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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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조건

0 개 2,200 박지원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반장이 되었다. 그 때는 반장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학급회의를 주재하고, 선생님이 없을 때 아이들을 조율하고. 그래서 기어코 선거에 나가 지금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유우우머어로 포퓰리즘 연설을 했고, 과반수 이상을 득표하여 반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장이 된다는 것은, 관료제 시스템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배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선생님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에게 틈만 나면 서울대를 강요하는 미친 사람이었다. 미쳐서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어떤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으면 나도 같이 혼나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반 전체의 책임자로서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주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음악시간에 오르간을 준비해놓지 않으면 그것도 반장인 나의 책임이었다. 그 책임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진 것은 반장이 된 지 한 달도 채 안 되서였을 것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중에, 학급회의를 주재하는 광경이 있다. 이 달의 표어를 결정하는 것이었고, 그 달에는 이 달의 표어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불조심 하자” 뭐 이런 것이었을 텐데, 너무도 실용적이지 못한 표어에 나는 부반장과 의견대립을 했던 일이 있었다. 불조심을 뭐 어떻게 하자고? 눈 가리고 아웅, 알맹이 없이 껍질만 만들어 놓는 그런 관료제의 폐해를 조금씩 알아가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후의 반장생활은 정말 이름만 반장이었다. 흥미를 잃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선생님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부반장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더 속 편했다. 그 이후로 나는 “리더”는 절대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고, 대학에 들어가서 갑자기 단편영화감독이라는 것을 하기 전까지 내 인생에서 리더는 없었다. 

시나리오 전공으로 들어갔다가 우연찮게 연출 전공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스태프 10명 정도의 소규모 영화는 괜찮았다. 하지만 40명이 넘어가는 스태프를 꾸리게 되었을 때, 한 번은 선배에게 혼난 적이 있었다. 영화 현장에는 “감독 의자”라는 것이 있는데, 거기에 내가 막내 스태프를 앉혔다는 이유에서였다. 감독의 권위랄까,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현장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들은 어찌되었든 잘 나왔다.

리더에 어울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를 생각해보면, 일단 나는 리더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권위적인 것을 혐오하며, 기본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일을 잘 못하면, 내가 대신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직급이 위이든 아래든 일을 잘 못하는 사람에게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도움을 주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일이 훨씬 유동적으로 잘 굴러가리라 믿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상식적이고 이상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직급 아래 사람들에게 살갑게 군다거나 도움을 주면 스스로의 권위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요상한 부류들도 있다.
 
흔히들 말하는 “정상적인 리더”는 이런 것이다. 관습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위를 거부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항상 책임자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되, 위험한 순간이 오면 책임을 회피해야 한다. 부하직원의 제안은 “언어”가 아니며, 상관의 제안은 명령으로 들어야 한다. 까라면 까야한다며, 타성에 젖어있어야 하며, 자신은 인간이 아닌 수단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자신의 몸이 조금 고되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를 지양하고 형식이라는 전시를 우선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말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해서 이해하는 창의성은 필수이다. 이타심과 공정심이란 개나 줘야하고, 냉철한 억지와 논리없는 비논리를 자신만의 “리더적 감각”으로 펼쳐낼 수 있어야 한다. 그 곳에 부하직원이나, 공론 혹은 여론, 토론 따위는 없다. 이것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말하고, 행하고 있는- “리더”이다.  다 적고보니 누구말마따나 “혼이 비정상”이 될 것만 같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리더”란 간단하다. 권위를 내세우지 말 것. 항상 대화를 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할 것. 문제에 봉착했을 때 책임자를 찾아내거나 추궁할 것이 아니라 즉각 해결방법부터 찾아낼 것.

공감이 결여된 권위를 내세우며 오로지 자신만의 논지로 그룹을 이끌어가는 리더는- 처음에는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절대 앞을 볼 수 없다. 돌아보면, 이미 쓴소리를 하는 자들은 떠났거나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있는 상황에 놓여질 것이다. 그보다는, 논리적인 대화와 상식적인 실행을 우선에 두면, 모두가 납득하지는 못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리더”라는 것을 “당연히” 인정하게 된다. 리더로서의 가지고 싶은 모두의 인정과 존재감은 강압적 권위가 아닌 장기적 대화에서 발생한다. 혼자서는 리더가 될 수 없다. 적어도 상식적인 스태프들을 가지고 있는 리더라면, 굳이 본인이 리더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씬(scene) 에서 모두로 하여금 “표현이 된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꼭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리더가 존재한다. 이러한 리더들은 보통 자부심과 자존심은 있지만 자존감은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터지면 해결보다는 타인에게 의존하여 본인의 감정해소부터 우선시하며,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그런 소모적인 감정 협상보다는 문제 해결 그리고 재발방지의 방안부터 신속하게 정리하는 것이 당연히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요건 좀 교과서적이다. 하지만 알아도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어찌되었든, 관료제 시스템에서 나는 리더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이상적인 리더” 보다는 “정상적인 리더”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귀를 막고 입을 막고 있다.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인지, 정말 몰라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굳이 정책을 펼치지 않아도 우민들이 너무나 많다. 차라리 초등학교 4학년 때와 달라진 게 없다고 하겠다. 나나 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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