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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함 속에 있었네. 어떤 행복이....

오소영 0 712 2018.01.3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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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십여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그 옛날 어머니가 해 주었던 호박 칼국수 타령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친구가 있었다. 시대가 변해서 쉽게 먹을수 있는 먹거리들이 수없이 많아졌다. 옛날 칼국수는 손으로 밀어서 했기에 편하게만 사는 세상에 드문 음식이 되어 버렸다. 더구나 여기는 내가 나고 자란 땅도 아닌 낯선 나라가 아닌가.

 

조금만 공들여 하려들면 아주 못할 일은 아니다. 조선 애호박이 없는게 문제였다. 늙어 남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애환을 서글픈 대화로 달래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식품점에서 애호박을 만나게 되었다.

 

“이거 조선호박 맞죠?”

 

비슷한 이 나라 호박에 속았던 일을 떠올리며 당차게 확인을 받았다. 늦긴 했지만 죽은사람 소원도 풀어준다는데 친구의 소원을 들어줄 수가 있게되어 기뻤다.

 

맘먹고 달려드니 까짓 두 사람분 칼국수 한판 밀기는 일도 아니었다. 분식으로 매일의 점심을 해결하던 남편을 위해서 참 많이도 만졌던 밀가루다. 그랬건만 어렸을 때 추억이 먼저 떠올랐다.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선명했다. 

 

대청마루에 넓다랗게 신문지를 펴고 커다란 밀판을 준비하면 부엌에서 정성으로 치대놓은 밀반죽이 나왔다.

 

팔을 걷어부치고 굵직한 밀대로 반죽을 밀어나가는 어머니. 옆에 둘러앉아 재밌어 지켜보던 우리들은 엄마 이마에서부터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흘러내리면 얼른 수건으로 그 땀을 닦아냈다. 힘이들어서 흘리는 땀이라는 생각은 누구도 안 했다. 땀이 반죽으로 떨어지면 못 먹을 것 같아 닦아주었을 뿐이다. 너무나 철이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파랗게 색스러운 애호박 칼국수는 참 맛이 있었다. 땀흘려 밀던 엄마만큼 우리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던게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실 칼국수보다는 얇은 껍질속으로 파아랗게 속이 비치는 애호박 만두를 우리 식구들은 더 좋아했었다. 판장으로 기어오른 호박넝쿨에 소담스러운 꽃이 한가득 피어 웃고 있다. 그 꽃이 지쳐 시들때 꽃 밑으로는 벌써 동그랗게 파란 방울이 맺혀있다. 서로 시샘이라도 하는듯 하루가 다르게 키 자랑으로 자란다.

 

“호박이 한창 이뻐요.” 

 

아버지의 그 말 한마디가 곧 만두를 잡숫겠다는 신호였다. 

 

여름한철만 먹을 수 있는 특미로 그 달작지근하고 담백한 호박만두. 별식으로 만두를 하는 날은 신이나서 밖에 놀다가도 일찍 집으로 들어갔다. 아예 찜솥옆에 쭈구려 앉아서 엄마를 귀찮게도 했던 우리들.

 

한강의 마포나루. 방금 배로 들어온 민어를 사다가 갓 따 온 호박을 넣고 마알갛게 지리로 국을 끓였다. 그 시원한 맛도 맛이려니와 더운여름을 이겨내는 대단한 보양식이었음을 알지도 못하고 먹었다. 지금에 와서야 깨닫는다.

 

그 때는 흔하디 흔한게 호박이어서 이 음식 저 음식 쓰임새가 많았을까?

 

아마도 조상님들이 알아낸 음식궁합의 지헤로움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머리로는 먼 옛날을 더듬어 회상하는데 멸치 육수로만 끓여낸 애호박 칼국수 한 상이 그럴듯이 차려졌다. 

 

친구는 오래 기다렸던 맛의 기대가 컸을 것이다. 나는 정성드린 보람의 한 순간을 멋지게 그리며 뜻깊은(?) 식탁을 마주했다.

 

100%는 물론 아닐테지만 비슷하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마치 합격을 기다리는 수험생의 기분으로 첫술을 드는 친구의 표정을 살폈다. 

 

“고맙긴한데.... 옛 맛은 아니올시다.”

 

나도 동감이었기에 서로 마주보며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바지락 조개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쉽고 안타까워 변명처럼 한마디 던져본 말이었다.

 

친구는 분명 어머니 사랑의 손맛을 그리워 했을 것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가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짠_했다.

 

그 씁쓸했던 기억. 내게 호박은 그 것으로 끝이었다.

 

여기서는 호박농사가 잘 안되는 모양이다. 값도 비싸고 귀한편이다.

 

텃밭에 심은 상추나 부추는 자주 나눠먹지만. 호박은 흔치가 않다. 애호박은 적당한 가치가 있을 때 맞춰 따기가 만만치 않아서일까? 윤끼 자르르 흐르는 씨 생기기 전의 어린 호박. 잠깐사이에 시기를 놓치면 속에 씨가생겨 늙은호박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날인가 우연히 야채가계를 기웃거렸다. 게으른 손님을 반기는 건 오이 한봉지와 호박 한봉지의 떨이였다.

 

야들한 애호박이라면 새우젓에 살큼 볶아서라도 먹지, 늙기 시작해서 그렇게는 못 먹는다니 뭘 해 먹는담. 괜한 걱정꺼리를 사 오면서 후회를 하기도 했다. 며칠을 냉장고에 던져넣고 잊어버리고 살았다.

 

날씨가 꿉꿉하던 어느날 갑자기 국물이 먹고 싶었다. 문득 호박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으로 매콤하게 고추장 찌개를 해보고 싶었다. 대충 멸치 다시마 국물을 만들었다. 호박과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아 새우가루가 있어 조금 넣었다.

 

호박 반허리를 뚝잘라 쑥덕쑥덕 썰어넣고 양파만 몇 쪽 넣었다. 호박에 아직 여물기전의 씨가 생겼던가. 긴가민가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고추장을 넉넉히 넣고 끓을 때 거품 걷어내는 정성이 전부였다. 바글바글 호박이 익을 만큼만 끓였다. 그런데 그 아무렇게나 끓인 찌개가 내가 그리도 찾던 음식이었음에 놀랬다.

 

살큼 익은 호박을 씹어보니 달달한 식감이 칼칼한 고추장 맛에 어우러져 기막히게 입에 당겼다.

변해가는 세월따라 입맛도 변해야 하는데 난 그렇지가 못한 바보였을까? 기름진 먹거리들 속에서 호박찌개에 입맛을 살리다니... 보통때 두 배의 밥이 술술 잘도 넘어갔다.

 

반갑잖게 사 들고 온 사람에게 비아냥으로 복수를 하는 것 같아 주제넘었던 편견을 스스로 나무램 했다. 

 

진정 오랫만에 맛있다는걸 느끼며 개운하게 밥그릇을 비웠다. 뱃속이 꽉 찬 느낌도 처음이다. 구미가 돈다는게 이런거였어.

 

다음날 아침. 나머지 반개를 똑같이 끓여 밥을 비벼먹었다. 여전히 맛이 있었다. 호박이 진짜 맛이 있었나 내 입맛이 돌아온걸까? 어쨌든 반갑고 기뻤다. 나른하게 느껴지는 만족감. 행복이겠지.

 

시시하게 호박찌개에 맛을 붙여 밥먹으며 행복을 느끼다니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속물이다. 임자를 제대로 만나 대박을 친 호박.

 

덤으로 하나 얹어 준 것까지 알뜰하게 물리지도 않고 먹어 치운건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해물탕 맛있다는 식당에서도 호박찌개 맛을 비교했다. 동태찌개 사 먹으면서도 호박찌개가 생각났다. 스스로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이변이다.

 

살기위해 먹는건지 먹기위해 사는 것 인지는 잘 모르겠다. 맛을 즐기는 젊은이들은 한 때 끼니를 해결하려고 비행기로 유명한 맛집을 찾아 나선다는 세상이기도 하다. 삶의 본능 중에 으뜸인 먹는 일. 맛있게 먹고 살 수 있다면 인생 늙어감도 조금은 덜 힘들텐데...

 

나이 먹어가면서 음식의 제 맛을 알고 먹을 수 있다면 분명 축복받은 사람이다. 밥솥에서 나오는 밥냄새가 제법 구수하다. 음식의 진맛이 제대로 느껴지는걸 깨닫는다.

 

들풀 하나도 다 약이라는데 호박으로 고친 내 병명은 무엇이었을까?

 

요즘 먹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기분이 너무 좋다.

 

해도 바뀌어서 새해의 첫 달이다.

 

금년 무술년에는 뭔가 또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부푼 기대감도 생긴다. 잘 먹어 생기는 새로운 활력이랄까.

 

애호박도 아닌것이 중늙은 호박이 정초에 이렇게 기분을 띄어줄 줄은 정말 몰랐다.

 

호박아! 너를 사랑한다. 고마워... 돌아온 내 입맛 만만세...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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