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곤 한다. 정확히는, 혼자라는 것에 대해서.
다소 포괄적이고 설명하기 힘든 생각이긴 하지만 기본 개요는 그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결국에는 - 궁극적으로 - 혼자라는 것. 특히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난 혼자다’라고 느낄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왜냐하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란 게 아니다.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고, 이기적인 것도 맞겠지만) 그렇기에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완벽한 인지는 가능하지만 이해는 불가능하고, 그래서 사람은 종국엔 아무리 가까워지더라도, 피를 나누고 한평생을 같이 산 사람이라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몸부림치거나 슬퍼해도 피할 수 없는, 마치 죽음처럼. 그리고 죽음처럼, 그건 슬프지만 슬퍼할 만한 가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힘으론 어떻게 할 수도 없는, 필수불가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실이니.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귀고, 친하게 지내고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것을. 그것이 단순한 이사나 전학을 통한 이별이던, 혹은 일생을 함께 했지만 죽음이란 강제적인 엔딩 때문에 헤어지는 것이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무조건 마침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것 또한 안타까워 할 일은 못 된다는 것도 조금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저, 너무나 빈번한 일이기 때문이다. 감정의 발생과 소모, 그리고 차차 흐려지는 것은. 그게 상대가 먼저이든 내가 먼저이든 간에, 애정은 어지간한 경우를 제외하곤 수평적일 수 없다. 그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관계가 오래 가는 비결이겠지만, 그 균형을 맞추기는 어렵다. 당연한 말이긴 해도.
처음에, 지금보다 더 어렸던 나는 그것을 잘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일방적으로 식어가는 관계에 귀찮아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다. 내 경우엔 그 감정의 균형이란 것이 지독히도 잡기 힘들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때론 너무 강하게 사랑했지만 때론 지나치게 덤덤했다. 모든 걸 주려고 하는가 하면 아무 것도 받고 싶지 않아했고, 끔찍이 아꼈지만 귀찮을까봐, 혹시라도 부담스러워할까봐 스스로의 감정을 목 졸라버렸다. 가끔은 너무 강하게 졸라서 내 안의 타인을 향한 애정이 자멸해버릴 때도 있었다. 그만큼 난 관계에서조차 (쓸데없이) 완벽주의적이고 양자택일이었다. 모든 걸 주거나, 아니면 티끌만큼도 관심이 없거나.
워낙 그런 이율배반적인 성격 탓인지, 나는 종종 혼자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법을 배웠기에 외로워도 그것이 처연하거나 괴롭진 않다. 예전엔 외로운 게 무척이나 괴로웠는데. 이것도 나의 ‘어른이 되는 법’이라고 해도 좋은 것일까. 오랫동안 혼자였던 사람은 연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더더욱 힘들어지지만, 그 대신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 당연한 말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거기에다 내향적이기까지 한 성향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려도 오래 어울리지 못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타인과의 교류는 바로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다. 거실이나 방에 모여서 각자 조용히 할 일을 하는 것, 그러다가 이따금씩 대화를 하거나 하는 것. 그 정도로도 충분하고, 차분하고 평화롭다. 시끄럽게 떠들고 노는 것도 좋지만 그러면 에너지가 금방 닳아버리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까칠하고 날카로워진다. 그렇게 되면 혼자서 충전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면 때문에 섭섭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만큼은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다. 나는 당신들보다 좀 더 고독할 뿐이고, 그래서 고독을 즐기며 살아가는 법을 깨우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사람과 있는 것을 좀 더 못 견디게 된 것 뿐이니까.
사람은 고독해도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