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이 사는 지상은 시집을 의미하고 하늘나라는 선녀가 살던 친정을 의미한다. 선녀가 지상에서 아이를 얼마나 낳든 늘 하늘나라를 그리워하는 심정은 어쩌면 당연하다. 특히 자신의 날개옷을 빼앗긴 가장 취약하고 무방비한 상태에서 나무꾼의 아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선녀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그리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한 선녀를 날개옷으로 꼭꼭 붙잡고 있는 나무꾼은 어쩌면 조금 치사하고 야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선녀 역시 하늘나라로 상징되는 과거의 자신 또는 친정만 계속 그리워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좀 더 성숙한 자세로 자신이 선택한 남편을 인정하고 과거에 대한 그리움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직시하여 결혼생활을 책임지고 영위해 나갈 필요가 있다. 계속 과거만을 그리워하고 하늘나라로 도망칠 기회만 엿보는 것은 결혼한 여인으로서 성숙한 자세가 아니다.
그래서 나무꾼이 하늘나라로 올라왔을 때 그를 반갑게 맞이하고 온전히 그의 편이 되어 도와준 선녀의 마음과 행동은 매우 바람직하다. 이는 나무꾼이 선녀를 그리워하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직접 선녀를 찾아 나선 용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처자식과의 만남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고부 갈등에 대한 문제와 해결책은 ‘수탉유래형’ 또는 ‘지상회귀형’의 옛이야기를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통 ‘수탉유래형’ 또는 ‘지상회귀형’ 이야기는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나무꾼이 땅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여 내려왔다가 선녀의 금기를 어겨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죽어 수탉이 된 후 매일 아내를 그리워하며 운다는 이야기이다. 이때의 금기는 천마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간 나무꾼이 발을 땅에 디뎌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대부분 어머니가 권하는 호박죽이나 박국 또는 떡국을 먹다가 너무 뜨거워 쏟는 바람에 천마가 놀라 나무꾼을 떨어뜨리고 혼자 하늘로 올라간다는 내용이다.
어머니가 붙잡을 때 아들은 이제 과거의 어머니 편이 아닌 현재의 아내 편이어야 한다. 이미 결혼은 독립을 뜻하고 아들은 아내와 자식을 책임질 막중한 위치에 놓여 있다. 나무꾼이 발 디디는 땅은 흔히 대지를 어머니로 여기듯이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머니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땅은 아주 좁은 범위의 땅으로 그저 나무꾼이 발을 디디는 바로 그 곳일 뿐이다. 그가 더 넓은 땅을 밟기 위해서는 어머니로 상징되는 그 좁은 땅을 밟아서는 안 된다. 어머니는 이미 현재가 아닌 과거이며 이제는 현재의 아내에게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어머니가 주는 음식은 보통 호박죽, 박국, 떡국 등인데 이는 모두 준비하는 데 시간과 노고를 많이 필요로 하는 음식들이다. 이 음식들의 상징은 어머니가 아들을 정성스레 키우고 거두었으며 오랫동안 곁에 두고자 하는 욕망이 담겨 있다. 그러할 때 아들이 어머니를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하는 것 역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꼭 효도라는 이름을 걸지 않더라도 매정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나 아들은 그러한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이제는 벗어나야만 한다. 효도라는 명목 하에 어머니에게 의지하여 그 음식을 받아먹고 있을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아내와 자식을 책임지는 아버지로서 우뚝 서야 하는 것이다. 짐승들이 자식을 낳은 후 때가 되면 멀리 쫓아내 독립시키는 것처럼 어머니와 아들은 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독립적으로 설 필요가 있다. 그때 아들의 선택은 어머니보다는 아내를 우선순위로 두어야 한다. 이제 우선순위는 과거인 어머니가 아니라 현재의 선녀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