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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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Ⅰ)

0 개 3,680 박지원

N과 함께 밥을 먹는데, N이 요즘 따라 자꾸 볼살을 씹는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양치를 하러 갔었던 N이 달려와 플래시를 켠 핸드폰을 건냈다. 사랑니가 났다고 했다. 동굴 같은 입 속에 불빛을 비추어보니, 정말 쌀알처럼 하얀 것이 잇몸의 절벽 저편에 하얗게 붙어있었다. 사랑니라니. 이빨이 워낙 곧게 나서 사랑니 4개 모두 곧게 난 행운을 가진 나로서는 그 존재조차 모르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운 곳의 입 속에서는 식물처럼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상의 끝에 N은 결국 사랑니를 그냥 가지고 살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자꾸 빼라고 해서 우선 치과에 가보기로 했다. 뉴질랜드에서는(나 같은 경우 평생을 통틀어) 첫 치과출입이었다. 

 

치과는 아주 한적한 스트리트 위에 네모반듯하게 위치해 있었다. 치아를 형상화해놓은 마크가 새겨진 입간판이 하얗게 세워져있었지만, 우리는 치과 주변이 하도 조용해서 망한 줄 알았다. 신발을 털고 들어오라고 적힌 A4용지가 붙어있는 유리문 두 개를 지나쳤다. 시간이 적혀있지 않은 구슬벽시계가 커다랗게 붙어있었고, 네모난 검은 소파를 두르는 완벽한 네 개의 변이 네모난 벽들과 완벽한 평행을 이루고 있었다. 네모난 벽들의 윗쪽으로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직사각형의 고정형 유리창이 뚫려있었다. 하늘이 파랗다. 가장자리를 몰딩처리 한 하얀색 천장 여섯개의 유리 매입등이 역시 네모난 별자리처럼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바닥은 검은 카펫으로 되어있었고, 조그만 가판대에는 dental journal, keep your smile looking good for life 등등의 치아관련 잡지들이 가지런하게 꽂혀있었다. 그 오른편으로 리셉션 데스크가 있었고, 데스크의 한 가운데에는 하얀색 LED 발광판을 몇 개의 선을 설치함으로서 나름의 효과를 주고 있었다. 한 마디로, 하얀 곳이었고, 미니멀한 디자인의 공간이었다. 인테리어의 중요성의 표본같은 치과 디자인이었다. 다른 치과는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무튼 치과의 이미지가 간단하게 잡혀서 좋았다. 선 몇 개로 그려낼 수 있는 깔끔한 느낌. 수술도 깔끔할 법한 느낌.

 

리셉션 데스크의 간호사에게 예약일정을 잡고, 다음 날 다시 찾아간 치과. 예약시간보다 조금 일찍 갔던 탓에 우리는 나란히 의자에 앉아 치과용어를 공부했다. numb, decay, crown fit 따위의.. 우리는 배울 이빨들이 아직 많았다. 그리고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surgery 2 라고 적혀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치과의사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인도인이었고, 조금씩 난 흰 머리 덕에 제법 베테랑처럼 보였다.(아마도 베테랑일 것이다) N의 입을 잠깐 들여다보곤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X-Ray를 찍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잠깐 나가있었고, 곧이어 복도 저편에서 X-Ray 불빛이 반짝하고 새어나왔다. 

 

이번에는 Surgery 1 옆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방으로 들어갔다. N과 나는 나란히 앉아 의사의 말을 들었다. 사실 N의 사랑니는 네 개 모두 있었다. 윗쪽의 두 개는 곧게 나 있기 때문에 빼는 것이 어렵지는 않지만, 밑에 것, 특히 지금 쌀알처럼 잇몸 위로 고개를 살짝 내민 오른쪽 아래의 사랑니는 뽑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매복형이라는 것이다. 의사는 손가락으로 사랑니의 뿌리를 가리켰고, 확실히 그것은 윗쪽의 것과는 다르게 굉장히 눕혀진 상태로 자라고 있었다. N의 게으른 사랑니였다. 사랑니가 누워있으면 뽑을 때 잇몸 속 신경을 건드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굉장히 뽑기가 어렵다고 의사는 말을 했다. 그리고, 사랑니가 게으르게 누워있으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의사가 예상하길 1000불 정도 들 것이라고 했다. N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는 저금을 쉬기로 했다.

 

저금을 쉬기로 한 다음 주가 되었다. 한 번에 오른쪽 두 개의 사랑니를 빼기로 했다. 간호사가 손으로 가리킨 Surgery 1으로 우리는 들어갔다. N이 자줏빛 의자 위에 앉았고, 자줏빛 의자 위에 앉은 하얀색 옷의 N이 마치 자기 입 속의 사랑니같다,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 주변으로는 고급스러워보이는 하얀 책상이 ㄱ 모양으로 한 쪽 코너를 차지하고 있었고, 스타워즈의 R2-D2처럼 생긴 기계도 있었고, 이동식 데스크에 달린 터치스크린 형태의 아이보리색 모니터도 있었다. 큰 의료용 스탠드가 N의 입 속을 비추기 위해 둥근 모양의 전구를 머리에 달고 대기 중이었다. 한쪽 벽으로는 창문이 블라인드에 가려진 채 자연광을 은은하게 내뱉고 있었다. 신기한 것 투성이어서 주위를 조금 돌아다녔더니, N이, 좀 앉아있어, 라고 했고, 마침 간호사와 의사가 들어왔기에 나는 구석의 조그만 의자에 앉았다. 

 

의사가 발로 동그란 반원형 풋 버튼을 밟아 N의 자세를 조정했다. N의 상체가 조금 더 눕혀졌다. N 머리 위의 스탠드 조명이 마치 UFO 처럼 켜졌다. 메탈로 감싸진 것으로 보이는 은색 마취주사를 들고 바늘 끝을 물끄러미 보던 의사가 N의 입을 벌린 채 주사바늘을 꽂았다. N이 아픈지 발을 동동거렸다. 의사는 무심히 마취주사를 꺼냈다. 그리고는 바늘 끝을 보는가 싶더니 다시 N의 입 속으로 주사기를 넣었다. 아마 잇몸 속으로 들어간 날카로운 바늘 끝의 아주 조그만 구멍 속에서는 조금의 액체가 조용하고 신속하게 잇몸 속으로 섞여들고 있을 터였다. N이 다시 발을 동동거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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