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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이 참 멋진 임금이었더군요. 홍길동전의 허균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있었는데, 마지막 회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허균이 역모를 꾀해서 광해군한테 반기를 들었잖아요. 그런데 광해군이 허균을 그렇게 사랑했었을 수가 없어요. 신하이자 스승이자, 사람이 워낙 똑똑하니까 그렇게 마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없어도 너만 끝까지 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까지 얘기를 했는데 역모를 꾀한 겁니다. 광해군이 허균을 만나서 그래요. 이제라도 마음을 돌릴 수 없겠는가, 네가 잘못했다고 하고 이제라도 나를 보필해주면 너의 죄를 안 묻겠다. 그러는데도 동지들을 배반할 수 없다고, 나는 내 길을 가겠다고 허균이 그러더군요.
십몇 년을,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라고 그래서 같이 공부도 배우고, 왕의 선생 노릇도 하고 그랬던 모양이에요. 광해군이 그렇게 애통해 하면서 이제라도 마음을 돌릴 수 없겠느냐, 자네를 믿었는데 마음을 못 얻어서 자기는 헛 살았다고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 허균이 능지처참을 당해 죽습니다. 옛날에 반역한 사람은 저잣거리에서 말에 매달아서 각자 끌게 해서 죽게 했잖아요. 삼족을 멸해서 후손이 없죠.
광해군이 애통해 하는데, 왕으로써 저렇게까지 할까 했습니다. 그 마음 돌이켜 달라고 이제라도 용서해주겠다고 그러는데도 끝끝내 안 들어요. 너만 아니라고 하면 나는 네 말을 믿겠다고 이러는데…… 작가가 그리기도 잘 그렸더군요.
그 광해군이 왕위를 물러나서 반대파에 의해 강진인가 하는 데로 유배를 갔습니다. 초가집에 방이 아래위로 딱 두 개 있었는데 감시하는 사람이 아랫방을 썼다는군요.
그러면서 반말하고 부려먹고 그랬는데 거기서 17년을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야사를 보니까 광해군이 그렇게 여여했다더군요. 다른 사람 같으면 울화통 터져서 제 명에 못 죽을 텐데, 게다가 불도 안 들어오는 냉 골에서, 그런 모욕을 당하면서 거기서 17년을 유유자적하면서 살았다는 거예요.
그 사실만 가지고도 ‘아, 이분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했습니다. 그럴 수 있어야 되거든요. 왕일 때 왕이고 유배당했으면 유배당한 거지, 자꾸 옛날 그리워하면 뭐합니까. 참 괜찮은 왕이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