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는 뮤직비디오를 한 편 찍었다. 그 때 촬영을 맡긴 한 인도네시아 아저씨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덕분에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인도네시아 역사에 호기심이 생겨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수하르토라는 독재자를 알게 되었다.
수하르토는 1965년 공산당의 쿠데타를 진압한 후 50-100만명에 이르는 좌파와 반대세력 등을 숙청시킨 후 언론통제 정책과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의 몸집을 키워 1968년에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집권한 인간이다. 그 후 1998년까지 30년간 권력을 놓지 않은 수하르토는, 현재는 부패통치의 독재자, 혹은 경제발전을 일궈낸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
집권 이후 수하르토는 독재통치의 정당성을 위해 경제발전에 집중한다. 그 결과 1966년 630%의 인플레이션은 1972년에는 9%대로 떨어졌고, 태국 등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5대 호랑이로 불리며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어갔다. 그리고 1997년 들이닥친 외환위기, 그에 따른 유혈 시위와 함께 실각했다.
압축성장의 이면에는 당연히 부정부패가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도 진상규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까지 수하르토의 3남 3녀 자식들은 모두 여전히 막강한 경제권력을 쥐고 있으며, 언론, 그를 추종하는 정당 등이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08년 수하르토의 사망 이후- 그가 동티모르 침공, 시위에 대한 무력진압 등 집권기간 내내 살인과 처형을 일삼은 독재자였음에도 몇몇 국민들은 여전히 그리워한다.
엄청난 규모의 개인재산 은닉 혐의, 인도네시아 부패인식지수 143위, 현재의 치솟는 생필품 가격 등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현재까지도 제대로 된 국정운영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한다. 그것은 아직도 수하르토와 그의 자녀들. 그리고 그 자녀들의 녹을 먹고 사는 기생충 같은 관료들이 장악해 놓은 우민의 터전탓일 것이다. 우민의 터전이 묻지마 향수를 만들어내고, 우민들은 그저 과거의 빛만 보며 살아가는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압축성장의 이면에는 어디를 가나 정의로운 피가 있고, 더러운 비리들이 있으며,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있다.
그리고 그를 추종했던 세력들은 쉽게 죽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겪어야만 했지만 지나치고 갔었던 수많은 과도기의 시간이 온다.
이 과도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에 대한 혼란이 “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 필요치 않은 “과한” 혼란은 당연히 독재자를 추종했던 세력들과, 독재자가 남기고 간 흔적들이 만들어낸다.
뭐, 혼란이고 뭐고, 그건 그렇고 나는 모르는 것이 참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정확히 아는 것이 있다.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은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고,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면 당연히 그에 적합한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거대한 집에 거주하는 어떤 이는 자신의 전 재산이 29만원이라 주장한다.
쿠데타를 쿠데타라 부르면 빨 갱이로 낙인을 찍으며, 자신들의 권력수호를 위해 국가정보활동을 집행하는 집단을 키보드 워리어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일당 5억원을 받으며 일하러 귀국했던 사람이 있었고 그를 비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은 죄를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누가봐도 명백한 죄를 비호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 명백한 죄 앞에 눈을 감아버리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겠냐며 상대방에게 눈을 부라린다. 이 모두가 사실 나는 70년대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그 시절을 지나 결과만능주의가 이미 버릇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집단적 최면증상이다. 모두가 서로를 경계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이 효과적인 안식을 가져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결국 그들은 모두, 정상적인 절차의 학살자- 수하르토들인 것이다. 수하르토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혼란을 만들어내는 또다른 수하르토들인 것이다. 실은 전혀 혼란할 것이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