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으로 되살아난 추억 속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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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으로 되살아난 추억 속 캐릭터

0 개 1,586 빡늘

 ♣ 본 칼럼은 이 글이 다루는 게임의 주요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누설하는 내용을 포함하므로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에겐 일독을 권하지 않습니다 ♣

 

■ 벤디와 잉크 기계 

빡늘의 게임 잡담소 (20)

사람마다 공포를 느끼는 지점은 다르다. 유혈이 낭자하거나 갑자기 튀어나오는 귀신 등, 보편적인 호러의 기준은 있을지언정 모두가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선은 다르다는 뜻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아마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두려움은 익숙하고 친근하던 존재의 상실, 혹은 변이일 것이다. 그것도 기존의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정반대로 뒤틀린. 말로만 설명해서는 이해가 어렵겠다면, 다음 게임을 예시로 들어보고 싶다.

 

2017년 초에 ‘TheMeatly Games’가 제작, 발표한 인디 호러 게임 <벤디와 잉크기계(Bendy And The Ink Machine)>.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20~30년대 막 등장했던 디즈니의 초창기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고전적인 그래픽이다. 

 

소위 ‘레 트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쉽게 말하자면 미키 마우스나 베티 붑을 떠올리면 되겠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온 대중에게 알려지고 사랑받는 캐릭터들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야말로 이 게임의 히트 원동력 중 하나다.

 

게임은 만화가였던 주인공 ‘헨리’가 30년만에 예전의 작업장, 만화 스튜디오를 방문하며 시작된다. 헨리는 친구 ‘조이’와 함께 (디즈니를 연상시키는) 만화들을 만드는 일을 하다가 그만둔지 오래지만, 보여줄 것이 있으니 한 번 작업장에 들러보라는 조이의 편지를 받고 돌아온다. 

 

아기자기하지만 납작한 세피아톤의 배경 속에서 플레이어는 헨리의 1인칭 시점으로 게임을 진행하게 되며, 30년 전 그들이 만들어냈던 캐릭터와 작품, 그리고 그에 얽힌 비화가 긴 세월만에 얼마나 무시무시한 비극을 양산했는지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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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게임 제목의 주인공이기도 한 ‘벤디’인데, 벤디는 바로 조이와 헨리가 함께 만들어냈던 만화의 마스코트 캐릭터다. 흡사 미키 카우스를 연상시키는 앙증맞은 디자인과 항상 웃고 있는 입이 특징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 캐릭터가 (문자 그대로) 악마임을 알 수 있다. 귀엽게 데포르메화된 악마인 벤디는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스튜디오 안에 갇혀 헤매는 헨리를 주시하고 심지어는 조롱하듯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하며,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환에 일조하기도 한다.

 

이 게임이 공포를 연출하는 방식은 오랜 클리셰를 답습하면서도 꽤나 신선한 느낌인데, 소위 말하는‘점프스케어 (jumpscare; 갑자기 튀어나와 놀래키는 것)’를 애용하면서도 그 타이밍을 어찌나 잘 잡았는지 플레이어는 문자 그대로 펄쩍 뛰어오르거나, 두려움에 굳어버려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잡히기가 일쑤다. 

 

앙증맞은 캐릭터, 심지어 등장인물조차 아닌 배경의 포스터나 판넬 따위로만 등장하다가 게임이 절정에 이른 순간 갑자기 살아나서는 주인공을 노리는 괴물이 되어 나타나는 반전은 그 등장 순간의 충격적인 비주얼과 맞물려 획기적이기까지 하다.

 

<벤디와 잉크기계> 는 지난 칼럼에서 소개했던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처럼 챕터로 나뉘어 발매되며, 올해 2월부터 시작해 각각 4월, 9월에 챕터 3까지 나온 상태다. 심플한 2D 와 소름끼치도록 디테일을 살린 3D를 적절히 조화한 그래픽과 직선적이면서도 다시 플레이할 때마다 매번 달라지도록 배치되어 머리를 쓰게 만드는 퍼즐로 제법 인기를 끈 바 있다.

 

‘에이, 그래도 게임 따위가 얼마나 무섭겠어?’싶다면, 한 번 미키 마우스를 상상해보라. 우리가 익히 아는 모습의 유쾌한 카툰 쥐가, 그러나 그 손에는 식칼을 들고 혹자를 미친듯이 추격하는 장면을. <벤디와 잉크기계>가 던져주는 이미지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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