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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진권
언제 어디서 샀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도 헌 비닐우산이 몇 된다. 아시다시피 한 번 쓰고 나면 버려도 좋을 이 비닐우산은 한 군데도 탄탄한 데가 없다. 눈만 흘겨도 금방 부러져 나갈 듯한 살 하며 당장이라도 팔랑거리며 살을 떠날 것 같은 비닐 덮개 하며 참 볼품없는 우산이다. 그러나 그런대로 우리의 사랑을 받을 만한 덕을 갖추고 있으니 아주 몰라라 할 수는 없을 듯하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갑자기 비를 만났을 때 가난한 주머니로 쉽게 사 쓸 수 있는 우산은 이것 밖에 없다. 물건에 비해서 값이 싼지 비싼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든 일금백원야로 비를 안 맞을 수 있다면 이는 틀림없이 비늘우산의 덕이 아니겠는가?
값이 이렇게 때문에 어디다 놓고 와도 섭섭하지 않은 것이 또 이 비닐우산이다. 가령 우리가 퇴근길에 들른 대폿집에다 헝겊우산을 놓고 나왔다고 생각해보라. 우리의 대부분은 버스를 돌려 타고 그리로 뛰어갈 것이다. 그래서 헝겊우산을 받고 나온 날은 그 우산을 어디다 놓고 올까봐 신경을 쓰게 된다. 하지만 하루 종일 썩인 머리로 대포 한잔하는 자리에서까지 우산 간수 때문에 조바심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버리고 와도 아까울 게 없는 비닐우산은 그래서 좋은 것이다.
비닐우산을 받고 이를 쳐다보면, 우산위에 떨어져 흐르는 맑은 빗방울이 보인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그 빗방울들이 떨어지며 내는 싱그러운 빗소리도 들린다. 투명한 비닐 덮개 위로 흐르는 그 맑은 빗방울, 묘한 리듬을 튕겨내는 그 싱그러운 빗소리, 단돈 백원으로 사기에는 너무 미안한 예술이다.
바람이 좀 세게 불면 비닐우산은 곧잘 뒤집힌다. 그것을 바로잡는 한동안, 옷은 다소 비를 맞지만 우리는 즐거운 짜증을 체험할 수 있어서 좋다. 그 날이 그날인듯 개미 쳇바퀴 돌듯 하는 우리의 지루한 생활 속에, 그것은 반박자자리 쉼표처럼 산뜻한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좀 오래된 이야기 하나, 퇴근을 하려고 일어서다 보니 창밖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캐비넷 뒤에 있었던 헌 비닐우산을 펴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살이 한 개 부러져 있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비가 갑자기 세차졌다. 머리는 어떻게 가렸지만 옷은 다 젖다시피 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뛰어들었다. 책가방을 든 어린 소녀였다. 젖은 이마에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다. 예고도 없이 뛰어든 그 침입자는 다만 미소로 양해를 구할 뿐 말이 없었다. 우리는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걸었다. 옷은 젖지만, 그래도 우산을 받고 있다는 안도감이 거기 있었다. 이윽고 소녀의 버스가 먼저 왔다. 미소와 목례를 함께 보내고 소녀는 떠났다. 이상한 공허감이 비닐 우산 속에 남았다.
나도 곧 버스를 탔다. 피곤해서 한참 눈을 감았다 떴다. 버스가 막 미아리 고개에 서고 있었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는데 정류소엔 우산꽃이 만발했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들딸들, 오빠나 누나를 기다리는 오누이들, 남편을 마중나온 아낙네들일 것이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용케도 자기를 맞으러 나온 우산을 찾아내는 듯했다. 잠시였지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때 차창 밖 저만치에 한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비닐우산을 받쳐 들고 버스 안을 살폈다. 남편을 기다리는 신혼의 여인었을까? 버스는 또 떠났다. 그녀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몇 번이나 버스를 그냥 보냈을까? 말없이 떠나는 버스를 조금은 섭섭하게 바라볼 그녀의 고운 눈매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또 눈을 감았다. 다음 버스에선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이 꼭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용케 알아보고는 그녀의 비닐우산 속으로 성큼 뛰어 들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늦었냐는 원망의 눈길과 미안해하는 은근한 미소, 찬비에 두 몸이 다 젖는데도 그 사랑은 식지 않을 것이다.
비닐우산은 참 볼품없는 우산이다. 그러나 몰라라 하기에는 너무 좋은 우산이다. 그리고 값싼 인생을 살며,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넘어질 듯한 부실한 바람, 그런 몸으로나마 아이들의 머리 위에 내리는 찬비를 가려 주려고 버둥대는 삶, 비닐우산은 어쩌면 나와 비슷한 데도 적지 않은 것 같아서 때때로 혼자 받고 비 오는 길을 걸어보는 우산이기도 하다.
출처 <수필과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