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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010. 08:15 NZ코리아포스트 (222.♡.244.6)
왕하지의 볼멘소리
우리 성당에는 커다란 밤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가을에 밤송이가 떨어져 까보면 밤은 없고 쭉정이만 들어있다. 껍데기가 통통한 어느 밤송이를 까보아도 마찬가지이다. 가을마다 아이들이 위험해 밤송이가 다 떨어질 때까지 노란 줄을 쳐 놓았다가 치워야하니 그것도 큰 일거리인 것 같다.
몇 년 전 왕가레이 도서관에 세울 장승을 만들 때 마오리 조각가들과 조각학교에서 같이 작업을 하는데 그들은 온몸에 문신을 하여 겉모습은 험상 굳었지만 알고보니 착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미리 그린 도면을 보고 작업을 하는데 마오리들은 평면그림이나 점토로 모형을 만들며 참고하지만 정확한 축척이 아니라 작업이 더디었다.
조각가 한사람이 도면을 그려달라고 부탁하여 도면을 그려주자 그는 작업에 속도를 냈으며 카우리나무로 만든 해머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평면이 아닌 둥그런 나무에 입체조각을 하니 상상력으로 짜 맞추기를 하다보면 오래 걸리거나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장승을 만들어 기증하고 난후 시청에서 기증자들을 초청하였다. 나는 영어로 된 표창장하나 주나보다 은근히 기대를 했는데 빵 쪼가리하고 커피만 주는 게 아닌가, 영어도 못하는데 말이나 자꾸 시키고... 에이~ 괜히 참석했다 싶었다. 그 후 도서관 입구 벽을 보니 한국장승소개 사인물이 붙어있었다. 흠, 표창장보다 이게 훨씬 낫고만...
대학교를 졸업한다는 김 군에게 전화가 왔다. 너무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며 무난히 마친다고 하였다. 뜻밖의 전화를 받고나니 무뚝뚝한 김 군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알맹이를 좀 불어 넣어줬었지...
김 군은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건축과에 가려고 나에게 개인 지도를 받았다. 그는 수학은 잘했지만 미술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2개 대학에 목표를 두고 있었는데 A대학은 포토폴리오를 제출해야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가 스스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가르쳤는데 작품이 잘 안될 때는 짜증을 부렸다. 비싼 과외비도 내는데 선생님이 좀 도와주면 안돼요? 뭐 이런 투정이었다.
“나의 도움을 받은 포토폴리오로 대학에 가는 것은 옳지 않다. 대학 가서도 나에게 과외 할 거냐? 건축가가 돼서도 나의 지도를 받을 거냐? 나는 네가 건축공부를 해낼 수 있도록 뿌리를 다져줄 뿐이다.”(그리고 또 내가 도와줬는데 네가 떨어지면 내가 무슨 망신이냐, 흠...)
혼자서 만든 작품이 스케치북 한권에 이르게 되자 그는 흐뭇해했고 내가 보아도 대견스러웠다. 그는 건축물을 스케치하고 색깔을 입힐 때마다 이미 평면, 입면을 계획하였고 투시기법으로 입체를 미리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겉모양만 치중한 게 아니라 꽉 찬 알맹이가 그의 머리속에 들어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포토폴리오를 제출한 A대학은 떨어졌고 B대학에 들어갔지만 그는 만족 해 했다.
내가 한국에서 겸임교수를 할 때 학생들에게 강조한 것은 포장하기 위해 학교를 다니지 말라는 것이었다. 졸업장이 없어도 실력이 있다면 일 할 수 있지만 졸업장은 있는데 실력이 없다면 일을 해도 결국 쫓겨나니 비싼 수업료 낸 만큼은 배워 나가라는 말이었다. 포장은 멋진데 뜯어보니 내용물이 시원찮으면 실망한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성당에 색이 바랜 T셔츠를 입고 샌들이나 질질 끌고 다니는 콧수염을 기른 키위가 있는데 아무리 복장이 자유스럽다지만 좀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밖에서야 상관없다해도 성당에 올 때는 나처럼 좀 단정한 차림이 좋지 않은가 말해주고 싶었다. 왕가레이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하기위해 마취주사를 맞고 몽롱한 상태로 누워있을 때 의사가 왔는데 콧수염을 기른 키위가 씨~익 웃고 있었다. “너 정말 닥터 맞아? 혹시 돌팔이 아냐?”
걸레스님께서는 너덜너덜한 옷을 더 걸레같이 보이도록 흙을 잔뜩 묻히고 자동차도 진흙탕 속으로 달려 윈도우브러시가 움직인 자리만 빠끔 보이게 하고 다니셨다는데...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억지로 광 낼 필요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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