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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10. 14:21 NZ코리아포스트 (219.♡.23.25)
왕하지의 볼멘소리
전화벨 소리에 깨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3시였다. 아내가 한국 친구한테 온 전화일 것이니 받지 말라했지만 악착같이 벨이 울려 전화기를 들었더니 술이 얼큰한 후배였다.
“형님, 뉴질랜드가 한국시간보다 3시간 늦다고 해서... 형님 집에 계실 시간에 딱~ 맞춰 전화를 하는데 왜 안 받아요?”
“아주 주접을 떨어라, 주접을 떨어...” 여기가 3시간 빠르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건만...쯧쯔,
이번 방학에는 딸 어학연수 시킬 겸 꼭 놀러 온다고 한다. 후배는 딸이 고등학생 때부터 이런 전화를 해댔는데 딸이 벌써 대학 졸업반이란다. 날 샜지... 후배는 재주도 좋고 유머도 많고 노래도 잘 부르는 팔방미인인데 흠이라면 신용이 없다는 것이 흠이다. 돈 빌려 가면 갚을 줄 모르고 약속하면 지킬 줄을 모른다. 그러나 주위사람들을 너무 즐겁게 하는 재주가 있으니 항상 바쁘며 나 또한 이 후배를 만나 웃다보면 스트레스가 저절로 풀릴 때가 많았다.
어느 날, 후배가 경찰서 유치장에 있다고 전화가 왔다. 거래처에서 받은 어음을 믿고 가계수표를 발행했는데 어음이 부도가 나서 덩달아 부도를 낸 것이다. 경찰친구를 대동하고 유치장에 가보니 후배 꼴이 완전 꽁지 빠진 수탉이었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금액이 커서 쉽게 합의가 안 되고 몇 달은 감방생활을 할 거 같다고 말하였다.
그 후 교도소로 면회를 가야 되는데 혼자가기가 뭐해 친구와 같이 가기로 약속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몇 달이 지나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한테 전화가 왔다. 나는 너무 미안해 곧 면회 가겠다고 했더니 후배는 어저께 감방에서 출옥했다고 한다. 우리는 소주 한잔하기로 하고 설렁탕집 온돌방에서 만났는데 검은 양복을 입고 머리도 짧아진 후배가 나에게 큰 절을 하는 게 아닌가, 방금 출옥한 사람한테 큰 절을 받으니 내가 마치 마피아 두목 같았다.
“형님, 정말 고맙습니다. 형님 덕에 감방생활 편하게 했습니다.”
“뭔... 소리야???”
“형님 친구 분 중에 금융업에 종사하시던 분 있지요? 노름 좋아하시는...”
“노름? 음... 그 친구 노름에 고수였지, 우리하고는 시시하다고 고스톱도 안쳤어. 잘 나가는 친구였는데 언젠가 임자 만나서 재산 다 탕진하고 고객 돈까지... 근데 왜?”
후배가 감방에 배치 받고 사회에서 이런저런 일을 했다고 감방장에게 신고식을 하는데, 감방장이 내 이름을 대며 아느냐고 물었단다. 그래서 제일 존경하는 선배님이라고 했더니 무지 반가워하면서 부둥켜 안았다고 한다. 그 후 후배는 특별대우를 받으며 편안한 감방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거 참, 별 희한한 인연이 다 있군.... 그 말을 듣자 후배한테 별로 미안하지가 않았다.
후배의 표정은 예전과 좀 달랐다. 번지르르한 그런 모습은 없고 좀 찡그리며 눈치를 살피는 표정이었다. 하긴, 몇 달 동안 마음고생이 좀 심했겠어.
“형님, 명예회복을 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나는 후배에게 많은 격려를 해 주었다. 자네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부도 맞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니 지난날보다 더 열심히 살고, 특히 신용을 꼭 지키라고... 신용이 확실한 사람이라면 부도났어도 감방에 안 갈수도 있지, 암...
나는 어떻게 후배를 도와줄까 생각하던 중, 어느 날 방송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이러 저러한 분야를 방송할 계획인데 전문가를 소개 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마침 후배 분야라 후배에게 준비시키고 촬영 현장에 찾아가 냉면까지 사주면서 격려했다.
“멋지게 잘 하라고~ 이제 명예회복 하는 거야~”
후배가 방송 나오는 날, 방송카피까지 해 놓고 테이프도 전해줄 겸 후배에게 전화를 했더니 계속 받지 않았다. 며칠 후 어둠속에 벨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던가, 전화기를 들으니 술 취한 후배가 울먹거렸다.
“형님... 요즘 저 노숙생활 하고 있어요. 크흐흑~”
“아니 왜? 또 뭔 일이 터진 거야?”
“휴우~ 방송이 나간 후 빚쟁이들이 집으로 몰려들어... 언제 출옥 했냐, 방송 출연하는 유명인이 빚도 안 갚느냐며 아주 안방에 들어 누워있어요. 하필~ 형님이 이때에 방송 출연을 하라 해서... 크흐흑~”
후배는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제길, 잠자코 있을 땐 고맙다고 큰 절을 하더니... 정작 도와주려고 신경 썼는데 욕만 퍼먹게 됐으니...
어쨌든 어둠속에 벨이 울릴 때는 잠자코 잠이나 자는 게 상책인 것 같다. 주접떠는 소리 안 들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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