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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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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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칼럼의 주제는 좀 거시기 하다.  
겨울방학 철이 되면 한국의 비뇨기과에는 포경수술을 위한 상담전화가 쇄도한다고 한다.  포경수술은 넓은 의미에서 할례라고도 불리는데, 종교적 또는 문화적인 이유로 남성 음경의 귀두를 싸고 있는 포피를 제거해 귀두를 강제로 노출시키는 수술을 말한다.  고래를 잡는다는 뜻의 포경(捕鯨)과 포경(包莖)수술의 발음이 같은지라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포경수술을 받는 것을 고래 잡는다 라고 표현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유년시기를 보낸 이민 일 세대나 1.5세대에게는 포경수술은 당연히 때가 되면 하는 통과의례처럼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런데, 해외 즉 뉴질랜드에 나와서 살다 보니 여기 사람들도 포경 수술을 하나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2002년 한 의학 논문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86.3%가 포경수술을 받았다고 하는데 뉴질랜드는 대략 10%의 남성이 포경수술을 받은 것으로 예측 된다고 한다.

포경수술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4000년 이집트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수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유대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남자아이에게 포경수술을 받게 한다고 하는데, 성경/성서의 창세기 17장 9~14절에 의하면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남자는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을 약속 시킨 것으로 되어있고, 유대인들은 이 전통을 이어왔다고 한다.  유대교와 달리 이슬람교에서는 코란에서 포경수술의 근거를 찾을 수가 없지만, 모하메드가 자신의 아들에게 포경수술을 시키며 모든 이슬람교 신자에게 똑같이 행할 것을 권한 것이 이어져 내려와 대부분의 이슬람 교도가 따르고 있다고 한다.

2012년 독일에서 포경수술이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게끔 한 사건이 있었다.  사건을 간략히 요약하면 길거리를 걷던 한 행인이 한 아이와 아이의 어머니를 보게 된다.  이 아이는 사타구니 부근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행인은 아이의 어머니와 대화를 시도하였지만 아이의 어머니는 독일어를 하지 못하였고 혼란스러워 보였다고 한다.  결국 행인은 구급차를 불렀고 응급실에서 아이를 진찰한 의사는 이 아이가 집에서 강제로 할례를 받은 것으로 판단하여 경찰을 부르게 된다.  나중에 경찰 조사에 의해 밝혀진 바로는 이 아이가 부모의 동의 하에 의사로부터 포경수술을 받았고, 의사는 수술용 메스와 마취를 통하여 적절히 시술을 했고, 수술한 자리를 네 바늘이나 꿰매는 등 적절한 사후 치료 또한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 검찰은 포경수술을 집도한 의사를 기소하였고, 독일 법원은 포경수술은 아이에 대한 정당하지 않은 폭행이고, 시술에 대한 부모의 사전 동의가 있었다고 하여도 부모가 아이를 특정 종교의 양육방식을 따를 권한이, 아이가 자신의 신체를 온전히 보전하고자 하는 권한을 침해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의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 의사는 포경시술이 불법인줄 몰랐다는 방어 논리로 결국 무죄 확정을 받긴 했지만, 포경수술의 시술이 폭행죄로 성립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온 점에 대해 독일 자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뉴질랜드는 현재 여성의 할례는 형법(Crimes Act 1961)상 불법행위로서 7년 이하의 금고형으로 처벌될 수 있다.  남성의 할례, 즉 포경 수술은 형법상 불법행위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포경수술이 합법이라는 조항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뉴질랜드가 적잖이 영향을 받는 영국의 경우를 보면 법개정 위원회(law commission)가 포경수술은 영국 불문법에 의해 합법이라는 취지의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고, 적어도 두 건의 판례에서 아이의 부모가 모두 동의한다면 포경수술은 합법이라는 취지의 판결이 내려진바 있다.

하지만 부모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즉, 한 부모는 아이의 포경 수술을 찬성하지만 다른 부모가 반대한다면 그 때도 포경수술은 합법일까?  2007년 웰링턴에서 이 문제로 한 아이의 부모가 법정에 섰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이 포경수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어머니는 이를 반대를 하였는데, 법원은 두 부모가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면 포경수술은 아이가 커서 직접 자신이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 보류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고래사냥은 고래를 잡을 본인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게 맞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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