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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줘서 고마워 3

수선재 0 181 2019.11.13 12:48

고통은 내게, 다른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아프기 전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 생명이 있는 하찮아 보이는 모든 생명체가 신비롭고 귀하게 여겨졌다.

고통 뒤에 느껴지는 삶은 예전과는 달랐으며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그 경이를 조금씩 조금씩 느껴가고 있었다.

 

두꺼운 껍질이 하나하나 벗겨지면서 그 위로 새살이 돋아나듯 나는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덜 아픈 것에 대해, 매일 주어지는 평범한 하루, 내가 누릴 수 있는 시간들이 아름답게 느껴졌으며 작은 일들에 대해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점점 근원적인 행복에 물들어갔다.

그러자 갖은 우여곡절 끝에, 낫기 어렵다던 병도 차츰 차도를 보이면서 점차로 건강해져가고 있었으며 이젠 내게 주어진 생을 만끽할 여유가 생겼다.

비록 불같은 사랑도,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일도, 멋진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도 모두 미완의 꿈으로 남았지만, 지금 더없이 행복하다.

 

고통은 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가족보다 더한 정을 나눌 수 있도록 비좁은 울타리를 치워주었으며 예전엔 몰랐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 보다 넓은 세계와 교감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안내해 주었다.

원망하는 마음을 감사함으로 바꿔놓았고, 결코 알지 못했던 모든 생명에 대한 귀함과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고통을 안고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과 내 자신까지.

만약 내가 건강하고 살아가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면?

내 잘난 맛에 살아가고 있겠지.

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자존심 강한 그 성격에, 나에게나 남에게나 빈틈없이 깐깐하게 굴며 세상의 부조리와 타인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면서.

때론 인간이 아무리 용을 써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도,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으며 어떤 거대한 섭리에 의해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아팠던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자기연민에 빠져본다. 여기 저기 흉터뿐인 내 몸. 많이 아파서 지치고 힘겨웠을 내 몸.

수 많았던 고통의 시간을 함께 해준 내 몸. 손가락, 발가락, 어디 한군데도 내놓을 만큼 예쁜 구석은 없지만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고마워.

 

고통도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함께 해줘서 고마워….

오늘같이 따뜻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질 땐, 부실투성이인 나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하늘의 섭리를 느낀다.

모든 생명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이유와 누구보다 이들을 사랑하는 그 어떤 섭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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