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존재를 너무 드러내는 것은 사실 사랑이 아닙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해주는 게 사랑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는 게 사랑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참견하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잘 와 닿지 않으실 텐데요. 어느 정도의 차원이냐 하면, ‘같은 하늘아래 숨 쉬고 있는 것만도 너무 고맙다’라고 생각하는 게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말을 안 해도 자연스레 상대방에게 전달이 됩니다.
뭘 요구하는 게 없는 거예요. 그냥 ‘살아있고, 같은 공기 마시며 숨 쉬고 있는 것만도 너무 고맙다’이런 마음. 다 아시게 되시겠죠? 그게 사랑입니다.
보고 싶다고, 같이 있자고 보채지도 않죠. 같이 숨 쉬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요구할 게 뭐가 있나요? 참 밋밋하기 짝이 없는 거지만, 그게 진짜 사랑입니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게 그냥 덤덤해집니다. 동물적인 차원에서 인간적인 차원으로 넘어오는 것입니다.
점점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진짜 걱정해주고 울어줄 수 있는 마음이 됩니다. 내가 아무리 진심으로 누구를 사랑한다고 해도 사람은 굉장히 이기적이어서, 나한테 손해를 끼치면 탁 돌아섭니다. 그러다가 점점 그냥 있어주는 것만도 고마워지는 그런 단계가 됩니다. 사랑의 방식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만 사랑인 줄 알았는데, 다른 방식으로 사랑할 줄 알아갑니다.
참 폐쇄적으로 살아가다가, 이곳에 오셔서 명상을 하시면서 비로소 발을 빼고 나와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 사는 것도 바라보게 되십니다. 눈을 넓게 가지고 바라보면 되는데, 자기 가정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점점 아이들도 ‘내 아이’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서 보이게 됩니다. 내 아이를 보는 눈이나 다른 아이나 보는 눈이 같아져요. 다 내 아이입니다. 그런데 ‘내꺼’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바라보아지는 겁니다. 내 새끼, 내 핏줄, 이렇게 보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편애가 없어지고 다 인간으로서 혜택을 누리고 사랑을 받고, 두루두루 그런 마음이 생깁니다. 내 아이만 예뻐하는 게 사랑이 아니고, 남의 아이한테 잘해 줌으로써 내 아이한테도 잘해주는 것이 됩니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베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누군가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항상 주고받는 사람은 일정치가 않아요. 나는 저 사람한테 주었는데 받는 건 이 사람한테 받고, 내 아이들에게 직접 사랑을 주지 않아도 내가 다른 곳에 사랑을 주면 그 아이들이 다른 곳에서 사랑을 받게 되는 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