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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수필기행 0 653 2019.04.10 12:22

아슬아슬하다. 오늘은 분홍색에 흰 동그라미가 보일 듯 말 듯 숨바꼭질이다. 어저께는 짙은 파란줄무늬였었다. 나도 모르게 픽 웃으며 눈길을 거둔다. 나는 외간남자의 그것도 총각의 엉덩이를 훔쳐보는 여자가 되었다.

 

총각은 새로 얻은 직장의 팀장이다. 바로 내 직속상관이다. 손으로 지시를 해야 하는 그와 발로 움직여야 하는 나는 손과 발 같은 관계다. 손잡고 일일이 가르쳐도 알아듣기 힘든 나에게 간단한 지시를 던지고는 휙 돌아서기 일쑤다.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멀뚱히 쳐다보다 어찌 눈치로 맞췄다 싶으면 틀렸다고 싸늘한 눈빛이 되돌아온다. 아줌마의 넉살도 통하지가 않는다. 일부러 눈을 맞추고 인사를 했지만 그는 도통 무덤덤한 반응이다. 업무상 일 이외에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가 않은 듯하다.

 

사실 내가 일을 똑부러지게 잘 한다면 당연히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생소한 곳에서 발을 붙이기가 쉽지 않다. 간단한 일이라도 어느 정도 숙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윤이 발등의 불인 작은 회사는 개인의 사정을 보아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 그날 당장부터 노련하기를 원한다. 오직 카운트에 찍히는 숫자만을 근거로 삼는다.

 

이런 일도 있었다. 그 날은 눈에 익은 작업이라 혼자 일처리를 했다. 그런데 거의 끝나갈 무렵 화들짝 놀라 외치는 소리가 났다. 앞 공정도 하지 않았는데 모두 마무리해버린 것이다. 영문조차 모르는 나를 제쳐두고 팀장은 애꿎은 동료를 나무랐다.  그 동료는 나보다 선임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신 혼이 난 것이다.  얼굴이 벌개진 동료를 보고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그 뒤 한동안은 쥐구멍만을 찾았다.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쳐서만은 아니었다. 팀장의 일처리 방법 때문이었다. 차라리 나에게 따끔한 주의를 준다면 그때는 부끄럽겠지만 곧 괜찮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마주보지 않고 비스듬히 나무라는데 더욱 미안했다. 주눅이 들면 잘하던 것도 실수를 하게 된다. 완전히 숙달도 되기 전에 그런 일까지 있고나니 팀장만 보면 눈부터 피했다. 왕방울만한 눈이 나를 향할 때면 바위가 굴러 덮쳐오는 소리가 울리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 뒤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아도 그의 앞에서는 주눅이 들었다. 민망스럽기도 하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사람의 정이 우선이라 여기며 살아온 나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괜찮다는, 누구나 실수는 하는 거라는 위로의 말 한마디가 무어 그리 어렵다고 무표정으로 일관할까. 이렇게까지 다녀야하나 싶어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여러번 했었다.

 

말수가 많은 사람은 싹싹하고 친절해서 쉽게 친해질 수가 있다. 반면 과묵한 사람은 속을 알 수가 없어 가까이하기가 어렵다. 팀장은 평소에 말이 많지 않다. 꼭 할 말만 하고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얼굴에 항상 구름을 띄고 있어 농 한 마디 쉽게 건네지 못 한다.

 

전에는 내 일만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앞만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꾸 주위를 살펴보게 된다. 남이 하는 일과 다음에 해야 하는 일을 미리 보아 둔다. 나도 모르게 눈치를 살피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게 되었다. 그의 작업복 속에서 드러난 팬티를.

 

한 자리에 서서 일하는 나와는 달리 팀장은 여기저기를 관리하고 정리한다. 혀끝으로 지시만 해도 되는 직책인데도 그의 입은 매번 꽉 다물려 있다. 말수가 적은만큼 그는 일보다 손발이 더 분주히 움직인다. 자연적으로 허리는 숙여져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구부린 뒷모습 중심에서 팬티는 더욱 돋보였다. 일부러 보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평소 궁금해 본 적도 없었다. 성 도착증이 있어 희열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한번 보아버린 부위에는 자꾸 눈이 간다.

 

하루는 줄무늬였다가 다음에 노란색이었다. 검은 작업복 사이로 드러나는 속옷 색깔은 더욱 선명히 도드라져보였다. 주로 사각 팬티를 즐기는 듯 하고 가끔은 넓은 탄력밴드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삼각팬티를 입기도 하는가 보았다. 그런데 요 며칠은 허연 살 아래 골까지 그대로 적나라하다. 무슨 조화일까? 혹? 내 머릿속이 상상으로 분주하다.

 

속옷은 옷만의 기능이 아니다. 보일까 싶어 단단히 단속을 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보일 때를 염두에 두고 색을 고르게 된다. 은밀하게 속내를 대변한다. 어쩌다 실수로 보아버리면 보여 준 사람보다 본 사람이 더 당황하게 된다. 무채색 작업복이 주인의 의도된 얼굴이라면 색 고운 팬티는 숨겨진 마음은 아닐는지! 직책상 무표정과 근엄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의 성격은 가지가지다. 처음부터 마음을 활짝 열고 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서서히 조금씩 열어가는 사람도 있다. 저 사람의 성품은 이렇구나 싶다가도 어느 날 얼굴이 싹 바뀌는 경우를 허다하게 겪게 된다. 상황에 따라 필요에 따라 고무줄처럼 조절이 가능하기도 한 것 같다. 회사는 카멜레온처럼 적절한 대처에 능한 사람을 원한다. 특히나 말은 책임에 따라 그 강도가 세어진다.       

 

큰 둑도 작은 틈새가 있고 태산도 한 삽씩 퍼내면 언젠가 무너진다고 했다. 둑을 무너뜨릴 의도나 태산을 옮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고 마음 편했으면 한다. 첫 발을 떼는 두려움도 컸지만 계속 걸어야 하는 수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차피 걸어야 하는 길이라면 동행과의 관계가 즐거웠으면 좋겠다. 사실, 그 총각팀장이 무슨 속옷을 입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렵고 무서운 사람이 이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또 다시 팀장의 사나운 눈총을 받더라도 살짝살짝 보이던 팬티 같은 성격을 알기에 전처럼 그런 상처는 생기지 않을 것 같다.

 

■ 김 영미 

계간 <<수필세계>>신인상, 김유정문학상 대상, 동서커피문학상 동상, 백교문학상, 포항소재공모전, 산림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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