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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날이다. 이런 계절엔 여기저기 짝을 지으려 숲 속이 시끄럽고 분주하다.
우리도 이번 주말에 조카가 결혼을 하기에, 오클랜드 여행을 다녀올 것이다.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내 동생 부부를 만나는 뜻 깊은 여행이기도 하여 마음이 설렌다.
2001년 초에 우리는 뉴질랜드 땅을 밟게 되었다. 동생은 나보다 일주일 먼저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오클랜드에 정착했다.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며칠 동안 동생네 집에서 지냈다. 집 근처 부둣가 카페에 앉아 피자를 먹던 중, 장난꾸러기 조카는 매운 피자를 조금 떼어 갈매기한테 주었다, 그 피자를 받아먹은 갈매기는 허겁지겁 물가로 달려가 물을 마셔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어 하던 악동이 예쁜 짝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내 동생은 화가이다. 자식들 웬만하게 키워놓고 나서 다시 붓을 들었지만, 그런지도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몇 번의 전시회로 제법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지만, 꿈의 과정을 즐기면서 나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내 동생은 남편 복이 많다. 내 동생이 여기까지 오게 되는 동안 제부의 공이 컸다. 하지만 제일 큰 공은 내 동생에게로 가야할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니까.
지금 내 동생은 면 소재의 가방에 그림을 그리느라 바쁘다. 아들 결혼을 축하해주는 지인들에 대한 화답이다. 다양한 크기의 가방에 직접 그림을 그려 넣으면서 즐거워하는 동생의 모습이 그려진다.
덕분에 나는 동생의 스승인 언니의 선물까지 포함하여 두 개의 가방을 받을 것이다. 언니의 그림을 유난히도 좋아해서 언니의 작품들을 몇 점 소장하고 있는 나로서는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여 각자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자매들의 애정은 갈수록 더 애틋해지기만 한다. 자식들이 품 안에서 떨어져 나간 자리를 자매들의 사랑이 채워주나 보다.
어느덧 네 자매가 모두 다 육십 줄에 들어섰다. 화상통화를 하면서 나이에 비하여 젊고 예쁘게만 보이는 언니들과 동생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이 야속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라서 성장하는 것에 비하면 어른들은 늦게 늙는 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들 예전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였다. 혹 아닌 혹이 딸려 있어서 어디 자신의 일상이 자신의 것 만이었겠는가? 홀가분하게 보였다. 진짜로 홀가분할 것이다. 그런 만큼 외로움도 늘어날 수 있겠지만, 외로움은 성장의 거름이니 그 정도의 외로움은 감내할 만하다. 우리는 끝없이 성장해야할 어린이니까.
며칠 전에 아버지 집에 세 자매가 함께 모였는데, 아버지께서 내가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신 바람에 화상채팅을 하게 되었다. 늘 그러하듯 네 자매가 모이면 하하 호호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큰언니가 화면에 비친 내 머리를 멋있다고 하는 바람에 또 한바탕 웃었다.
올해 초에 나는 머리를 짧게 잘랐다. 엄두를 내지 못했던 숏커트를 한 것이다. 물론 재주가 뛰어난 한국인 헤어드레서 덕분에 용기를 낸 선택이었다. 결과는 흡족했다. 센스 넘치는 헤어드레서는 나에게 염색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거의 백발에 가까운 머리를 개성으로 삼고 그대로 지내라는 조언까지 해주었다.
그동안 염색과 모자로 흰머리를 가리면서 다녔었는데, 새로 염색을 해야 하는 시기에 급작스럽게 병원에 입원을 해야만 했다, 3주 정도 병원에 있는 동안 내 머리의 서리는 점점 더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을 계속 보니 익숙함을 넘어서서 급기야 예뻐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사람의 눈과 생각이 이렇게 바뀔 수가! 나르시시즘이 따로 없구나! 큰 언니가 내 머리가 예쁘다고 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예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구나! 나이가 들수록 나르시시즘에 빠져 들어야겠다. 나르시시즘이 어때서? 우울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거 아닌가?
나르시시즘에 빠진 나는 언니들과 함께 신나게 떠들면서 아버지의 노래를 마지막으로 듣고 화상채팅을 끝냈다. 아버지께서 눈이 제대로 안 보이셨기에 다행이었다. 안 그랬다가는 딸의 흰머리가 안타까워 흥겨운 노래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모든 장기 기능이 약화 되고 오감의 능력이 감소하는 것도 축복이다. 못 볼 거 안 보고, 들을 필요가 없는 거 듣지 않으면서 살 수 있으니, 축복이 아니라고 그 누가 말하랴!
60 넘긴 딸들이 아무리 예뻐 봤자 어렸을 적 만 할까? 아버지의 눈이 거의 안 보이시니 그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어린 딸들의 재잘거림 속에서 마냥 행복하실 뿐이다. 나르시시즘의 대가인 아버지.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나 또한 나르시시즘의 화신이 되어본다.
인생길이 쉬운 길은 아니다. 자연의 모든 길들 중 가장 어려운 길일 지도 모른다. 가면서 웅덩이도 돌부리도 만날 수 있고 수많은 방해물들을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 방해물들이 외부에만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방해물은 내 안에 있다.
그 방해물들을 치우고 넘기는 방법으로 나르시시즘의 화신이 되기를 추천해 본다. 자꾸만 쪼그라드는 나 자신을 굳건하게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멋진 전사가 아닌가?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우리 모두다 나르시시즘의 화신이 되어봄직도 좋을 듯하다.
감사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