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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 경희
시어머님은 무학의 시골 태생이었다. 겨우 당신과 자식들의 이름 정도를 어설프게 그리실 줄 아는 어머님이 처음엔 참 답답했다. 감히 드러내어 불평은 하지 않았지만 투박하고 살갑지 않은 어머니가 서운한 적은 많았다.
어머니는 칭찬에 인색한 분이었다. 자식 면전에서 한 번도 잘했다건 수고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딴에는 신경 써서 상을 봐 드린 뒤 ‘맛있게 드셨냐.’ 여쭈면 “마, 배부르면 됐지.” 라고 말을 자르셨다. 은근히 칭찬을 기대했던 새 며느리는 혹 마땅치 않으신 것이 있었나 싶어 안절부절 하고 죄라도 지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의 손자가 태어났다. 물론 어머니는 한결같이 무뚝뚝하셨다. 갓난쟁이를 처음 안고 흐뭇한 표정은 지으셨으나 역시 칭찬의 말씀은 없었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그놈 인중이 길다”란 말을 혼잣말처럼 던지셨던 것 같다. 건강하게 장수하라는 덕담이셨음을 이해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런데 한 날, 집안일을 거들어 주던 도우미 아주머니께 희한한 말을 들었다. 아주머니께서 다니러 온 어머니께 “할머니, 손자가 참 영리해요”라 했더니 망설이지 않고 “우리 며느리가 똑똑합니다.” 하시더란다. 아주머니는 여러 집의 노인들을 대해봤지만 그런 말을 하는 시어머니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 후 어머니가 퉁명스레 말씀을 하셔도 고까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다시 두 해쯤이 지났다. 둘째 아이는 유난히 말이 빠르고 재롱스러웠던 형에 비해 발육이 한참 더뎠다. 두 돌이 지나도록 다른 사람과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는 작은아이를 보며 아이 아빠는 울컥 걱정이 치밀었나보다. 간혹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이 사람이 사고를 쳤다.
장모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 혹시 처가에 모자란 사람이 있었습니까?” 물었다는 것이다. 친정어머니는 “글쎄, 우리 집에 그런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며 좀 늦되는 아이도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며 사위를 달랬다고 하셨다. 몹시 마음이 상하셨을 친정어머니에게 변변히 죄송하다는 말씀도 못 드렸지만 시간이 갈수록 화를 참을 수는 없었다.
부창부수인가. 진중치 못 하기론 남편보다 한 술 더 뜨는 나는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속사포처럼 막내아들의 만행을 고해 올렸다. 눈물까지 섞어 아들을 성토하는 며느리의 말을 듣고 나서 내린 어머니의 말씀이 대박이었다.
“아이고, 내가 아 애비를 모자란지도 모르고 삼십 년 넘게 길렀구나. 안사돈께 미안해서 어쩌노. 걱정 마라. 애가 그럴 리도 없지만 만일 좀 부족하다면 지 애비를 꼭 닮아 그럴 게지 누굴 닮았겠노.”
‘걱정 말라.’는 할머니의 장담대로 아이는 제 앞가림할 줄 아는 단정한 청년으로 잘 자라 주었다. 모두가 어머니 덕분임을 안다.
머지 않아 나도 시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런데, 많은 며느리가 진저리치는 시에미가 아닌 우리 어머니처럼 속 깊고 품 넓은 시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도와 달라 어머니께 부탁드려야 하는데, 자식 곁을 영영 떠나 너무 먼 곳으로 가신 어머니가 아쉽고 그립다.
* 출처 <수필과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