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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

0 개 1,318 수필기행

나에게는 지병이 있다. 그것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반사적으로 작동되는 오지랖병이다. 병이되 병으로 여기지 않고 평생을 살아왔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병하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같은 유전인자를 타고나서인지 형제자매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

 

지난겨울 우리 세 자매는 베트남 여행을 마치고 하노이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수속을 밟고 있었다. 바로 뒤에는 대형 캐리어를 두어 개씩 소지한 베트남 청년 둘과 아가씨 둘이 서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지도검색을 하며 주고 받는 표정이 매우 심각해 보였다. 베트남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화 속에 ‘경산’이라는 것 같아 아마 진량공단으로 취업 오는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우리 세 자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한국어와 영어로 하니 그들이 알아듣지 못 했고, 베트남어로 하니 우리가 알아듣지 못했다. 몇 마디 아는 낱말들과 몸짓을 총동원하였지만 소통은 쉽지 않았다. 한참을 주고받은 단어들과 표정으로 조합해보니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유학생이었다.

 

우리도 그 도시에 살고 있다고 하니 그들의 표정이 일시에 환해졌다. 그중에 ‘르엉 티용’ 이라는 여학생은 주고받은 손짓발짓과 눈빛만으로도 정을 느꼈는지 마주칠 때마다 ‘이모’ 라며 나의 품에 안겨왔다. 이국에서 우리 지역으로 유학 온다는 사실과 착 감겨오는 붙임성은 우리 세 자매에게 특유의 오지랖에다 모성애까지 자극했다.

 

‘유학생활이 힘들 때 이 큰 이모에게 전화하면 잘 도와줄거야.”

 

막냇동생이 르엉이라는 여학생에게 내 전화번호를 주며 말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겨울채비를 끝내고 조금 한가해지자 문득 베트남학생들이 생각났다. 장정 한 사람쯤은 족히 들어가고도 남을 큰 캐리어와 그 많은 짐을 들고 말도 통하지 않는 초행길을 잘 찾아갔을지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먼저 연락해 볼 길도 없이 시간이 흘렀다.

 

겨울이 깊어지자 한파가 닥쳤다. 이례없는 강추위에 열대지방에서 온 학생들이 잘 견뎌내고 있는지 슬며서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차에 르엉의 문자가 왔다. 한글로 보내온 문자인데도 과거형과 미래형이 뒤섞여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문자를 주고받느라 밤을 꼴딱 새우고도 겨우 이해한 것은 이틀 후에 만나자는 것과 시간과 장소를 정한 것이 전부였다.

 

연일 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다 하필이면 형제가 친정에서 모이기로 한 날과 약속이 겹쳤다. 평소 스스로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좀체 후회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번만큼은 괜히 오지랖을 부렸다는 생각으로 후회가 되었다. 그러나 하노이 공항에서 ‘잘 도와줄 것’이라 했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날짜를 바꾸려니 그것은 더욱더 힘든 일이었다.

 

약속장소에 나가보니 학생들은 생각보다 잘 적응해 나가는 듯 했다. 한 달 정도 지나서인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소통이 조금은 수월했다. 그들은 서로 앞다투어 영상통화로 자신의 집을 보여주며 가족을 소개했다. 부모들은 합장한 채 마치 주술을 외듯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며 나에게 연신 허리를 굽혔다. 세상 어느 부모나 자식을 위한 마음은 똑 같은 모양이다. 그 간절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한식으로 점심을 먹고 달콤한 커피를 한 잔씩 하고 있는데 동생에게서 베트남 학생을 모두 데리고 친정으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친정집 마당으로 들어서니 삼겹살이 노릇노릇 굽히는 냄새와 가족들의 오지랖이 함께 피어올랐다. 동생들은 음식을 한상 차려놓고는 먹는 법을 일일이 설명하며 많이 먹으라고 권하기도 하고 베트남 음식과 문화에 대하여 묻기도 했다. 분명 말은 했지만 그 말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채 오고갔다. 그럴 때마다 한바탕 웃음으로 소통은 완전히 이루어졌다.

 

오늘도 전화벨이 울린다. 르엉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주말마다 걸려오는 르엉과의 통화는 네 살짜리 손녀와 통화할 때처럼 영상으로 해야 한다. 표정이나 몸짓을 보면 소통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오늘은 무슨 이유인지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고 있다. 나풀나풀 연한 하늘색 아오자이를 입은 르엉이 화면 속에서 포즈를 취하며 애교를 부린다. 그 곰살 맞은 애교에 일일이 반응을 하자니 손발이 오글거린다.

 

“이모! 벚꽃축제 한대요. 이모는 한복을 입고, 나는 아오자이를 입고 만나요. 그리고 사진도 같이 찍어요.”

 

어디서 벚꽃축제광고를 본 모양이다. 한복을 차려 입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고, 또한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둔지도 오래다. 그런 한복을 입자면서 떠듬떠듬 내뱉는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건성으로 그러자고 맞장구를 치고 있으니 곁에서 지켜보는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오지랖도 이제는 완전 국제적으로 떠십니다.”

 

“이것도 애국하는 길이에요.”

 

애써 변명을 하지만 남편의 눈에 유별나게 보이는 것은 뻔한 일이다.

 

오지랖은 ‘겉옷의 앞자락’을 뜻하지만 ‘주제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한다’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그러나 나름대로 살아온 철학을 펼치자면 오지랖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도움을 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봉사정신이다.

 

세상은 점점 이기적이고 각박해진다. 참견하다가 자칫 큰 시비로 번질까봐 이웃에 대한 관심을 거둔지도 오래다. 장작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불쏘시개가 필요하듯이 이기적이고 각박한 세상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웃을 향한 관심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참견과 관심이라는 경계가 모호하지만 누군가에겐 참견일 수 있는 어떤 일도, 절박한 누군가에겐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내일도 모레도 오지랖을 펼칠 것이다.

 

상처와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착한 오지랖, 위안과 희망을 주는 긍정오지랖 말이다. 나로 인해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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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숙희 

계간 <<수필세계>>발행인 

대구수필가협회 부회장 

알바트로스문학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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