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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미소는 염화시중의 미소랍니다.
기분 나쁜 것과 기분 좋은 것의 딱 중간에서 약간 웃고 있는 거죠. 바로 그 상태에서 채널링도 가능한 겁니다. 모두 파장을 낮추는 훈련을 부단히 하다 보면 그렇게 될 수 있죠.
저의 경우, 처음에는 내가 어떤 소리를 듣고 싶어서 신경을 썼는데, 어느 날 갑자기 미지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걸 귀로 들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이 파장하고 다르기 때문에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테레오 헤드폰을 쓰면 양쪽에서 소리가 나고, 모노 헤드폰을 쓰면 머리 가운데서 소리가 나죠?
후자처럼, 그렇게 들려요. 머리 안에서 바로 들리죠.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이런 생각도 했지만, 저쪽에 내 메시지를 보내면서 소통이 된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상대방이 어느 정도인가, 나한테 무슨 역할을 하기 위해서 왔는지 알아보기도 했죠.
그런데 상대가 계속 바뀌어요. 저의 단계가 올라감에 따라 그에 맞는 상대가 계속 오는 거였어요. 그리고 상대방을 따라 우주로 가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전혀 상상치 못했던 커다란 세계를 보았지요.
블랙홀도 가서 보면 거기가 끝이 아니더군요. 다른 세계로 빠져나가는 문이었어요. 그러면서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한가를 알게 됐죠.
이 넓은 우주에 지구가 생긴 게 한 45억년 되었다는데, 그 세월을 우주로 봐서는 웃기는 시간이죠.
빅뱅이라는 것도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불꽃놀이 한 방이라니까요. 우리가 몇 억 광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하지만, 우주에서 보면 째깍하는 한 순간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가진 기준으로 우주를 재려고 하면 안돼요. 당장 지구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아무런 쓸모가 없어져요.
이렇게 우주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그리 즐거워할 것도 없고 슬플 것도 없고 그저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약간, 더 어긋나지 않은 게 즐거운 것일 뿐이죠. 그래서 살짝 웃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아무리 큰 능력을 갖게 되었고, 아무리 큰 세계를 보았다 할 지라도 정말 하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게 실은 자기 것이 아니거든요. 무얼 갖고 있더라도 버릴 줄을 알아야 해요.
모든 소유권은 우주 공간이 갖고 있는 거죠. 다만 내가 거기에 다가가기 위해서 그쪽에서 대여해준 장비를 쓰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채널링도 그래요. 그쪽에서 빌려준 무전기 하나 잠깐 쓰는 것과 같죠. 다른 사람은 전화기를 잡고 있을 때, 그저 무전기를 잡았던 거죠.
그 경험이 제 진화의 시간을 단축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채널링이라는 그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도의 길을 가면서, 천안 지나가면서 호도과자, 그거 하나 먹는 거하고 똑같을 따름이죠. 이제 저는 채널링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것도 버려야 할 것 중에 하나거든요. 우리가 미분 적분을 배우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소용이 없어지죠?
그와 같이 도는 계속 비워나가는 과정이거든요. 술잔을 자꾸 비우는 사람이 많이 먹듯이 저에게 채널링이 담긴 잔이 왔을 때, 그 잔을 비운 거죠. 그런데 잔을 한 번 비우면 말이죠,
예를 들어 소주잔을 비우면 그 다음에는 맥주잔이 와요. 그리고 맥주잔을 비우면 생맥주잔에 가득 담겨서 오고, 맨 나중에는 무엇이 올까요?
전부 다 오는 거지요. 온 우주가 가요.
소주잔을 못 비우고 벌벌 떨고 있으면 평생 그러다 끝나는 거죠. 그러니까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릴 수 있을 때 더 소중한 것이 온답니다. 그런데 수련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게 뭐겠어요?
수련하면서 하나하나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는 거, 자기가 하지 못했던 것을 하게 되는 거겠죠.
잠재력, 숨어 있던 자기 능력을 계발해 내는 것, 그걸 자꾸 계발해내면서 그게 너무 귀하고 좋고 소중한 거, 그런데 그걸 버리기 싫어서 거기에 딱 머물러 있으면 거기서 끝나버려요.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