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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2010. 13:22 NZ코리아포스트 (125.♡.241.223)
왕하지의 볼멘소리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나~
방학이 되자 손자가 고기잡이 동요를 부르며 낚시를 가자고 보채여 가까운 바다로 낚시를 갔는데, 도착하여 낚싯대를 펴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자가 고함을 질렀다.
“하지~ 빨리 와 봐, 너무 힘들어~~”
내가 쫓아가 도와주며 손자가 꺼낸 고기는 40센티가 넘는 트레밸리이었다. 나는 낚시를 멀리 던졌는데 입질도 없건만 손자는 가까운 곳에서 큰 고기를 꺼낸 것이다. 그 날 나는 한 마리도 못 잡았으나 손자 덕분에 회를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민물낚시를 참 좋아했었다. 대낚시를 펴놓고 잔잔한 물위의 찌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평화로워진다. 찌들은 공기와 복잡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주말에 한적한 저수지에서 낚시를 즐기는 것이 한 시절의 낙이었다.
어느 가을날, 밤낚시 채비도 없이 혼자서 낚시를 하다가 날이 어두워져 버렸다. 잔고기들이 대드는 바람에 붕어도 못 잡고... 오기로 버티고 앉아 있는데 칠흑 같은 어둠속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낚싯대를 살며시 잡고 정신집중을 했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잔물결이 일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낚싯줄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 거야... 뭔가 느낌이 왔다. 내가 낚싯대를 채자 피잉~ 하고 힘찬 소리가 났다. 줄을 손으로 잡아 더듬거리며 꺼내보니 참붕어 준척이었다. 세 번째 걸었을 때는 얼마나 힘이 센지 이리저리 쏘아대며 실랑이를 하다가 꺼내보니 월척이었다. 이럴 수가... 정신일도(精神一到)하면 하사불성(何事不成)이라더니,
그렇게 10여 마리를 잡고 나니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온몸에 찌르르 전율이 오며 뭔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야~ 불빛도 없고 인기척도 없으니 대어들이 나오는데 정신이 없더군...”
내가 불도 없이 낚싯줄 움직이는 느낌으로 고기를 잡았다고 떠벌리자 내말을 믿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뉴질랜드에서는 릴낚시를 하다 보니 불이 필요가 없다. 찬바람이 불 때는 카화이 회 맛이 좋다. 언젠가 카화이를 잡으러 갔다가 바닥에 걸리는 바람에 추를 뜯기고 말았다. 예비로 가져온 추도 없으니 미끼만 달아 던졌는데 멀리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낚싯대가 활처럼 휘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큰 놈이 바로 코앞에서 놀고 있다니... 그 뒤로 나는 추를 달지 않고 미끼 크기로 물속에 가라앉는 속도를 생각하며 어느 층에서 고기가 입질을 하는지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즉, 미끼크기에 따라 물속에 가라앉는 속도를 생각해야한다. 속도의 생각...
빌게이츠는 ‘생각의 속도’라는 저서에서 앞으로 10년의 변화가 지난 50년의 변화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방법으로 앞으로 1년간 잡을 고기가 지난 5년간 잡은 고기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떠벌렸는데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이 있으면 고기가 있는 법. 고기가 노는 층을 찾아냈으면 팔의 고통을 염두 해야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1시간에 30마리를 꺼낸 적이 있는데 다음날 팔이 아파 드러누웠다.
지난여름은 너무 가물어 우리 집의 작은 연못이 말라가고 있었다. 아내는 물이 부족하다며 물탱크의 물을 연못에 못 넣게 하였다. 손자가 어릴 때 낚시를 하던 금붕어들이 모두 말라 죽어 버렸다. 그 후 비가 너무 많이 와 연못은 철철 넘쳤다. 어느 날 손자가 연못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심심한가보다 했는데 몇 시간이고 낚싯대 앞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너 연못에 고기 다 죽은 거 몰라?”
“나도 알아~”
아니, 아는 놈이 몇 시간씩 쪼그리고 앉아있다니... 태공은 미늘이 없는 바늘로 강에서 낚시를 해서 강태공이라 했다는데, 강에는 고기가 있거늘... 고기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낚시를 한다? 범상치 않은 일인데... 저놈이 할아버지보다 한수 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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