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년에 말이야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내가 왕년에 말이야

0 개 1,748 새움터

1980년대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라는 곡으로 어느 정도 대중적 사랑을 받았던 가수가 있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야지만 크리스마스인 줄 알았던 필자에게 이 노래 제목은 낯설었다. 이 가수는 한국과 사계절이 정반대인 호주라는 미지의 곳에서 날아 온 또 다른 지구인이었다. 그 낯설었던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가 올 해로 20번 째다. 너무나 쉽게 상상되던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 거리, 구세군의 종소리, 은은한 가로등과 상점에서 울려 나오는 캐롤이 낯설게 느껴진다. 오히려 11월 부터 벌써 크리스마스 준비에 분주한 사람들, 상점마다 진열된 상품들, 덩달아 들썩대는 분위기. 그리고 크리스 마스 당일에는 그저 파란 하늘과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에 돗자리를 펼쳐 놓고 바베큐를 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나이듦과 더불어 시간과 공간이 변해 갈수록 스스로가 상황에 맞게끔 변화하고 적응해야 하는데 이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익숙해 진다는 것은 편안해 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주위 사람과 주변 환경에 익숙해지면 편안하고 편안한 만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본인의 지나간 시절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고 ‘왕년’을 이야기 속에서 안정감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론 ‘왕년’의 시간 속에 갇히기도 한다. 

 

최근 치매 요양원을 찾아가 한 노인에게 도움을 드렸던 일이 있다. 이 노인은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이다. 10대 후반의 나이에 뉴질랜드 공군에 기술병과로 입대하여 필리핀 공군기지로 배속되었다. 약 3년간 격납고에서 전투기 정비병으로 근무했다. 시쳇말로 기름밥을 먹은 분 이었다. 안타깝게도 불과 두 세달 사이에 치매증세가 많이 진행되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 그리고 요양원 스탭들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필자를 처음 만나셨음에도 반갑게 맞이하시고 현재 자신이 복무하고 있는 자대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옆방에 있는 동료는 수송대 소속이고 얼마나 골초인지 비흡연자인 본인과는 안 맞아서 말도 안섞는다는 이야기부터 요즘 부대 짠밥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자주 식사를 거르게 된다고도 말씀 하셨다. 조만간에 미국으로 재배치 대기 중이라 따로 독방을 사용 중이라고 벽에 걸린 사진을 보고 말씀 하셨다. 그 빛 바랜 흑백 사진 속에는 본인이라고 주장하는 어느 청년이 전투기 날개 옆에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함께 가게될 전우가 생겨 반갑다며 마침 아버지를 방문한 칠순의 아들의 손을 맞잡으셨다. 

 

그 노인에게 치매 요양원은 필리핀에 있던 내무반이었고 여전히 2차 세계 대전은 현재 진행형 이었다. 왜 굳이 많은 시간들 중 특별히 그 ‘왕년’만 기억하고 그 시간 속에 갇혀 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치매의 증상 가운데 ‘Sun downing symptom’ 즉 해질녁 증상이라는 것이 있다. 이 증상은 치매 환자들이 유독 오후가 되고 해질녁이 되 갈수록 말과 행동이 과격해 지는 것이다. 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치매 노인의 보호자 입장이라면 하루 24시간 어느 한순간이라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여유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여전히 군복무 중이신 그 노인의 경우도 주위 다른 요양원 거주 노인들에게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고 있었다. 오후만 되면 옆방 노인과 수시로 다투거나 종종 지팡이를 흔들며 위협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고 식사와 개인 위생을 도와주는 스탭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격한 행동으로 인해 요주의 인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적절한 치료와 요양을 위해 미국이 아닌 보다 높은 단계의 시설로 재배치(?)되는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다. 

 

치매는 뇌질환의 일종으로 알츠하이머로 알려진 퇴행성 치매, 뇌혈관계 치매 그리고 뇌신경 손상으로 인한 파키슨병으로 크게 나뉜다. 흔히 기억력이 저하되고 시공간의 인지능력이 저하된다. 치매가 무섭다고 하는 것은 서서히 단기 기억이 상실되다가 결국엔 한 인격체로서의 존엄마저 사라지게 되는 안타까운 병이기 때문이다. 특히 많이 알려진 치매의 증상은 과거로의 회귀이다. 방금 식사한 사실은 잊어버리고 또 밥을 달라 보채지만 50년 전에 첫 애를 낳아 품에 안았던 것은 기억하는 그런 식이다. 그리고 그 찰나의 기억들만 무한 재생을 하며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듯 행동하고 말한다. 안타까운 것은 치매는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 규명도 이에 따른 치료 가능한 질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국 건강한 생활 습관이 그나마 노년에 발생하게 될 치매를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건강한 생활 습관은 운동, 취미 생활, 식습관 뿐 아니라 평소 정신건강 관리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시황제가 그토록 원했던 불로초(不老草)가 존재하지 않듯 치매 예방을 위해 모든이에게 딱 맞는 만능열쇠는 없다. 오늘 만큼은 각자의‘왕년’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 여행을 통해 각자가 주체적 정신 건강 전문가가 되어 보면 어떨까 싶다.                     <새움터 회원 장요셉> 

 

새움터는 정신 건강의 건전한 이해를 위한 홍보와 교육을 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www.saewoomtor.org.nz 

 

친구에게 때가 한참 지난 사과를 하면서

댓글 0 | 조회 1,328 | 2021.02.23
현직 기업체컨설턴트와 코칭 전문가로 맹활약중인 고등학교 절친 중 한 명으로부터 그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책이 탈고를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고, 다른 친구가 … 더보기

어찌 하오리까 Ⅱ

댓글 0 | 조회 1,923 | 2020.12.22
‘베트남의 호치민, 태국의 치앙마이, 인도네시아의 발리, 체코의 프라하그리고 한국의 제주도’지금이야 코로나로 인해 국내외 여행이 사실상 불가능 해졌지만 나열한 장… 더보기

어찌 하오리까

댓글 0 | 조회 1,500 | 2020.11.25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가 야구다. 1970~ 80년대는 고교야구의 전성기였다. 고교야구 전국대회가 열리는 동대문 야구장은 연일 만원 사례였다.… 더보기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댓글 0 | 조회 1,735 | 2020.10.14
며칠 전이 추석이었다. 모처럼 캄캄한 밤하늘에 걸린 쟁반같이 둥근 달을 새삼 올려다 보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 이곳 뉴질랜드에 정착하여 20년 넘게 살다보니 추석… 더보기

판도라의 상자

댓글 0 | 조회 2,042 | 2020.09.09
20대의 끝자락에 유럽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먼저 방문해 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그리스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유명한 올림푸스 산의 신전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순… 더보기

가비 한잔 하실까요?

댓글 0 | 조회 2,340 | 2020.08.12
최근 19세기 말 인천을 배경으로하는 소설책을 읽다 ‘가비’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상류층의 초대를 받는 자리에 주인공은 ‘가비’를 대접 받는 장면있다.… 더보기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댓글 0 | 조회 1,544 | 2020.07.15
아름다운 글과 시 그리고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그대’ 이다. 우리말 사전에 ‘그대’ 라는 단어는 그 쓰임이 구어체와 문어체에서 따라 약간의 차… 더보기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더냐?

댓글 0 | 조회 1,464 | 2020.06.24
스마트폰의 편리에 빠져 버린 요즘이지만 널리 읽혀 온 고전 동화들은 디지털 시대에 맞게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포근한 잠자리와 아늑한 조명, 그 아래 엄마가 읽… 더보기

2020년의 4월

댓글 0 | 조회 2,330 | 2020.05.27
'4월은 잔인한 달’,어느 순간 부터 뭔가 어려운 일이, 그것도 하필 4월이 있는 경우 쉽게 입가에 맴도는 말이다.이 표현은 노벨상 수상자인 영국 시인이자 평론가… 더보기

방금 뭐라고 했지?

댓글 0 | 조회 2,007 | 2020.03.24
술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아마도 남자들 군대 이야기 못지 않게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술의 역사는 꽤차지 않았더라도 한국인은 술을 좋아하고 술에 대해 여전… 더보기

현재 내가 왕년에 말이야

댓글 0 | 조회 1,749 | 2019.12.23
1980년대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라는 곡으로 어느 정도 대중적 사랑을 받았던 가수가 있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야지만 크리스마스인 줄 알았던 필자에게 … 더보기

우선 특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댓글 0 | 조회 1,588 | 2019.11.13
우선 특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산을 산이라고 하고 물을 물이라 합니다몸을 옷으로 감추지도 드러내 보이려 하지도 않습니다물음표도 많고 느낌표도 많습니다.사금파리 하나… 더보기

뜬금없이 찾아온 나의 정체성 혼돈기

댓글 0 | 조회 1,807 | 2019.06.11
이민 온 누구나가 그렇듯이, 이왕 이민 온 것 잘 살아보려고 열심히 노력하였고,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아이들은 이민생활에 잘 적응해서 학교마치고 직장생활하는 … 더보기

내 나이가 어때서…

댓글 0 | 조회 1,509 | 2019.05.15
올해도 날짜가 어디로 몽땅 새어 나갔는지 벌써 5월이다. 아직 뉴질랜드의 가을을 맞이 할 준비조차 안된 나는 5월이라는 단어가 당황스럽기만하다. 버나드 쇼라는 작… 더보기

인연의 소중함

댓글 0 | 조회 2,201 | 2019.04.09
몇년동안 같은 모임에서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새로운 삶을 위해 뉴질랜드를 떠났다. 물론 떠날 준비를 한다는 것을 알고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도 했고, 몇달… 더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댓글 0 | 조회 1,361 | 2019.03.13
오랜만에 방문한 웰링턴의 여름은 오클랜드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는 않았다. 올해 유난히 덥고 건조한 2월의 파란 하늘, 한 여름의 뙤약볕, 맑은 공기와 그 속에 … 더보기

심리상담 속에서의 경청의 실례

댓글 0 | 조회 1,518 | 2019.02.15
심리상담 십수년, 그 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적지 않은 클라이언트를 만나왔다.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끝모를 우울의 늪으로 빠져 들던 사람, 삶에 대한 희망이 … 더보기

평형수 (平衡水)

댓글 0 | 조회 1,499 | 2019.01.15
“내 나이엔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점심 때까지 앉아 있는다. 그리고 또 점심을 먹은 후 앉아 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지난해 5월초 104세의 ‘안락… 더보기

Kāhui Tū Kaha

댓글 0 | 조회 1,194 | 2018.12.11
뉴질랜드에 정착한 지 벌써 13년이 흘렀다. ‘한국을 떠난 지 엊그제 같다’라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을 정도로, 뉴질랜드에서 산 날과 한국에서 살아온 날이 엇비슷… 더보기

“내 꿈 꿔”

댓글 0 | 조회 1,470 | 2018.11.15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가 ‘꿈’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나에게 꿈이 있다”또는 TV 광고문구 중 한때 유행어가 된 “내 꿈 꿔”라는 말을 들으면 … 더보기

무지개 색깔은 정말 일곱 가지일까?

댓글 0 | 조회 2,617 | 2018.10.12
체중이 감당이 안 된다. 아침에 운동장 일곱 바퀴를 걷기로 했다. 차 한잔을 마시고 다른 생각이 파고들기 전에 동네 운동장으로 나간다. 생각하기 시작하면 운동보다… 더보기

치유의 말과 행동, 무엇이 더 중요할까?

댓글 0 | 조회 1,770 | 2018.07.11
오랫동안 상담 일을 해 왔다. 심리 상담이나 치료를 직업으로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묻는 게 있다. “어떻게 듣기만 해요?”또는 “무척 힘드시죠?”등이다. 그들… 더보기

자존과 교육

댓글 0 | 조회 1,453 | 2018.06.14
‘자존’은 스스로 자(自)에 높을 존(尊)이란 자를 써서 만든 말이다. 그 뜻은 나를 높이 여기는 것이다. 나를 높이 여기는 것과 여기지 않는 것의 차이는 크다.… 더보기

공상이라는 심리 방어기제

댓글 0 | 조회 2,949 | 2018.05.10
■ 새움터 회원: 정인화(심리 상담사 / 심리 치료사)​심리 치료를 오랫동안 받으면서 방어기제로부터 매우 자유로워졌다고 자부한다. 예전에는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던 … 더보기

투명인간

댓글 0 | 조회 1,635 | 2018.04.10
초등학교 때였나. 그때 한동안 투명인간에 열광했다. 많은 사람이 만화책이나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 봤을 그 투명인간 말이다. 기억 속의 투명인간은 거의 슈퍼 히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