아주 인물이 좋았습니다. 아이돌이 될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고 또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던 외모평가이니 너무 믿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ㅎㅎ 

 

잘 생기고 예의바른 중간키의 남학생.. 여기까지는 뭐 그리 대수로울 것이 없는 듯 합니다만 그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운 좋은 아이’

 

그렇습니다. 그는 참 행운아였던듯 합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서 좋은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은 옷을 입었습니다. 오클랜드에서 내노라 하는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했고 이름깨나 알려졌다는 과외선생님들에게서 사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성적도 최상위 였지요. 이렇게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것도 부러운데 그는 유전적으로 총명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를 배우면 둘을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가르치는 중간에 생각의 고리를 연결하고 연결해서 열가지의 결론을 도출해 내기도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정말 운이 좋게도 출중한 노래 실력과 춤실력까지 타고 났지요. 게다가 어려서부터 연마한 태권도 실력이 아주 뛰어나서 뉴질랜드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이런것들은 타고난 태생적 우월성이지 결코 운이 좋은것이라 말 할수 없다구요? 

 

그럼 이건 어떨까요? 시험을 볼 때마다 V가 집중적으로 공부한 부분에서만 문제가 출제 됩니다. 그가 아파서 결석을 하면 선생님도 몸이 안좋거나 스케쥴에 문제가 생겨 수업이 유야무야 됩니다. 그러니 수업 내용을 빼먹을 일이 없겠지요. 정기적으로 꾸준히 다니던 Gym에 어쩌다 한번 빠진 날에는 태풍이 불어 지붕이 무너지는 사고가 났고 운전을 배우다가 사고를 냈을때에는 앞 차의 운전자가 아버지의 친구분이여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운이 좋은 V였지만 그의 공부운은 더욱 특출나게 좋았던것 같습니다. 해가 바뀌어 새학년에 올라갈때마다 학교에서 제일 실력이 좋다는 선생님들의 반으로 배정이 되었고 시험을 며칠 앞둔 어느날 그가 손을 다친적이 있었는데 같은 날 동시에 시험을 구술시험으로 대치하겠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글씨를 쓸수 없게 된 그에게는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지요. 라이벌이었던 학생이 가정사정으로 전학을 가는 바람에 중요한 시험에서 손쉽게 수석을 차지하기도 했고 우연히 알게된 competition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했다가 수상을 하는 바람에 대학 입학이 한결 손쉬워지기도 했습니다. 

 

참 브래드버리에 버금갈만한 ‘행운의 사나이 학생버전’쯤 될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 V를 만났을 때에는 뭐 이런애가 다 있나 싶어 어이가 없었는데요.. 시간이 지나 둘 사이의 관계가 친숙해지고나서 V가 겪어왔던 어려움과 불운과 억울함에 대해 조금씩 알게된 후로는 생각이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정이 부유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했습니다. 어린시절 V는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작은회사의 직원들과 함께 살았었다 하더군요. 그러니까 사장님집을 기숙사로 겸용했던듯 합니다. 부모님은 열심히 사셨지만 형편은 그리 쉽게 피어나지 않았고 V는 가지고 싶은 장난감들을 종이에 적어가며 상상속에서 놀이를 하는 어린시절을 보냈다 했습니다. 부모님께는 사달라 졸라보지도 못한채 말이지요. 그리고 그에겐 몸이 아픈 동생이 있었습니다. 신경성장애를 앓고있는 동생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의 관심을 독차지 했고 그래서 V는 더 외롭고 더 우울했다 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V는 글자를 깨우치자마자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하더군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동생을 놔둔채 집밖에 나갈수 없어서 혼자서 책도 읽고 노래도 부르고 TV에 나오는 연예인들 춤도 따라 춰보고 하다보니 언젠가부터 노래와 춤에 실력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짧은 한국생활을 접고 뉴질랜드로 이민와서는 V의 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햇빛에 노출되면 전신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심지어는 기도까지 부어올라서 호흡장애가 발생하는 햇빛알러지를 가지게 된 것이죠. 게다가 가벼운 천식증상까지 동반하면서 V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었습니다. 그래서 햇빛을 피하면서 동시에 약해진 몸을 조금 단련해보려고 시작한 실내 운동이 태권도 였는데 하다보니 재미가 붙어서 점점 열심히 수련하게 되었다 했습니다. 

 

어느정도 뉴질랜드의 자연환경과 신체적 변화에 적응했을 무렵 이번엔 중학교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한국 친구들사이에서 V가 왕따가 된 것이지요. 아무도 놀아주지 않고 말도 걸지 않고 혼자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 일상이 지속되자 그는 정신적으로 매우 지쳐버렸다 했습니다. 선생님께 이야기해도 물리적인 위해가 없는 이상 잘못은 아니라는 대답만 들었던 V는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갈 무렵 학생회 임원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더군요. 다행인지 아니면 이번엔 운이 좋았던 것인지 그는 유일한 동양인 임원으로 학생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해서 학교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불운이 끝난것은 아니었습니다. 컬리지 주니어 시절에는 학부형회 의장을 아버지로 두고있는 같은반 친구에게 언제나 1등자리를 내주며 더 좋은 성적으로도 2등에 머무르는 부조리를 겪어야만 했고, 팀프로젝트로 참여한 경진대회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다른 팀원이 최고상을 받는 모습을 지켜봐야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불운과 부조리를 겪으며 울고 한탄하고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되풀이 하고 나서 V는 시니어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불운이 변해 행운이 되고 아픔이 변해 기쁨이 되는 학교생활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V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운이 좋아 술술 잘 풀리는 아이 옆에는 질투심에 불타는 원수들만 즐비하기 마련인데 불운끝에 피어난 행운으로 살아가는 V는 철없는 아이들에게도 좀 다르게 비쳐졌었나 봅니다. 

   

가끔씩 학생들이 볼멘소리를 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번에 시험봤는데 제가 열심히 공부한 부분에서는 한 문제도 안나오고 딱 한군데 공부를 덜 한 부분에서만 왕창 출제가 됐어요. 아... 아무래도 난 참 공부운이 없나봐요.’

 

‘올해는 정말 망했어요. 이번 학년 선생님이 발표됐는데 저는 다 못가르치는 선생님반으로 배정됐어요. 그냥 공부하지 말라는 거지요. 아... 아무래도 난 참 공부운이 없나봐요.’

 

‘이번에 팀 프로젝트하는데 팀원들을 선생님이 정해주셨거든요. 그런데 완전 저 혼자 공부하는 학생이고 다른 애들은 전혀 관심이 1도 없는 애들이예요. 이거 점수가 중요한건데 어쩌면 좋지요? 제가 혼자 다 해야할거 같아요. 그런데 좀 억울해요. 걔들은 공짜로 점수 받는 거잖아요. 고생은 내가 다하고.. 아... 아무래도 난 참 공부운이 없나봐요.’ 

 

그렇습니다. 듣고보면 참 공부운이 없는 것이 확실합니다. 공부운이 좋아도 모자랄판에 이렇게 운이 없어서야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런데 말이죠. 누구나 항상 운이 좋을 수는 없는 것처럼 누구나 항상 운이 나쁠수도 없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뭔가 꼬이고 억울하고 손해보는 것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손대는 일마다 척척 풀리는 행운의 시간이 찾아올거라 기대해보면 어떨까요? 

 

브래드버리가 찢어지고 부러지고 억울하고 속상한 10여년을 꾸준히 견디고 난 후 예상치도 않았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듯, V가 아프고 눈물나고 한심스러운 상황들을 견디고 견딘 후 결국에는 ‘운 좋은 아이’로 탈바꿈했듯, 그 두 명이 멋진 사회인으로써 지금도 새로운 행운을 누리며 살고 있듯, 우리에게도 ‘공부운’이 척척 달라붙는 그런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단, 위의 두명처럼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왜 공부운이 없을까요? 분석하고 정리하고 계산하며 고민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공부운이 없는 이유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독히도 운이 따라주지 않는 오늘을 꿋꿋이 견디어 나간다면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공부운이 철썩철썩 달라붙는 그런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 날을 기대하며 속상한 오늘을 견디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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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당 정부가 정권을 잡은후 세금은 어떻게 영향을 받을까요?

댓글 0 | 조회 1,413 | 2023.10.24
우리는 아직 National당 주도 연립 정부가 어떻게 구성될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National당이 권력을 얻게 된다면 세금에 대한 중요한 변화를… 더보기

우주기와 연결된 단전호흡

댓글 0 | 조회 391 | 2023.10.24
명상을 하는 우리는 웰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웰빙(well-being)은 ‘잘 있다’는 뜻입니다. 잘 있다…….어떻게 잘 있느냐? 마음이 편해야 하고, 몸이 건… 더보기

부처님의 마음을 담는 요리 시간

댓글 0 | 조회 423 | 2023.10.24
성화 스님과 함께 만드는 봄맞이 사찰음식 이야기경복궁 처마 밑에도, 삼청동 돌담길과 광화문의 길고 긴 가로수 길에도 봄볕이 반들반들 반짝이는 계절. 연중 관광객들… 더보기

귀에 쏙 들어오는 가디언 비자

댓글 0 | 조회 1,173 | 2023.10.24
자녀를 뉴질랜드에서 유학시키고자 하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체류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비자가 바로 가디언 비자가 아닐까 합니다. 그럼 가디언 비자… 더보기

열무 보리비빔밥

댓글 0 | 조회 690 | 2023.10.24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아내가 비벼준 열무 보리비빔밥에울컥 내 눈꺼풀이 흔들린 것을아내는 모릅니다오뉴월 뙤약볕에김 매던 어머니의 뒷모습이오늘은 까끌한 보리밥 되어목… 더보기

재채기ᆞ콧물ᆞ코막힘이 심한가요?

댓글 0 | 조회 786 | 2023.10.24
알레르기성 비염은 재채기.콧물.코막힘의 세 가지 주된 증세를 특징으로 하는 만성 질환이다. 끊임없이 나오는 재채기와 코 밑이 헐 정도로 계속 닦아내야 하는 콧물,… 더보기

코로나(COVID-19) 그리고 패혈증(敗血症)

댓글 0 | 조회 1,107 | 2023.10.20
지난(10월 10일) 박종환(朴鍾煥) 축구감독이 체육인들의 천국환송을 받으며 하늘나라로 떠났다. 멕시코 4강 신화를 이끈 박종환 감독이 지난 10월 7일 향년 8… 더보기

2028 대입개편 시안은 해외고 출신에게 유리할까?

댓글 0 | 조회 1,246 | 2023.10.11
2023년 10월 10일 교육부에서는 대입제도는 미래인재 양성에 기인하면서, 학생-학부모-고교-대학모두 예측 가능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더보기

사회에 소외된 곳을 찾아가는 리커넥트 - 9월 활동 보고

댓글 0 | 조회 761 | 2023.10.11
1. Discover the warmth 프로그램지난 9월 13일, 리커넥트는 “Discover the warmth” 프로그램으로 엡섬에 있는 Elizabeth … 더보기

배가 차가운 거 같아요!

댓글 0 | 조회 838 | 2023.10.11
예전에는 나이 든 어른이나 ‘무릎이 시리다’, ‘등에서 찬바람이 난다’, ‘배가 차다’고 했는데, 요즘은 젊은 사람과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배가 차다고 호소하는 경… 더보기

템플스테이에 다녀와서 어떻게 살 것인가?

댓글 0 | 조회 785 | 2023.10.11
봉화 축서사 참선 템플스테이깨달은 뒤에 어떻게 살 것인가.템플스테이에 다녀와서 어떻게 살 것인가.축서사에 다녀와서 어떻게 살 것인가.궁금하지 않은가?우선 마음의 … 더보기

사회적 타살의 일상성

댓글 0 | 조회 518 | 2023.10.11
현실 사회주의를 비판하려는 이들이 늘 집중 공격하는 것은 농업 집단화나 숙청 때와 같은 대규모 국가폭력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스탈린주의를 변호할 수는 없다. 혁… 더보기

시골다방

댓글 0 | 조회 563 | 2023.10.11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몰래처음 가 본 다방에서가져다 주는 커피에눈도 마주치지 못하고설탕만 많이 넣어 마셨다만나자 소심하게 말하고는다방 구석에… 더보기

뱃살이 고민이신가요?

댓글 0 | 조회 575 | 2023.10.11
왠만하면 잘 빠지지 않는 아랫배 쏙 들어가는 초보자 5분 복근운동. 선선해진 날씨 탓인지 요즘 들어 식욕이 더 좋아져 먹는 양을 조절하기가 힘들다는 분들이 많은데… 더보기

한민족의 미래

댓글 0 | 조회 552 | 2023.10.10
한민족은 한반도와 해외 여러 지역에 살면서 한인(Korean)으로서의 공통적 혈통과 문화를 공유(共有)하거나 공유한다고 생각하는 아시아 계 민족으로 정의하고 있다… 더보기

不惑의 秋夕

댓글 0 | 조회 455 | 2023.10.10
시인 천 상병침묵은 번갯불 같다며,아는 사람은 떠들지 않고떠드는 자는 무식이라고老子께서 말했다.그런 말씀의 뜻도 모르고나는 너무 덤볐고,시끄러웠다.혼자의 추석이오… 더보기

신기술이민의 불변조항 살펴보기

댓글 0 | 조회 1,234 | 2023.10.10
새롭게 단장한 기술이민법이 지난 10월 9일을 기해 시행에 들어갔습니다.18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모으고 모아야 한다는 피로감에서 벗어나 단 6점만 따게 되면 언… 더보기

동양인들을 위한 NGO의 행사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

댓글 0 | 조회 623 | 2023.10.10
정부에서는 많은 비영리 법인들을 지원하고 있는 데 그 동안 동양인 커뮤니티들을 위한 지원들은 다른 인종그룹들에 비해 저조했었고 미비했었습니다. 그리고 정부에서 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