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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

수필기행 0 387 2019.03.13 12:29

한낮인데도 사방은 어둑어둑하다. 황사가 심하겠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우리는 예정대로 집을 나섰다. 

 

강원도로 접어들자 황사 바람이 거세졌다. 전조등을 켰지만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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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자 딸이 느닷없는 제안을 했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부산 해운대까지 도보로 국토종단을 하자는 거였다. 딸이 제안한 길은 동해안을 따라 조성된 해파랑길이다. 해파랑은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 이란 뜻이다. 770Km나 되는 그 먼 거리를 두 다리로 걷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모유를 수유하는 생후 8개월 된 애기를 데리고 걷는 길이라 가당키나 하냐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딸은 국토 도보종단이 꿈이었다고 했다. 스무 살 때부터 꿈꿔 온 것을 지금 이루지 못하면 평생 이루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요모조모 구체적인 계획을 말하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하루 이틀 생각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딸은 오랜 진통 후 난산 끝에 첫아이를 낳았다. 이제 곧 둘째 아이도 가져야 하니 자신의 건강을 다지는 것이 국토 종단의 첫 번째 목적이라고 했다. 두 번째 목적으로는 제일 친한 친구가 암투병중이어서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에 친구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담겠다고 했다. 그러면 자신의 꿈도 이룰 수 있으니 일거삼득이 아니냐는 거였다. 

 

그렇다. 꿈을 꾼다고 그 꿈이 다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그 목적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세상은 꿈꾸는 자의 몫이라지만 실행이 있어야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한다. 

 

엄마만 도와주면 끝까지 해낼 수 있다고 딸은 자신 있게 말했다. 작은 체구에 저 용기와 자신감이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국토 도보종단을 성공하려면 어느 한사람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도보의 주인공인 딸과 남편은 물론이거니와 그 뒤치다꺼리와 8개월 된 아기를 맡아야 하는 나까지 모두 삼위일체가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사실 촘촘한 삶에서 벗어나 낯선 길로 떠나는 여행은 나에게도 언제나 설렘의 대상이었다. 낯선 길도 떠나고 나면 금세 익숙한 길이 되어 내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 가끔 그 길을 되새김하여 다시 떠날 때는 속살까지 보게 되어 더없이 친숙한 길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국토 도보종단은 여느 여행과는 다르다. 평소의 설레었던 여행과는 달리 낯선 길에서의 맞닥뜨릴 상황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두 달 동안 나의 공간인지 능력을 총동원하여 구간거리를 재고 숙소를 검색했다. 걷는 이들이 지치지 않도록 아름다운 풍광과 안전한 곳으로 경로를 선택했다. 하루에 가야 할 거리를 30Km씩 계산해놓아도 23일의 긴 여정이다. 점심 한 끼만 사먹고 아침저녁은 숙소에서 장만해 먹기로 계획하고 일정을 짰다. 꿈을 이루려는 딸과 동행하는 남편이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짐을 꾸리고보니 그 짐이 만만찮았다. 특히 육아용품과 이유식거리가 절반이 넘었다. 

 

국토종단을 계획하고 몇몇 지인들에게 말했을 때 반응들도 각양각색이었다. 부녀(父女)의 도보종단 용기에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무모하다’와‘왜 사서 고생하느냐’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러니까 해보는 것’ 이라 일축했지만, 내심 밀려오는 불안감과 부담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모든 사물을 실루엣으로 바꿔버린 황사 가득한 낯선 길에서 종일토록 젖먹이 아기와 보내야한다는 불안감이 자꾸만 엄습해 오는 것이다. 더구나 도보하는 딸과 남편의 에너지원이 될 밥상을 길 위에서 날마다 차려야 한다는 중압감도 떨칠 수가 없었다. 행여 중도에서 포기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때의 부담감도 가슴 밑바닥에서 자꾸만 스멀스멀 올라왔다. 

 

진부령과 미시령의 분기점인 용대 삼거리에도 황사는 여전하다. 즐비하게 늘어 선 가게의 네온불빛만 희미한 가로등처럼 밝혀져 있다. 최대의 황태덕장이라는 명성답게 온통 황태판매장이다. 황사와 미세먼지에 좋다는 황태를 한 축사서 다시 출발지인 고성으로 향한다. 

 

저 멀리 소나무 방풍림이 보인다. 드디어 화진포해변이다. 찰싹찰싹 방죽을 때리는 파도소리가 들린다. 파도소리는 두려워했던 일들이 어느새 현실로 다가왔음을 알린다. 내일이면 딸과 남편은 그 현실 속을 걸어 갈 것이다.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스무사흘동안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감격의 순간을 맞을까. 

 

내일쯤은 아마 황사가 환히 걷히고 고성의 푸른 하늘은 국토 도보종단의 첫걸음을 걷는 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이다. 잘 할 수 있으니 힘내라고. 

 

=========

■ 이 숙희 

계간 수필세계 발행인, 대구수필가협회 부회장, 알바트로스문학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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