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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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한국에서

0 개 1,757 박건호
2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부산스럽지만 깔끔한, 이용자의 동선을 최대한 고려하여 만든 회색빛의 거대한 이동체. 사람들은 세포처럼 꿈틀거리며 각자의 짐을 쥐고 이동을 하고 있었고, 나는 꽤 얇은 옷을 입은 채 바스락거리며 흩어지는 겨울의 입 김을 한 움큼씩 내뿜으며 버스를 타려고 공항의 문을 열었다.

3주 간의 긴 휴가. 공항 문을 나선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미래에 놓여질 과거들이 퍽 3인칭스레 내 곁에 머물다가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이러한 것이다. 뉴질랜드에서는 펭귄이 날 수 있느니 못 나느니로 대화를 나누고, 가끔 밀리 터리 무늬의 캡 모자를 쓰고 다니면 사람들이 웃으며 거수경례를 한다. 나는 쓸데없이 거만한 한국의 예비역답게 거수경례를 받아주곤 했었다. 한국에 와서는 마치 이등병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쏟아지는 인공의 불빛들을 헤매고 다녔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어느덧 퇴역장교처럼 피곤한 표정으로 돈에 관해 수런수런 이야기를 나누고, 전쟁이라도 끝난냥 해가 지면 술을 들이키며 내게 자신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헐떡이며 털어놓았다. 나는 이등병처럼, 꾸역꾸역 고개를 끄덕이며 꾸역꾸역 안주(2년 동안 이게 제일 그리웠다)를 입에 쑤셔넣었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 곤혹스러웠다. 친구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때- 모두가 꽉 막힌 호리병 구간 위에 서 있는 차량들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질문하는 뉴질랜드의 생활에 대해서 내가 대답을 하면, 그들은 자신들을 뒤로 내쳐둔 채 갓길 위를 질주하는 어떤 차량을 보는 표정을 짓는 것이다. 갓길로 차량을 움직이기 위해선, 법을 떠나 용기가 필요하다. 일부는 내게 갓길로 이동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기도 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거리로 나갔다. 뉴질랜드에 있는 동안은 늘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내가 예전에 그 거리로 다시 가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 때 가지고 있던 가치들이 변하지 않은 채로 그 거리에 그대로 서 있을까. 내가 거리에게서 위로를 얻어내는 기분이 들까, 혹은 내가 거리를 위로하는 기분이 들까. 찬바람 속 파란 햇빛을 걸어가며 이른 거리 속은, 다가가면 사라지지만 뺨에 촉촉한 땀방울로 맺히는 새벽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자면, 물건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것이었다. 사람도 많고, 물건들도 많았다. 뉴질랜드에서 입고 다니는 옷을 입고 면도도 안한 채 돌아다녔더니 사람들이 나를 물건보듯 쳐다보았다. 명품에 제일 관심이 없는 나라에서 명품수요가 제일 높은 나라로 왔더 니 명품 그 자체는 온데간데없고 시선을 의식한 소비들만이 분수처럼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분출하는 분수 속에서 수많은 이웃의 시선들이 정신없이 이웃들을 과하게 사랑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광고들, 거북한 안도와 우아한 좌절들, 소비를 위시한 시선들이 거대한 정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 속의 이방인은 코를 훌쩍거리며 자기만족의 푸른 수염을 쓰다듬고, 한 손으로는 타인의 가치를 자신의 방에 차곡차곡 죽여내고 있었다.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편협한 것은 좋지 않다.

그 거리에서, “생각이 다른 것”이라고, 이제는 그렇게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수없이 제제했다. 알고는 있지만 잊기도 쉬운, 삶의 여유와 다짐들. 내가 마주보아야 할 것은 비난이 아니라 생각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가 내가 앞으로 해야 할 몫의 전부다. 작은 일들, 작은 몫들이 삶을 이룬다. 작은 일들과 작은 몫들은, 작지만 적지는 않은 채로 우리를 지나간다. 결국 그 중에서 무엇을 잡을지, 무엇을 볼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간들. 삶은, 그 작은 시간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비록 갓길인생이라 할지라도.

화이

댓글 0 | 조회 2,317 | 2014.02.25
영화 <화이>. 다섯 명의 아빠 중 한 명인 석태가 아들 화이에게 말한다.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이 되거라. 괴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믿음은 순수성의 증… 더보기

서바이벌

댓글 0 | 조회 1,716 | 2014.02.12
지금은 묻혀버렸지만, 작년 11월쯤 한국의 엠넷에서 작곡가 서바이벌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다. 티비를 안 보아서 홍보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4회 만에 … 더보기

현재 한국에서

댓글 0 | 조회 1,758 | 2014.01.30
2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부산스럽지만 깔끔한, 이용자의 동선을 최대한 고려하여 만든 회색빛의 거대한 이동체. 사람들은 세포처럼 … 더보기

모자이크(Ⅲ)

댓글 0 | 조회 1,811 | 2013.12.24
호텔의 방. 창가 태양의 광선이 대기를 통과하고, 산란된 빛의 파장은 곧게 흩어져 호텔의 창가에 곱게 내려앉아있다. 먼지들이 빛의 언저리를 떠돌고, 창틀에 반쯤 … 더보기

모자이크(Ⅱ)

댓글 0 | 조회 1,225 | 2013.11.27
호텔 앞의 해변 아침에 일어나 담배 연기같은 차가운 태양이 빛나는 바다를 보았다. 빨간 투명함이 내리쬐는 백사장엔 무덤 하나가 있었고 그 위의 크림빛 소녀는 고개… 더보기

모자이크(Ⅰ)

댓글 0 | 조회 1,248 | 2013.11.12
호텔의 1층 아무도 없는 호텔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20세기 초의 미국. 시간에 엑스레이를 찍는 직업이 있었다. 소들과, 알 수 없는 짐승의 먼지 쌓인 뼈들을 … 더보기

지느러미

댓글 0 | 조회 1,449 | 2013.10.22
1. 나는 몇몇 여자들에게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야한다. 허세, 조작, 이기가 엉켜서 나 스스로도 통제 못하던 때가 있었다. 나를 연출하는 것은 나의 처세가 되었었… 더보기

피곤한 고양이

댓글 0 | 조회 1,695 | 2013.10.08
영화학과 출신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대학시절, 학과 공부는 잘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영화와 관련된 종합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편협하긴 해도- 나름대로 공부… 더보기

칼럼

댓글 0 | 조회 1,703 | 2013.09.24
칼럼. 칼럼이란 것을 쓴 지 1년이 되었다. 그 뜻은 내가 여기 온지 1년이 조금 넘었다는 뜻일 것이다. 2012년 6월 초순, 워킹홀리데이라는 비자로 뉴질랜드로… 더보기

이사

댓글 0 | 조회 1,891 | 2013.09.10
저번 주였다. 내가 사는 플랫의 인터넷이 일주일 남짓 먹통상태일 때였다. 일주일 내내 플랫메이트들을 볼 때마다 얘기를 했다. 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 더보기

Boy A

댓글 0 | 조회 1,387 | 2013.08.28
초록빛 눈이 오는 날이다. 회개하기 위하여 떠나기가 쉽지가 않아 흔들흔들거린다. 너를 떠날 수 있는 날, 그리하여 다시 너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년은 늘 … 더보기

너의 스위치였다

댓글 0 | 조회 1,639 | 2013.08.14
딸깍. 열리는 암실의 문. 외면하고 싶은 현실은 때때로 순간을 아름답게 포착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포착은 시간을 초월한 채 머리 한 켠에 걸어지는 … 더보기

카페

댓글 0 | 조회 1,975 | 2013.07.23
17살. 나는 카페에 자주 갔었다. 스타벅스, 카페베네 등의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기 전이었던 시절 이야기다. 가게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2층에 있었던 그… 더보기

풋내기의 솔직한 노래

댓글 0 | 조회 1,546 | 2013.07.09
예전부터 “왜 그렇게 사람이 빡빡해요?”라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팍팍하다는 말은 다양한 의미의 관용구로 해석될 수 있으나, 나의 경우에는 … 더보기

외롭고, 의존적인 사람들

댓글 0 | 조회 5,759 | 2013.06.26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보통 잠이 오지 않으면 가까운 바닷가로 나가 혼자 돌아다니다 오곤 한다. 핸드폰은 꺼두고 엠피쓰리만 켜두고 이곳저곳 쏘다닌다. 그런데 그것… 더보기

자기소개서

댓글 0 | 조회 1,544 | 2013.06.11
본의 아니게 대학원에 입학하려는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도와주게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대학원이 뭐하는 곳이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충격적인 초고를 이메일로 … 더보기

생산자와 소비자의 시의성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1,405 | 2013.05.28
기차에서 피가 났다, 레일에서 피가 굉음을 내며 흐른다. 줄줄줄줄줄줄줄줄 흐른다 Medina의 You and I를 듣는다. I feel like. I’… 더보기

허세

댓글 0 | 조회 1,391 | 2013.05.14
내가 다녔던 대학교에는 커다란 잔디밭이 있었다. 오월의 광장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광장이 가져다주는 어떤 암울한 느낌을 5월이라는 봄 냄새 가득한 단어로서 상… 더보기

음악시간

댓글 0 | 조회 1,444 | 2013.04.24
다음 주까지 각자 음악적인 재주 하나를 가져오면 되는거야. 중학교 시절, 미치광이로 유명했던 음악 선생이 말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어렵다며 불평불만, 투덜투… 더보기

얼굴

댓글 0 | 조회 1,345 | 2013.04.10
영화 <접속>, <공감>, <8월의 크리스마스> 등등. 수많은 애틋한 만남들과 우연을 가장한 필연과 미필적 대본 속 우연들이 교집… 더보기

소리

댓글 0 | 조회 1,425 | 2013.03.26
바람결에 흔들리는 투우사의 망토와도 같은, 서걱거리는 심장이 있었다. 영혼의 텍스트들이 두터운 긴장감으로 다다다다닥 머릿속을 훑어내고, 가느다란 담배연기가 시간 … 더보기

적과 빛

댓글 0 | 조회 1,237 | 2013.02.27
그 일은 2011년 3월 중순 너무도 갑작스레 일어났다. 일종의 컨설팅 회사가 내가 다니던 대학교를 한 번 다녀갔고, 이틀 뒤 한 강사 분이 우리에게 소식을 전해… 더보기

배탈

댓글 0 | 조회 1,490 | 2013.02.13
몇 년만에 아픈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심하게 아픈 것은 군대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지금이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3일 째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보기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댓글 0 | 조회 1,483 | 2013.01.31
1.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찍은 단편영화: 늦어도 2월까지는 편집 완료! 2. 랭귀지 스쿨에서 한국말 가르치기: 교재 제작! 3. 정착: 워크비자 준비할 것! 4. … 더보기

크라이스트처치 기행 메모

댓글 0 | 조회 1,382 | 2013.01.15
1. 백패커. 나는 1층에 있었고 호주에서 왔다는 한국인은 2층에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고, 머리 위에 있는 할로겐 조명을 켠 채 노트북으… 더보기