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킹스턴 히스 골프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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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호주 킹스턴 히스 골프클럽

0 개 4,016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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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160개 ‘위협적’…10번홀, 오거스타 ‘아멘 코너’ 방불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킹스턴 히스 골프클럽을 방문한 것은 2005년 12월이었다. 2004년 월드클럽챔피언십(WCC)우승팀 일원이던 리처드 매카피와 애덤 존 파커라는 이곳 회원의 도움이 컸다.

킹스턴 히스는 멜버른에서 동남쪽으로 45분 거리인 포트 필립 베이에 펼쳐진 65㎢ 샌드 벨트 지역에 위치해 있다. 양질의 점토 성분을 함유한 모래가 많은 샌드 벨트 지형에 ‘히스’라는 식물이 군집해 자연과의 조화가 한층 돋보였다. 히스는 한대와 온대에 걸쳐 모래토양에 잘 자라는 진달랫과 관목을 일컫는데, 특히 벙커 주변에 자연스럽게 자란 히스는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1909년 엘스턴 윅 클럽의 9홀로 시작된 킹스턴 히스는 18홀이 완성돼 플레이를 완성할 무렵에는 호주에서 가장 긴 파72짜리 코스로 운영됐다. 작은 클럽하우스를 만들었지만 1919년 클럽을 다른 장소로 이전키로 하고, 1925년 샌드 벨트 지역으로 옮겨왔다. 챔피언 티 기준으로 7143야드의 파72로 운영됐다. 이후 1926년 당대 최고의 코스 디자이너인 앨리스터 매켄지가 벙커와 15번 홀을 재설계했지만, 1944년 1월 산불로 인해 경관이 심하게 훼손됐다. 그러나 관목을 심어놓아 원상복구가 빨랐고, 그때 심은 나무들이 지금도 있다.

킹스턴 히스의 코스 레이 아웃은 다른 골프장과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1번 홀부터 6번 홀까지 돌면 클럽하우스가 나타나고, 다시 7번과 8번 홀의 남서쪽 코너로 향해 내려가면 9번 홀을 만난다. 여기서 시계 방향으로 돌면 18번 홀이 나타난다. 지형을 절개해 맞추는 형식이 아니라 지형에 맞는 설계를 함으로써 억지로 홀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자연과의 자연스러운 만남에 비유할 수 있다. 또 일반적인 코스 설계에서는 전반과 후반에 파5와 파3 홀이 각각 2개씩, 그리고 파4짜리 10개 홀로 구성하지만 이곳은 파5짜리 3개 홀, 파3짜리 3개 홀, 파4짜리 12개 홀로 구성돼 있다. 이런 설계엔 고정관념을 깨고 지형에 맞는 코스 레이 아웃을 도모하려는 설계가의 철학이 담겨 있다.

킹스턴 히스는 환희와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골퍼들을 진짜 놀라게 만든 것은 코스 안에 있는 160여 개의 벙커다. 보통 100개가 넘는 벙커가 있어도 많다고 한다. 코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벙커들은 골퍼들에게 집중력과 정확한 샷이 왜 필요한지를 일깨워 준다.

세계적인 설계가 톰 도크 역시 굴착기로 찍어낸 듯한 벙커 주변의 자연스러운 모양을 극찬했다. 킹스턴 히스만의 특징이다. 국내에는 경남 남해의 사우스 케이프 골프클럽이나 2015 프레지던츠컵이 열렸던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의 벙커가 이와 비슷하다. 

기억에 남는 건 오른쪽으로 휜 3번 홀(파4·296야드)이다. 비교적 짧은 홀이어서 장타자라면 ‘1온’ 욕심을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린 우측에 5개, 좌측에 2개의 벙커가 도사리고 있어 1온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드라이버 샷이 페어웨이 왼쪽을 벗어나면 무성한 잡초 때문에 골탕을 먹기 일쑤다. 페어웨이 우측으로 보낸다면 턱이 높은 오른쪽 벙커와 그린 뒤쪽 지역까지 기울어진 경사를 계산해야만 세컨드 샷의 온 그린이 가능하다. 

시그너처는 10번 홀(파3·140야드)이다. 그린 앞부분의 길목이 매우 좁고, 게다가 그린을 둘러싼 벙커 탓에 위협적이다. 벙커 사이에 핀을 꽂을 경우 난도는 훨씬 높아진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의 ‘아멘 코너’를 방불케 한다. 

15번 홀(파3·156야드 )은 그린까지 오르막인 데다 그린과 티잉 그라운드 사이가 벙커 벨트로 연결돼 있다. 벙커의 깊이가 1m 이상이기에 방심하면 혼쭐이 난다. 16번 홀(파4·430야드)은 티잉 그라운드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심하게 휘어있다. 1987년 당시 세계랭킹 1위였던 그레그 노먼이 누에처럼 휘어진 페어웨이 우측에 깊은 벙커를 배치한 데 이어, 화살 모양의 그린 가운데에 대형 벙커를 집어넣어 그야말로 생각과 전략의 골프를 유도했다. 킹스턴 히스에는 예비로 ‘19번 홀’을 만들어 놓았다. 갤러리 동선 확보와 개·보수를 위해서다. 

1930년에서 1939년까지 킹스턴 히스는 황금기였다. 1939년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대공황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굳건히 명문의 위치를 고수함으로써 1935년 호주의 ‘베스트 코스’로 선정됐다. 

1938년 호주골프협회로부터 내셔널타이틀 대회와 아마추어 챔피언십 경기를 주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당시 호주에서는 오직 5개 클럽만이 이 자격을 획득했다. 이런 이름값으로 그동안 이곳에서 호주오픈과 호주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빅토리아오픈이 7차례씩 개최됐다. ‘백상어’ 그레그 노먼과 닉 팔도가 가장 좋아했던 골프장이다. 2009년엔 호주 마스터스에서 타이거 우즈가 우승해 더욱 유명해졌다.

클럽하우스는 단조로운 현대식이며, 그래서 실용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킹스턴 히스의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29세가 넘어야 하고, 3명 이상 회원의 추천을 받아야 하며, 6개월 이상의 심사기간을 거쳐야 한다. 주말에는 반드시 회원을 동반해야 하지만 주중에는 인터넷으로도 신청하더라도 라운드할 수 있다. 세계 100대 코스 중 28위에 오른 이름값을 하듯 그린피는 330호주달러(약 27만 원)로 비싼 편이다. 1800여 개 골프장이 있는 ‘골프 천국’ 호주에서 비싸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호주의 골프장 대부분은 이보다 훨씬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2014년 킹스턴 히스는 제주 나인브릿지와 상호 협약서를 체결했다. 제주 나인브릿지 회원들은 예약과 그린피(준회원 대우, 약 80호주달러) 혜택을 받고 있다.

김운용: 호서대 골프학과 교수 겸 세계 100대골프장 선정위원
■ 제공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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